“펀드 가입하면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다” 설명회서 언급
투자자들 “수수료 챙겼으니 사기” vs 대신증권 “사기인 줄 몰라”
금융, ‘보이지않는 신뢰’ 가장 중요

라임펀드 사태로 대신증권이 고객 신뢰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 가운데 판매에 대한 배상 책임은 미루는 형국인 만큼 ‘소탐대실’이 우려된다. 고객의 투자 손실 책임을 피하려다가 돈보다 더 큰 고객·주주 등 ‘사람’을 잃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14일 서울 을지로 대신증권 본사 앞에서 50여명의 라임펀드 원금 손실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배상을 요구하는 집회 시위를 열었다. 사진= 김은지 기자 

지난해 7월 라임이 펀드 돌려막기 등에 나섰다는 의혹 등이 나오자 대신증권은 다음 달 투자자들을 불러 모아 설명회 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라임운용은 같은 해 10월 대규모 환매중단을 발표했다. 그 결과 대신증권의 말만 믿고 환매를 하지 않았던 투자자들의 피해는 순식간에 눈덩이로 불어났다.

환매를 받지 못한 피해 투자자들은 지난 7일에 이어 14일 ‘사기판매에 대해 보상하라’며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대신증권 본사 앞에서 집회시위에 나섰다. 대신증권이 라임펀드를 판매한 타 은행·증권사와 다른 특이점은 반포WM센터 한 곳에서 상품이 집중적으로 판매됐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약관과 다른 자산에 투자된 상품을 판매한 점, 상품이 안전하다고 속여 판 점 등을 들어 ‘불완전판매’와 ‘사기판매’라며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신증권은 “애초에 사기인 줄은 알지 못했다”며 혐의 등을 부인하고 배상 문제를 유보 중이다. 이에 따라 대신증권이 작은 이익을 탐하다 오히려 차후에 더 큰 이득을 잃게 되는 ‘소탐대실’을 하게되는 건 아닐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 설명회 참석 고객 “가입하면 두 다리 뻗고 잔다 말해”…‘불완전판매’, ‘사기’ 증언 속속

지난해 10월 라임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일어나기 전, 대신증권은 지난해 8월 9일부터 14일 사이 4번에 걸쳐 ‘대표펀드 리뷰 설명회‘를 열었다.

피해 투자자들은 해당 설명회를 ‘고객들을 안심시키고 펀드 환매를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말한다.

지난 15일 SBS 보도에 공개된 설명회 녹취 자료에 따르면 장영준 전 반포WM센터장은 회사를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자신의 고객으로 시작한 회사라 정말 많이 자세히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설명회에서 장 전 센터장은 (신한금융투자 직원, 이종필 라임 전 부사장과 함께 셋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이디어를 고민하다가 이 전 부사장이 ‘여기에 다 넣자, TRS 구조로 하자’해서 상품이 나오게 됐다고도 설명했다.

장 전 센터장이 설명회에서 안전하다고 강조한 펀드는 ‘담보금융펀드‘다. 그는 해당 상품이 부동산을 담보로 해서 안전하게 연 8%대 수익이 나오는 구조라고 말했다. 녹취 자료에서 그는 “여러분이 가입했던 담보금융펀드는 시장 상황과 크게 무관하다”라며 “연 8%가 안 나오면 제가 말씀드리겠다”고도 언급했다.

본지가 입수한 피해 투자자와 대신증권 반포센터 직원의 통화 내용에 따르면, 라임자산운용의 173개 자펀드 중 TRS와 관련된 29개 펀드에서 대신증권이 판매한 16개 펀드에는 모두 TRS가 포함됐다. 즉 대신증권이 판매한 플루토FI D-1 산하 자펀드 11개와 테티스2호 산하 자펀드 5개는 부동산 자산을 담보로 투자돼 안전한 ‘담보금융펀드‘라고 설명됐지만, 사실상 진짜 담보는 손에 잡히는 고객 돈이었던 셈이다. 정보를 제공한 피해 투자자 A씨는 “대신증권은 피해자들의 피를 바닥에 깔은 셈”이라며 “피해자들은 지금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고 호소했다.

