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저녁 서울 중구 장충동 CJ그룹 이재현 회장 집 부근에서 이 회장의 차량을 미행하던 삼성물산 직원 김모씨가 CJ직원들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관에게 조사를 받고 있다.(사진 제공=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 이한듬 기자] 첩보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일이 현실에서도 일어났다. 삼성 계열사 직원이 이재현 CJ 회장을 며칠간 미행하다 CJ의 ‘작전’에 걸려 현장에서 붙잡힌 사건이 발생한 것.

23일 CJ그룹은 “삼성물산 소속 직원이 이재현 CJ 그룹 회장을 미행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CJ 작전에 딱 걸린 삼성 공작원?

CJ에 따르면 지난 21일 오후 7시 30분쯤 서울 중구 장충동 이재현 CJ그룹 회장 자택 근처에서 삼성물산 감사팀 소속 김모(42) 차장이 몰던 검은색 그랜저 승용차가 차량을 막아선 CJ제일제당 소속 김모(45) 부장을 치고 달아나려다 현장에 있던 CJ 직원들에게 붙잡혔다.

이 같은 상황이 빚어지게 된 것은 지난 1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장의 차량 운전기사는 출퇴간 시간을 전후로 렌트된 오피러스 차량 한 대가 이 회장의 차를 따라다닌 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당시 운전기사는 ‘설마 일부러 따라 다니겠나’하는 생각을 가졌지만, 20일까지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결국 CJ 비서실에 “미행당하는 것 같다”고 알려왔다는 게 CJ측의 설명이다.

CJ는 운전기사의 제보를 받은 뒤 이 회장 집 앞에 설치된 CCTV를 확인을 거쳐 렌트된 오피러스 차량 한 대가 이 회장 자택 인근을 배회한 사실을 알아냈고, 직원을 투입해 잠복근무를 벌였다.

이후 사건당일인 지난 21일 저녁, 이번에는 오피러스 차량이 아닌 검은색 그랜져 차량이 이 회장의 차를 따라붙었다. 그러나 운전자는 같은 사람이었고, CJ측은 일부러 해당 차량을 유인해 운전기사의 차와 CJ직원들로 미행 차량의 앞뒤를 막아섰다.

이 과정에서 CJ제일제당 소속 김모 부장이 미행 차량에 부딪쳐 양측 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CJ 측은 운전자에게 신원을 밝히길 요구했으나 운전자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CJ는 경찰에 사건을 신고했다.

운전자는 경찰이 온 뒤에도 끝까지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으나, CJ는 경찰의 조사와 운전자의 렌트 기록 추적을 통해 그의 신원이 삼성물산 감사팀 소속 김모 차장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CJ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삼성물산 직원이 이 회장을 며칠간 미행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오늘 오후 김 차장을 고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조원대 상속재산 소송 때문?

▲ CCTV에 찍힌 미행차량(우측 오피러스)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지난 14일 삼성가 장남이자 이재현 CJ 회장의 아버지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동생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남긴 차명주식 중 자신의 상속분에 해당하는 주식을 인도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과 무관치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이 이맹희 전 회장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그의 아들인 이재현 회장에게 미행을 붙였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에 대해 CJ 관계자는 “상속재산 소송과는 별개의 문제”라며 “미행 자체는 엄연한 불법행위이기 때문에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CJ는 이와 함께 삼성의 해명과 사과, 책임자 처벌 및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삼성그룹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미행’을 했다는 것은 CJ측의 주장일 뿐, 일단은 경찰조사를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우선”이라며 “삼성그룹은 미행을 지시한 적도 없고, 이번 논란은 삼성물산 직원이 연루된 만큼 삼성물산 측에 확인해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관계자는 “우리도 언론 보도를 통해 사건을 알게 됐다”며 “이번 사건에 연루된 직원이 삼성물산 직원인 것은 맞지만 왜 그 직원이 그 당시 그 곳에 있었는지, 정말로 미행이 있었던 것인지 여부는 파악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내부적으로 이번 사건의 경위를 알아보고 있다”며 “내용을 파악한 후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전했다.

CJ 뒤통수 친 삼성?

CJ 뒤통수 친 삼성?

 

한편, 삼성의 이재현 회장 감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1994년 CJ(옛 제일제당)이 삼성으로부터 계열분리 될 당시에도 서울 중구 한남동 이건희 회장 집에 CCTV가 바로 옆집인 이재현 회장 집 쪽이 보이도록 설치돼 출입자를 감시했다는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여하튼  이번 사건에 대한 진위는 경찰 수사에서 밝혀지겠지만, 일각에서는 이 일로 오너 간의 분쟁을 떠나 삼성과 CJ 기업간 갈등으로 치닫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앞서 삼성은 이맹희 전 회장의 소송 취하를 위해 CJ 측에 도움을 요청했고, CJ가 이를 수용키로 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기업간 분쟁으로 확대되지는 않은 듯 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삼성이 CJ의 뒤통수를 친 셈이어서 향후 CJ의 대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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