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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투데이=이한듬 기자] 워크아웃이 진행 중인 벽산건설(회장 김희철)의 수상한 행적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무려 20년간 수백억여원대에 달하는 OCI(동양제철화학) 주식을 보유하고도 회사 자산에 한 번도 등재하지 않은 상태로 방치해두다가, 지난해 사기사건에 연루된 후에야 전량 처분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벽산건설은 해당 주식을 수 십 년간 미등재하고 방치했던 이유조차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하고 있어 의심만 더해가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비자금 조성을 목적으로 묵혀두던 주식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흘러 나오고 있다. 벽산건설의 OCI 주식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추적해 봤다.

▲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왼쪽)과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
벽산건설, 시가 수백억여원대 OCI 주식 보유하고도 20년간 방치
지난해 사기사건 연루되며 전량 처분…비자금 조성 의혹 ‘솔솔’

지난 7월, 인천지검 특수부는 100억여원대 주식 사기를 벌인 일당을 적발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재계의 이목을 사로잡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들 일당이 사기 행각을 벌이기 위해 사용했던 주식이 놀랍게도 벽산건설이 보유한 OCI 주식이었기 때문이다.

사기행각 전모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OCI 주식관리 담당자였던 A(50)씨는 지난 2009년 회사 금고에 OCI 신주권 30만주가 보관돼 있었던 것을 발견했다. 내력을 추적한 A씨는 해당 주식이 2001년 OCI에 합병된 정우석탄화학의 구주권 80만주에 대한 미발행 교환물량이며, 해당 구주권은 지난 1990년 4월 정우개발에 매도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이 주식을 사들인 정우개발의 대표는 벽산그룹 창업주 고(故) 김인득 명예회장의 3남 김희근 현(現)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이다. 정우개발은 지난 2000년 11월 벽산건설에 인수합병 됐는데, 이로 인해 정우개발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은 벽산건설로 넘어가게 됐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벽산건설은 정우석탄화학 구주권을 10년이 넘도록 신주권으로 교환해 가지 않았다. 이에 A씨는 금고 속의 주권 증서를 훔쳐내 공범 2명과 함께 사기행각을 벌이게 된 것이다. 해당 주식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행동하면서 벽산건설을 상대로 ‘명의개서 절차 이행 등의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지난해 6월 벽산건설은 A씨에게 100억원(현금 10억원, 어음 90억원)을 주고 소를 취하시킨 뒤 곧바로 신주권을 되찾았다.

당시 부도위기에 있던 벽산건설은 되찾은 신주권을 처분, 계열사를 지원하고 나머지는 채무를 갚아 위기를 넘겼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지난해 2분기 재무제표에 ‘매도가능증권처분이익’으로 잡혀있는 628억원이 바로 신주권을 처분한 것이다. 하지만 벽산건설은 한 달 만인 지난해 7월, 결국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선정됐다.

사기극을 벌인 A씨 일당도 검찰의 수사에 꼬리가 밟혀 지난 6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사기) 혐의’로 모두 구속,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의혹투성이 주식

그런데 재계의 관심은 정작 ‘사건’ 자체 보다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나게 된 주식의 정체에 있다. 주식과 관련해 석연치 않은 점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벽산건설이 지난 20년간이나 수백억여원대에 달하는 주식을 회사 자산에 한 번도 등재하지 않은 채 보유해 온 이유에 대해 의문부호를 찍고 있다.

벽산건설은 지금까지 두 차례의 워크아웃을 겪었다. 1차 워크아웃은 지난 1998년에 있었고,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2차 워크아웃은 아직까지 진행 중에 있다. 하지만 벽산건설은 회사 상황이 열악한 와중에도 수백억여원에 달하는 주식을 처분하지 않은 채 묵혀두고만 있었다.

물론 지난해 6월 A씨 일당으로부터 되찾은 신주권을 전량 처분해 긴급 수혈하긴 했지만, 문제는 1차 워크아웃 중이던 1998년 당시에는 해당 주식을 현금화하지 않은 채 꽁꽁 감춰두고만 있었다는 점이다. 한때 재계 30위 순위까지 올랐던 기업이 쇠락의 길로 접어드는 와중에도 이를 묵혀두고만 있었다는 점은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벽산건설이 묵혀뒀던 구주권의 존재를 갑자기 인지하게 된 과정도 석연치 않다. 일각에서는 벽산건설이 지난해 창고정리를 하던 중에 구주권을 발견했다고 전하고 있고, 또 다른 일각에서는 A씨가 벽산건설에 사기행각을 벌이면서 주식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말한다.

인도네시아 법인 금고에서 보관 중이던 것을 지난 2005년 법인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해 회계팀이 보관해 왔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만약 구주권의 존재를 2005년에 미리 알고 있었다면 이를 신주권으로 교환하지 않고 계속해서 묵혀왔다는 점은 선뜻 이해가되지 않는 부분이다.

벽산건설 관계자 역시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구주권을 매입한 것이 너무 오래전의 일인 데다가 당시 근무했던 인원들이 현재는 없어서 잘 모르겠다”고 말할 뿐, 명쾌한 해명은 내놓지 못했다.

비자금 조성 목적?

일각에서는 벽산건설이 20년간 방치했던 의문투성이의 주식이 사실상 비자금을 조성하려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말까지 진행된 A씨 일당에 대한 공판 과정에서 벽산건설이 10년 전 외국계 페이퍼컴퍼니를 내세워 이 주식에 대한 명의개서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실이 드러났는데, 이 때문에 비자금을 조성 의혹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회사 소유의 주식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사기꾼들로부터 100억원을 주고 되찾은 점도 의혹에 힘을 싣고 있다. 부도위기를 맞아 현금이 절실했던 벽산건설이 긴 법정싸움을 피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지급하고 되찾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뭔가 떳떳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급하게 무마하려던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그러나 벽산건설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내부적으로도 해당 사안에 대해 별다른 말이 없다”며 “이미 언론에 보도된 내용 이상은 알지 못한다”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이처럼 벽산건설의 수상한 주식을 둘러싼 의구심이 계속되고 있지만, 현재 사건을 담당하는 검찰이 그 의혹을 해결할지는 불분명하다. 인천지검 공보실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해당 사건은 사기 혐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답변할 뿐, “비자금이나 주식에 대한 의혹으로 수사 범위를 확대 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알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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