이밖에도 설명회에 참석했던 피해자들은 ‘불완전판매’와 ‘판매사기’ 정황을 연달아 알리고 있다. 이들은 당시 장 전 센터장이 안전한 상품임을 재차 강조했다고 입을 모은다.

당시 장 센터장이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는 B씨는 “당시 장 전 센터장은 가입 고객에게 이 상품을 가입해야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은행 대출을 받고서라도 상품을 가입하도록 권유 받았다는 C씨는 “(설명회에서) 이 상품이 그렇게 안전하다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가입해도 되겠냐는 질문에 장 전 센터장은 ‘그게 더 낫다’며 대출을 유도하는 발언도 했다”고 말했다.

설명회 후 상품 가입 절차는 PB의 지시를 통해 계약서에 안내하는 내용에만 표시하도록 신속히 이뤄졌다는 게 투자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자세한 설명은 이미 설명회에서 다 전해진 것으로 간주됐다.

또 다른 피해 투자자 D씨는 “상품을 가입하려고 하자 PB가 결정을 잘했다면서 메자닌이나 무역금융펀드가 아닌 채권에 투자하고 부동산 담보를 잡고 있어 안전하다고 설명했는데, 오히려 메자닌은 손해가 덜 났고 TRS거래로 구성된 건 원금도 안 나온다”며 “알고 보니 부동산 담보가 아닌 고객 돈을 담보로 대출받아 위험손실은 모두 고객에게 전가한 격”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 투자자들 “수수료 챙겼으니 사기…책임져야” vs 대신증권, “몰랐다면 사기 아니다”

지난 14일 대신증권 피해 투자자 50여명은 서울 을지로 본사 앞에서 해당 펀드의 판매과정은 불완전 판매가 아닌 ‘사기판매’라고 외치며 집회시위를 강행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앞서 지난 7일 피해자 모임 19명은 대신증권 본사를 방문했으나 사측은 ‘사장, 대표이사 등 책임 있는 위치의 경영진과 면담일정을 알려주겠다’고 돌려보냈다. 하지만 그 이후 피해자들은 사측으로부터 ‘월요일(10일) 면담이 불가하다’는 단답식의 통보를 받았다. 피해자들이 사측에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하는 후속 시위에 나선 배경이다.

시위에 참가한 한 투자자는 “펀드가 정말 안전하다고 해서 주변 지인까지 끌어들이게 돼 마치 다단계 사기판매 같은 형태였다”며 “잘 몰라서 그런 분도 있겠지만 일부는 금융지식도 많으신 분인데도 모두 당했다”고 말했다. 이어 “설명회 외에 개인 PB랑 만나서는 TRS 계약 등 펀드의 위험성에 대해선 어떠한 자세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금융업계에 약 20년 종사했다는 한 투자자는 “지난해 7~8월만 해도 4%대 수익률을 유지했는데 2개월 반 만에 수억대 원금이 사라졌다”며 “애초에 수익률을 정확히 환산했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 텐데, 이는 결국 약관대로 상품이 만들어지지 않은 사기상품임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해 8월 총 4번의 설명회를 열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고 이런 문제가 터진 것은 명백하게 환매를 방해한 것”이라며 “직원들이 상품을 판매하고 이에 대한 수수료를 받았다는 건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고, 약관대로 판매하지 않은 만큼 사기판매의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날 시위 현장에서 대신증권 관계자는 “환매중단이 발생하기까지 몰랐다면 사기가 아니다”라며 “TRS 증권사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고 자금을 회수하지 않도록 내용증명을 보낸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일방적으로 피해자들이 주장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법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이라며 “운용사에서 사기 친 부분을 판매사가 알 수 없고, 판매사가 사기를 쳤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사기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 금융, ‘보이지 않는 신뢰’ 가장 중요...“국민정서법이 한 수 위”

대신증권은 전체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판매설정액 5조7000억원 가운데 1조1760억원을 판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 대신증권의 개인고객 대상 환매중지 잔액은 692억원이며, 지난해 장 전 센터장의 이직으로 메리츠종금증권에 반영된 610억원을 합하면 1300억원 가량이 대신증권 반포WM센터에서 판매된 것으로 전해진다. 총 판매설정액과 금액 차이가 큰 것은 TRS계약 구조로 인한 증권사 설정액이 포함돼있어서다.

