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 로비’의 진실은

[파이낸셜투데이=이한듬 기자] 인천 지역의 대표 향토기업 대우자동차판매에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 전·현직 대표를 둘러싼 잇단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서 구린내를 ‘풀풀’ 피우고 있는 것이다. 최근 대우자판 노조는 전·현직 대표가 저지른 비리로 인해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면서, 비리의 진위 여부를 가려달라는 고발장을 관할 검찰에 제출했다. 그러지 않아도 지난해 4월 시작된 워크아웃이 일부 채권자들과의 의견마찰로 진통을 겪다가 최근에서야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겨우 부활의 날개 짓을 펼치려던 대우자판에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온 셈이다. <파이낸셜투데이>가 2회에 걸쳐 대우자판에 드리운 검은 의혹의 실체를 추적해 봤다.

▲ 대우자동차판매
대우자판, 인천시 공무원들에 재래시장 상품권 3,000만원어치 전달
노조 “경영진 지시 로비 의혹” vs 시 “사실무근”…경찰수사가 관건

최근 인천 지역 관가를 발칵 뒤집어 놓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우자판이 3,000만원 이상의 재래시장 상품권을 시 공무원들에게 뿌렸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여론의 성난 목소리가 빗발치자 인천시는 “사실무근”이라고 긴급 진화에 나섰지만, 결국 사정당국이 직접 칼을 뽑아들면서 이번 의혹의 진실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대우자판으로부터 상품권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인천시 공무원 명단
대우자판, 상품권으로 ‘로비’ 했다?

이번 의혹은 대우자판 노조가 지난 8월 중순 경 인천지방검찰청에 제출한 고발장에 담긴 내용에서 비롯됐다. 노조가 전·현직 임원들의 비리가 의심되는 증거들을 종합해 진실을 밝혀달라며 제출한 고발장에 이른바 ‘도네이션’(기증) 문건이 포함돼 있던 것.

<파이낸셜투데이>가 입수한 해당 문건은 지난해 1월 말에서 2월 초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인천시청과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인천도시개발공사, 서구청, 계양구청, 남구청 등 개발사업 인·허가권한을 가진 관할청 소속의 직원 27명의 명단이 기재돼 있다.

이 문건에는 또 해당 직원의 친밀도를 A,B,C로 나눠 체크하도록 돼 있고, 그 옆 ‘담당자’ 란에 적게는 50만원에서 많게는 300만원까지 총 3,450만원을 상회하는 액수가 수기돼 있다. 아울러 대우자판이 농협 인천시청점에서 지난해 2월 2일 3,000만원어치의 상품권을 구매한 영수증 사본도 첨부돼 있다.

노조는 이 같은 점을 종합해 회사가 미리 로비대상을 정해 둔 뒤 상품권을 구매해 이들에게 전달하는 수법으로 비리를 저질렀으며, 당시 대표이사였던 이동호 전 사장과 박상설 현 사장(당시 건설부문 대표이사 전무)의 지시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우자판 노조 김진필 위원장은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올해 초 노조원 180명 전원을 비롯한 회사 임·직원 264명이 대규모 정리해고 되면서 한 직원이 이 같은 의혹을 제보해와 고발장에 첨부하게 됐다”라며 “시에서 지역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판매를 권유하는 상품권을 대우자판에서 사들였다가 다시 공무원들에게 로비를 목적으로 나눠준 것으로 보이는데, 경영진의 지시나 승인 없이는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전·현직 대표들의 비리행위로 판단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대우자판의 상품권 거래가 이뤄진 직후인 지난해 2월 11일 연수구 동춘동과 옥련동 일대 53만8,600㎡(약16만3,212평)에 3,800여가구가 들어서는 주거복합단지를 조성하는 송도도시개발사업 실시계획인가 승인을 받았던 점을 근거로, 이 상품권이 해당 사업 승인에 대한 로비 목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대우자판이 농협 인천시청점으로부터 상품권을 구매한 영수증
인천시-대우자판 노조 진실공방

그러나 시는 이 같은 의혹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시는 지난달 28일 시정질의를 통해 명단에 기재된 공무원들은 상품권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으며, 대우자판이 상품권 중 680만원 상당을 대우자판 직원에게 나눠줬고, 나머지 상품권으로는 홍삼제품 185개를 구입해 마찬가지로 회사 직원들에게 설 명절선물로 나눠준 것으로 확인했다고 전했다. 다만 시는 수사결과 비위사실이 드러날 경우 관련자들을 엄중문책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시는 자체적으로도 좀 더 심층적인 내부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 시 대변인실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의혹과 관련된 자세한 사안을 감사실에서 따로 조사 중에 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시의 해명에 대해 대우자판 노조는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고 있어 주목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은 대우자판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불과 두 달 전으로, 경영상황이 상당히 악화돼 부도위기에 놓여있던 시기”라며 “이 때문에 사측이 노조와의 협상에서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직원들의 명절 선물을 비롯한 복리후생을 당분간 중단 하겠다’라는 의견을 전했고, 실제로 당시 직원들에게 지급된 선물이나 상품권은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회사 사정에 여유가 있었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회사가 망하느냐 마느냐 하는 판국에 굳이 3,000만원을 들여서, 그것도 공무원 명단까지 기재해가며 (상품권을)구매한 이유가 무엇이겠느냐”면서 “해당 의혹은 경찰 조사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지부진한 수사, 의혹 규명은 언제?

현재 이 의혹은 인천부평경찰서가 검찰로부터 사건을 배정받아 수사를 진행 중에 있다. 하지만 수사는 별다른 진척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평서 수사과 지능팀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고발인 조사가 먼저 이뤄져야 하는 데 고발인인 김 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라 경찰출두를 미루고 있어 현재 수사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적정한 시기를 조율해 고발인 조사에 응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파이낸셜투데이>는 이번 로비 의혹과 관련한 대우자판의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끝내 아무런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전화는 불통이었고, 직접 본사를 찾았지만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을 전해야할 홍보실의 문 역시 굳게 닫혀있었다.

다만 건물을 드나드는 한 직원으로부터 “지금 회사에 출근하는 직원들은 운영을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이며, 홍보실은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다”라는 답변만을 들을 수 있었다. 이에 대해 김 노조위원장은 “워크아웃 이후 대규모 정리해고로 수많은 부서가 와해됐다”며 “홍보실 역시 존재할 가치를 잃어 와해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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