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명 : 양의 탈을 쓴 늑대

[파이낸셜투데이 김진아 기자]요즘 재계에서는 대상그룹(명예회장 임창욱)의 ‘수상한’ 식자재 유통사업 진출을 두고 말들이 많다. 그간 식품 제조에 주력하던 대상이 이제는 직접 유통에까지 손을 대며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는 것. 최근 대상은 자회사 대상베스트코를 통해 식자재 유통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대상’이라는 이름을 뒤로 감춘 채 지역 업체를 내세워 입점하는 이상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어 영세 상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대기업의 골목 상권 장악’에 대한 비난을 교묘히 피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여기에 더해 도·소매 유통업 진출을 발판으로 향후 대형마트를 열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어 지역사회의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가 대상그룹의 유통업 진출을 둘러싼 논란을 따라가 봤다.



대상그룹 자회사 대상베스트코, 지역업체 뒤에 숨어 식자재 유통업 진출
1년 새 20여개 업체 인수…자본력 앞세운 저가 공세로 영세상인 도산 위기


지난달 23일 전주시청에서는 대상베스트코 입점 저지를 위한 집회가 열렸다. 전북 중소상인살리기 전북네트워크는 대상베스트코가 대형 상점을 앞세워 지역 상권에 진입하려 하고 있다며 입점 반대 구호를 외치고 나섰다.

이들은 “대기업의 탐욕이 겨우 생존만을 유지하고 있는 지역 중소상인들을 아예 회복 불가능한 상황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며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서 영업확장에만 열을 올리는 행태”라고 비난했다.

아울러 익산식자재연합회도 지역 업체나 차량에 “대상그룹은 식자재납품업 진출을 포기하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시위를 벌이는 등 반발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대상의 조용한 물밑작업

앞서 대상은 지난 2010년 2월 식자재유통업을 목적으로 ‘다물에프에스’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다물에프에스는 대상이 지분 70%를 갖고 있으며, 지난해 10월 현재의 ‘대상베스트코’로 사명을 변경했다.

대상베스트코는 설립 이후 현재까지 광주·대전·대구 등 전국의 주요 식자재상 20여개를 인수했다. 이번에 도마 위에 오른 전북 전주시 송천동과 익산시 모현동에 있는 팔팔식자재를 비롯해 서울 강서구 송정유통, 서울 동대문구 대한식자재유통, 경기 하남 예름에프에스, 전남 여수 한려종합식품, 강원 원주 만세종합유통 등이 모두 대상베스트코가 인수한 업체이다. 대상베스트코는 인수한 업체 중 일부는 매장규모를 확대해 운영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대상베스트코가 식자재 업체를 인수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존재한다. ‘대상’이라는 이름은 쏙 감춘 채 기존 지역 업체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 대기업이 운영한다는 점을 알려야 신뢰도를 얻고 영업을 확대하기 수월함에도 불구하고, 간판에서 ‘대상’ 브랜드를 제외한채 지역 중소기업를 가장하고 있다.

하지만 인수된 식자재 업체들은 분명 대상베스트코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대상그룹의 손자회사다. 일례로 지난 1월 대상베스트코가 인수한 전북 익산시 모현동에 있는 ‘팔팔식자재’는 기존과 별 차이 없는 ‘팔팔식자재(주)’라는 간판을 유지하고 있으며, 대표가 바뀌지 않아 표면적으로는 기존에 이 지역에 있던 개인 업체로 보인다. 그러나 이 업체의 지분 100%를 대상베스트코가 소유하고 있다.

지역 상인들은 대상이 직접 이름을 내걸지 않은 점에 대해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장악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최근 이마트나 홈플러스 등 대형 마트와 SSM이 우후죽순으로 불어나면서 인근 상인들과 크게 마찰을 빚어왔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대상베스트코의 입점 소식이 알려지자 중소 도매상인들은 “대기업이 골목슈퍼를 고사시키더니 이제는 도매유통시장까지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상 사업 예정지 앞에서 집회를 열었으며 중소기업청에 ‘사업 조정’을 신청하기도 했다. 그 결과 사업 일시 정지 조치가 내려지긴 했으나, 영업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큰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대상이 지역 업체를 기습적으로 인수 합병하는 방식으로 골목상권을 붕괴시키려 하고 있다”며 “이번 대상베스트코의 식자재납품업 진출은 골목상권은 물론 지역 도매업·물류업까지 초토화시키는 만행”이라고 힐난했다.

식자재업, 대형마트 진출 수순?

실제로 지역 영세 상인들은 대상이 자본력을 앞세워 저가공세에 나서면서 영세 상인들의 일자리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푸념한다. 영세업자들은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판매부진에 시달려온 데다가 아무리 비용을 줄여도 대기업의 저가 공세를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대상이 막강한 자금력과 물량을 바탕으로 식자재 유통업에 진출한다면 중소규모 식자재 전문점은 경제난에 허덕일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례로 대상베스트코가 인수해 지난해 5월 문을 연 대전시 오정동 ‘청정물류센터’의 경우, 평균 판매가격보다 10% 가량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 배재홍 사무국장은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대전 지역은 대상베스트코가 주변 군소업체보다 10~20%나 싸게 팔고 있어 도매상인들의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며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향후 도산하는 가게가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대상베스트코가 아직까진 도·소매 유통업을 하고 있으나 언제든지 대형마트로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파이낸셜투데이>가 대상베스트코의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확인한 결과, 물품 도소매업 외에도 숙박 및 음식점업, 인터넷방송사업, 스포츠 레져시설 운영업 등 도소매 유통과 무관해 보이는 업종이 등록돼있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상베스트코가 상권형성과 수익이 발생되는 곳에서 영업과 유통망을 늘려 대형마트로 변경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와 관련해 대상베스트코 경영지원팀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대상의 식자재 유통 사업 진출은 유통단계를 축소하고 위생문제에 철저를 기해 식당 업주들이 믿고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며 “등록된 사업목적은 절차를 통해 추가 삭제가 자유롭기 때문에 등록한 것일 뿐 추후에 하게 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답했다.

또한 영세업체를 인수하면서 ‘대상’ 이름을 내걸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세무적 리스크가 있어 쉽게 합병할 수 없는 상태라 그런 것 일뿐, 법인명을 바꾸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현재 절차를 밟아나가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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