운용사와 증권사가 맺는 TRS계약은 투자원금에 증권사의 대출분이 더해져 전체 투자금이 올라가는 만큼 수익률이 올라간다. 다만 늘어난 리스크 부담은 사실상 일반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도록 방치돼있다. TRS 계약상 증권사는 우선변제권으로 자금을 먼저 회수해갈 뿐 아니라 수수료도 가져간다. 운용사도, 판매사도 수수료를 가져가지만, 결국 수익률은 커녕 원금도 건지지 못한 채 ‘눈 뜨고 코 베인 격’으로 리스크를 떠안게 된 건 개인 투자자들이다.

요점은 투자자들이 계약을 진행할 시 TRS 구조로 발생할 수 있는 손실 등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난 12일 라임운용이 발표한 실사 결과 플루토 FI D-1호와 테티스2호 펀드는 회수율이 각각 최대 68%, 79%였다. 여기에 증권사가 자금을 우선 회수할 경우, 개인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건 원금의 10%도 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권에서 흔히 언급되듯 ‘금융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는 게 상식이다. 투자자들은 믿을 말한 금융사를 골라 상품을 가입하고 투자를 결정한다. 투자자들은 판매사의 브랜드를 보고 믿었기 때문에 상품을 구매했다. 수수료를 챙긴 판매사에 대해 투자자들이 잘못된 설명으로 잘못된 상품을 판매한 책임을 묻는 이유다. 아울러 이번 TRS계약에 참여한 증권사도 이와 동시에 판매사인 만큼 고객에 대한 배상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어 보인다.

신뢰를 보여주며 위기를 기회로 바꾼 기업가 정신의 선례가 하나 있다. 1886녀 설립된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제약·소비재 제조업체 존슨앤존슨 얘기다. 존슨앤존슨은 35년 전 1982년 9월 시카고에서 자사가 생산하던 진통제 타이레놀을 복용한 후 8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에도 타이레놀은 시장점유율이 미국 내 30%를 차지했기에 이미지의 타격은 컸다. 미국식품의약국(FDA) 및 경찰 수사 결과 누군가가 독극물인 청산가리를 몰래 투입한 것으로 원인이 밝혀졌으나 이미 존슨앤존슨은 사건 1주일 만에 시장점유율이 10% 미만으로, 뉴욕증시 주가도 7포인트 하락하며 위기에 봉착한 상황이었다.

사실상 판매 및 제조사인 존슨앤존슨의 잘못은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하지만 사건 직후 이 회사는 타이레놀 생산을 전세계적으로 전면 중단 및 회수했다. 뿐만 아니라 언론 취재에 적극 협력하며 소비자들에게도 복용을 하지 않도록 안내하는 등 발 빠른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 100년이 넘도록 브랜드를 건재하게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실적과 이미지 중 어느 것을 더 오래 기억할까. 최근 지속성장연구소에 따르면 국내에서 매출 상위 50위 안에 35년 연속으로 대기업에 오른 기업은 8곳에 불과하다. 금융업권을 제외한 분석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금융은 보이지 않는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대신증권은 이를 놓치는 것”이라며 “금융기관이 신뢰를 잃어버리면 물질적인 손실보다 타격이 더 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이번 사태를 큰 개념에서 볼 때 이번 피해자 고객 중엔 주주들도 있을 것인데, 판매사로서 이번 사태에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결국엔 주주들에 대한 배임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고객들에게 수백억원 가량을 안 물어주려다가 더 큰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종업계 관계자는 “금융사 간 법의 영역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시작됐다”면서도 “어떻게 고객 자산을 최대한 회수할 건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또한 “고객 돈이 후순위고 증권사가 선순위인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민정서법이 법보다 더 위에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14일 금융감독원은 라임펀드에 대한 대응방안을 공식 발표한 이후 오는 3월부터 종합적인 조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에는 대신증권 뿐 아니라 신한금투,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이 포함됐다. 조사 결과 위규행위가 확인되면 금감원은 펀드 판매사에 대한 추가 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특히 대신증권 반포WM센터 등에서 라임펀드가 대규모로 판매된 경우는 그 특수성을 감안해 현장 검사가 우선 실시될 전망이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사모펀드 규제를 강화해 투자자 보호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분명히 하겠다는 방침을 알렸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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