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질 급한 KT, 남이야 죽거나 말거나?

[파이낸셜투데이=이한듬 기자] KT(회장 이석채)가 지난해 선보인 태블릿PC ‘K패드’의 납품계약 이행 문제로 협력업체와 분쟁을 벌이고 있다. 당초 KT는 제조사인 엔스퍼트(대표 이창석)와 ‘K패드’ 물량 20만대에 대한 납품계약을 맺었으나, 제품의 성능과 품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제기되면서 5만대만 공급받고, 그 뒤로는 더 이상의 납품을 거절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엔스퍼트는 재고량 15만대에 대한 대금을 받지 못해 회사경영이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2,3차 협력업체들까지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며 조속한 계약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KT는 성능에 문제가 많은 제품을 납품받아 시중에 유통시키는 것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처사라며 여전히 납품을 거부하는 상황이다. 급기야 엔스퍼트가 KT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 사 간 갈등의 골이 점차 깊어지고 있다.

▲ K패드
KT, 태블릿PC ‘K패드’ 20만대 계약해 놓고 품질문제 불거지자 납품거부
제조사에 책임 묻는 KT, 정작 검수 안한 제품 유통…책임 떠넘기기 논란

지난해 KT는 보급형 태블릿PC인 ‘K패드’를 출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 당시까지는 애플의 ‘아이패드’나 삼성전자의 ‘갤럭시탭’이 등장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에 따라 KT는 값이 저렴한 ‘보급형 태블릿PC’의 타이틀을 석권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 것이다.

야심찬 계획, 하지만 결과는…

제품의 개발을 위해 KT가 손을 내민 곳은 엔스퍼트다. 엔스퍼트는 반도체 설계 및 제조, 판매업을 영위할 목적으로 지난 2001년 설립된 회사로, 직원수 126명의 중소기업이지만 인터넷전화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기술력을 인정받아 크게 성장, 지난 2008년 코스닥시장에 상장되기도 했다.

이 같은 엔스퍼트의 기술력을 인정한 KT는 이 회사에 ‘K패드’의 제조를 맡기고, 제품의 설계와 판매 유통은 직접 담당키로 했다. 몇 달간 사전 협의와 연구개발 과정을 거친 뒤 지난해 8월 KT는 엔스퍼트로부터 ‘K패드’ 물량 3만대를 135억원에 공급받았고, 한 달 뒤인 지난해 9월 2일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엔스퍼트 측에 ‘K패드’ 17만대를 추가 주문했다. 계약대금은 561억원이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당초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했던 ‘K패드’에 대해 소비자들의 불만이 제기된 것이다. 성능과 품질이 수준이하라는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K패드’가 등장한지 불과 2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국내 시장에 미국 애플사(社)의 태블릿PC ‘아이패드’와 삼성전자의 ‘갤럭시탭’이 출시됐다. 두 제품 모두 돌풍을 일으키면서 ‘K패드’는 점점 소비자들의 차가운 외면을 받았고, 결국 출시 4개월만인 올해 1월 ‘판매중단’이라는 초라한 결과를 내놓게 됐다.

“납품계약 이행하라”

야심차게 뛰어든 사업이 총체적 난국에 빠지면서 KT는 추가 주문량 17만대 중 2만대만을 공급받고 그 뒤로는 더 이상의 납품을 거절했다. 재고물량 15만대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제조사인 엔스퍼트 측은 크게 반발했다.

이미 추가 발주분에 대한 부품구입까지 이뤄진 상황에서 납품계약이 이행되지 않아 회사 경영상황이 악화됐고, 2,3차 협력업체들이 줄도산 위기에 놓였다는 것. 특히 제품을 독자 개발한 것이 아니라 KT의 요구에 의해 공동 개발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품질 문제의 책임을 엔스퍼트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엔스퍼트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물론 ‘K패드’에 대한 연구개발 기간이 짧아 다른 태블릿PC 제품들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하지만 이 제품은 KT 직원들이 함께 상주하면서 공동 개발하고 검수도 KT 측에서 마친 것인데, 이제 와서 품질을 문제로 납품계약 이행을 거부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고 성토했다.

이어 “시장에서 반응이 좋지 않자 KT가 납품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우리에게 이미 부품을 공급한 2,3차 협력업체들에게 대금을 지급하지 못해 추가적인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엔스퍼트 측은 KT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엔스퍼트는 최악의 상황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엔스퍼트 관계자는 “우리 같은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거대한 유통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대기업과의 관계가 나빠지면 곤란하다”면서 “지금 원하는 것은 KT와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품질 판매는 소비자 무시하는 것”

하지만 KT는 엔스퍼트의 주장이 말도 안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KT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K패드’ 출시 이후 소비자들로부터 품질이 지나치게 떨어진다는 민원이 제기 됐었다”라며 “팔아서는 안되는 품질의 제품을 계속 납품받아 시중에 유통하는 것은 결국 소비자를 무시하고 우롱하는 처사”라고 항변했다.

이어 납품거부로 인해 회사 경영이 악화되고 2,3차 업체가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엔스퍼트는 2분기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달성한 회사”라며 “2,3차 업체들에게 대금을 지급할 여유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KT가 납품을 거부해서 줄도산 위기에 처한 것처럼 언론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엔스퍼트가 주장한 ‘공동개발’에 대해서는 “공동개발이라기 보다는 중소업체가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독려를 해준 것”이라며 “제품검수 역시 마친 것이 아니라 통과된 적이 없으며, 엔스퍼트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KT역시 K패드 품질 문제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검수도 안한 제품을 시중에 유통시킨 책임은 KT에게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검수도 마치지 않은 제품을 판매한 것 역시 소비자를 우롱하는 처사이긴 매 한가지”라며 “일단 팔아놓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자 이를 제조사에게 전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KT는 엔스퍼트 측이 원하고 있는 ‘원만한 해결’에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서 이슈를 키워놓고 이제 와서 원만하게 해결하자는 것은 도대체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정위 신고에 대해 “엔스퍼트가 공정위에 직접 신고를 한 것도 아니고, 엔스퍼트 직원이 온라인 신문고에 글을 올리면서 이번 건이 공정위에 배정된 것”이라며 “사실과 다른 방향으로 언론에 비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양 사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결국 이번 문제는 공정위의 판정에 따라 판가름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파이낸셜투데이>는 현재 공정위의 조사 진행 상황을 파악하려 했으나 공정위 관계자는 “조사와 관련된 어떤 내용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변을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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