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죽만 울리고 저울질하기

[파이낸셜투데이 성현 기자] 최신원(61) SKC 회장이 침묵하고 있다. 최 회장이 부회장으로 있는 수원 상공회의소는 곧 차기 회장 선거를 치른다. 지역 경제계에서는 최 회장과 양창수(64) ㈜밀코오토월드 회장이 이 자리를 두고 치열한 접전을 벌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양 회장이 지지세력 확보에 열심인 반면 최 회장은 출마선언은 고사하고 자신을 두고 고성까지 오간 최근 총회에서도 말을 아끼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수원이 SK그룹의 발원지이고 최 회장이 SK그룹의 적통성을 강조해온 점에 비춰보면 사뭇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에 <파이낸셜투데이>가 차기 회장직을 두고 장고를 거듭하는 최 회장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 최신원(61) SKC 회장.<사진제공=뉴시스>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 현직회장 지원에 외부 활동 늘리며 보폭 확대
들리지 않는 공식 출마선언, 사전선거운동 논란·최태원 회장 횡령 때문?

지난 17일 경기도 수원 상공회의소에서는 2011년 결산 총회가 열렸다. 총 43명의 재적의원 중 32명이 참석한 이날 총회는 여타 결산총회와 같이 지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일반적인 의미로 개최됐다.

그러나 수원지역 경제계에서 주목한 것은 따로 있었다. 지난 3년간 수원상의 출입이 뜸하던 최신원 SKC 회장이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동안 최 회장은 지난 2009년 수원상의 부회장에 오른 이후 지난해 9월 열린 임시총회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다음달 15일로 예정된 차기 회장 선출을 앞두고 수원상의를 찾았다. 이 때문에 지역에서는 최 회장을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보폭 늘려가는 두 유력후보

수원은 한국경제의 중심축을 이루는 지역 가운데 하나다. 그에 걸맞게 수원상의도 100년이 넘는 역사와 1,000개에 육박하는 회원사를 보유하며 유력경제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임원들의 면면을 봐도 삼성전자와 SKC, SK네트웍스, 애경, 대한통운, KCC 등 모두 이름만 들으면 아는 유명 대기업 소속이다. 이들 기업을 포함해 수원에서 사업을 영위해나가는 기업들은 3,226개에 달한다.

그만큼 임기 3년의 수원상의 회장은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커 막중한 책임이 뒤따르지만 동시에 누구라도 탐낼만한 매력을 지닌 자리다.

▲ 수원상공회의소.
이런 수원상의를 이끌어갈 차기회장은 다음달 15일 열린 예정인 의원총회를 통해 확정된다. 지난 18년간 수원상의를 맡아온 우봉제 현 회장이 불출마 선언을 한 가운데 유력후보는 최 회장과 공식출마선언을 한 양창수 ㈜밀코오토월드 회장으로 압축돼 있다.

지난 2009년 치러진 20대 회장 선거에서 우 회장에게 패한 경험을 갖고 있는 양 회장은 공식 출마선언을 하고 지지세력 확보에 나선 상태다.

양 회장은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선거에서 1표 차이로 패한 뒤 21대 회장에 취임하기 위해 3년을 기다려왔다”며 “많은 시간을 할애해 동료 의원들에게 지지를 요청하고 있다”고 강한 포부를 드러냈다.

최 회장도 외부 활동을 통해 보폭을 늘려가고 있다. 2009년 회장 경선에서 회장 추대를 받았지만 선거에 나서지 않는 바 있는 최 회장은 지난해 경기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에 취임했다. 또 SKC 본사를 2014년까지 수원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수원이 SK그룹의 모태인 선경직물의 발원지였고 최 회장이 그룹의 적통성을 강조해왔다는 점을 이유로 지역에서는 최 회장이 차기회장 직에 뜻을 품은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현 집행부도 최 회장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다. 우 회장은 지난달 초 열렸던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대기업에서 차기 회장이 나와야 한다”며 최 회장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했다.

당시 지역 경제계에서는 수원상의 의원 중 대기업은 SKC와 삼성전자 뿐이고 삼성전자 측 임원은 회장직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우 회장이 최 회장을 염두하고 의견을 밝힌 것으로 파악했다.

복잡한 주변 탓?

그런데 현직 회장의 지원사격을 등에 업은 최 회장은 정작 입장표명에 소극적이다.

17일 결산총회에서 모 감사가 감사보고서 발표 도중 “(선거로 치러진)3년전 회장 선출은 추대가 아닌 경선이라 전통과 맞지 않았다”고 발언, “차기 회장은 (수원 지역을 대표할 수 있도록) 대기업에서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밝힌 과거 언급과 결부돼 양 회장과 설전을 벌이는 가운데서도 최 회장은 별다른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

결산총회 뒤 “차기 회장 선거에 출마할 것이냐”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그런 것은 묻지 말라”고 일축했다. 예정돼 있던 저녁 만찬에도 불참했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제공=뉴시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최 회장의 사촌형제들을 향해 있는 횡령 의혹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은 현재 회삿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분식회계 혐의로 실형 선고까지 받았던 과거가 회자되는 장면이다. SK 오너일가를 바라보는 국민여론이 좋을 리 없다.

이 가운데 최 회장은 계열분리설의 중심에 서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초 “뿌리 찾기와 책임경영 강화를 위해 SK그룹도 사촌간 계열 분리를 할 때가 됐다”고 밝힌 이후 동생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과 함께 SK케미칼·SK가스·SK건설 지분을 모으고 있다.

종합해보면 최 회장이 차기 회장 선거 출마를 공식화할 경우 모든 일거수일투족에 의미가 부여될 것이 자명한 상황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최 회장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를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출마 선언을 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사전선거운동 의혹을 받고 있는 최 회장이 출마시점을 앞당길 이유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말 SK계열인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수원상의 의원 일부에게 총 세차례에 걸쳐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선물로 식료품을 나눠줘 사전선거운동 논란을 촉발시켰다.

수원상의가 현직 의원을 대상으로 계획한 제주도 골프여행에서는 경비 전액을 대주겠다고 나섰다가 의혹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논란이 확산되면서 골프여행은 취소됐지만 그 과정에 대한 뒷말도 무성했고 부정적인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양 회장은 “지난해부터 이 감사와 조모 부회장은 공공연히 최 회장을 지원하는 발언들을 해왔고 우 회장도 마찬가지였다”면서 “이 와중에 저녁식사와 골프여행을 최 회장이 보내주면 사전선거운동이 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최 회장 측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최 회장이 그룹의 모태는 물론 고향이 수원이라는 점에 수원상의 회장출마를 고민하고 있는 것은 맞다”고 전했다.

그러나 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추대 움직임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이며 사전선거운동 논란과 오너일가 횡령건과의 연관성은 없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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