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했나

[파이낸셜투데이=황동진 기자] 롯데관광개발 오너 일가를 정조준 한 사정당국의 칼끝이 매섭다. 최근 검찰은 수백억원대의 증여세를 탈루한 혐의로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73)을 소환조사했다. 앞서 국세청은 김 회장이 자신의 두 아들에게 주식을 불법 증여하고, 증여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은 혐의를 적발하고 620억원을 추징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사건은 자칫 묻힐 뻔했다. 국세청으로부터 세금 추징을 통보받았던 롯데관광개발이 과세시효가 지났다고 항변했고, 이를 국세청이 수용해 과세 취소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자칫 진흙 속에 묻힐 뻔 했던 이번 사건의 전모를 <파이낸셜투데이>가 파헤쳐봤다.

▲ 김기병 회장.
김기병 회장, 두 아들에게 차명으로 수백억 주식 증여…20년간 감췄다 ‘들통’
국세청, 감사원 지적 받자 그제서야 620억 세금 추징…검찰, 김 회장 소환조사

MB정부 집권초기부터 강조되어 온 재벌기업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아직도 멀기만 하다.

검찰과 국세청 등 사정당국이 재벌기업들의 계열사 일감몰아주기를 비롯한 부의 세습 과정에서 탈세 등 각종 부정부패를 분쇄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일부 재벌기업들은 여전히 당국을 비웃기라도 한 듯, 요리조리 잘도 법망을 피해나가고 있다.

최근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증여세를 탈루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롯데관광개발 오너 일가를 보더라도 그렇다.

당국을 조롱한 롯데관광, 결국…

지난 15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검사 윤희식)는 600억원대 증여세를 탈루한 혐의로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73)을 소환조사했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한 롯데관광개발 본사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날 검찰은 증여세 탈루 혐의 입증에 필요한 관련 문건과 자료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과 국세청 등에 따르면 김 회장은 2004~2008년 명의신탁과 허위 주주명부 작성 등 수법으로 자신의 두 아들에게 735억원 상당의 주식을 불법 증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이 같은 사실을 적발, 지난 7월 롯데관광개발로부터 620억원을 추징하고 김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진흙 속에 묻힐 뻔했다. 세금 추징을 통보받았던 롯데관광개발이 과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를 들며 강하게 반발했고, 이를 국세청이 받아들여 과세 취소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모는 이랬다. 지난 2008년 금융감독원은 롯데관광개발의 주요 주주 지분 차명보유 사실과 이에 따른 허위 공시에 대해 집중 조사를 벌였다.

그런데 금감원의 조사 이전 단초를 제공한 건 따로 있었다. 롯데관광개발 퇴직 임원 2명이 회사를 상대로 주주지위부존재 확인 및 명의개서 이행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사건의 전모는 세상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묻힐뻔 했던 진실

검찰 등에 따르면 지난 1998년 롯데관광개발 임원으로 퇴직한 이모씨(57)와 홍모씨(75)는 2006년 6월 롯데관광개발이 여행업계 최초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명의로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회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 즉시 회사 측에 명의 변경을 요구했다.

이씨와 홍씨 명의의 회사 지분은 총 185만5000주(18.55%)였는데, 당시 주당 3만9000원대였으므로 이를 환산하면 무려 730억여원에 달했다. 이씨 등은 소장에서 자신들도 모르는 차명 주식으로 인해 향후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와 더불어 추후 명의가 변경될 경우 수십억원대 달하는 증여세를 물 수 있다며 주주지위부존재 확인 청구 소송 등을 제기하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 롯데관광개발이 상장 후 2년 뒤에서야 소송을 내게 된 것은 이들의 명의 변경 요구에 대해 회사가 ‘모르쇠’로 일관하자, 결국 우려한 대로 국세청은 이씨와 홍씨에게 총 230억원의 증여세를 부과해버렸기 때문이다.

금감원 역시 이들의 소송이 제기되자 그제서야 롯데관광개발이 불성실 공시를 한 것으로 판단, 조사에 착수하게 됐다.

당시 금감원 조사에서 김 회장은 자신의 두 아들 한성씨와 한준씨에게 700억 상당의 차명주식을 증여하고 20여 년간이나 보유해 오면서도 증여세를 단 한 푼도 납부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김 회장은 증여 당시 두 아들이 지분이 10%를 넘지 않도록 해 주요 주주에 포함시키지 않는 편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국세청은 금감원의 판단과 달랐다. 국세청은 이씨와 홍씨 그리고 롯데관광개발 관계자를 불러 조사했는데, 당시 롯데관광개발은 비밀리에 보관된 주주명부를 꺼내놓으며 실제 해당 주식은 김 회장의 두 아들의 것이며 또 1991년 주식을 증여했으므로 과세시효인 15년 지났다고 항변했다.

어이없게도 국세청은 롯데관광개발의 주장을 받아들여 과세 취소를 해버렸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감사원이 국세청의 결정에 대해 오판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감사원은 “롯데관광개발이 제출한 주주명부를 보면 1999년 주식 현황에 2004년에 취임한 대표의 도장이 찍혀 있는 등 조작 가능성이 높다”며 재조사를 요구했다.

결국 국세청은 감사원의 지적이 있고서야 전면 재조사에 착수했고, 김 회장의 두 아들에게 620억원의 세금 추징함과 동시에 검찰에 고발했다.

이제와서 이쁜 짓?

거액의 세금을 추징 받은 롯데관광개발의 뒤 행태가 더 눈에 띈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기 전, 롯데관광개발은 김 회장의 두 아들이 보유한 회사 보통주식이 각각 98만7000주와 86만8000주 감소했다고 공시했다. 주식으로 대신 물납한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롯데관광개발이 검찰이 수사 착수하기 이전에 물납한 것은 의도적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검찰에 잘 보이기기 위한 행위라는 것.

여하튼 검찰의 칼끝에 온 시선이 머물고 있는 가운데, 롯데관광개발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롯데관광개발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일축했다.

한편, 김기병 회장은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막내 여동생인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의 남편이다. 한때 롯데관광개발은 롯데 상호를 두고 롯데그룹과 분쟁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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