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판매량 4만대, “1000만대 앞에선 생채기 조차 어려워”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폭스바겐이 디젤게이트 이후에도 건재함을 과시하면서 국내에서 보였던 안일한 태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잘나가는 만큼 국내 소비자들이 배출가스 조작 사태와 관련해 대책 마련을 촉구해도 도외시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같은 행태를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전무한 상황인 만큼 폭스바겐의 안하무인적인 행보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2일 수입차업계에 따르면 폭스바겐의 지난해 전세계 판매량은 1031만2000대로 전년 대비 3.8% 증가했다. 1017만5000대를 판매한 일본 토요타를 제치고 글로벌 판매 1위를 달성한 것이다. 배출가스 조작 여파를 감안하면 폭스바겐 입장에선 상당히 고무적인 성적이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과 업계 관계자들은 폭스바겐의 고공행진에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배출가스 조작사태와 관련해 국내시장에서 폭스바겐이 안일한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판매에 큰 영향이 없는 만큼 부실한 제도와 작은 규모의 국내 시장을 무시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폭스바겐은 2015년 11월 조작 혐의로 리콜 명령을 내린지 1년 2개월 만에 한국 정부로부터 리콜 승인을 받았다. 그나마도 부실하다는 이유로 3차례나 폭스바겐이 제출한 리콜계획서를 반려했기 때문에 사실상 ‘봐주기 승인’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 환경부는 리콜을 승인한 폭스바겐 차량의 연식도 따지지 않고 미국과 달리 내구성 검사도 하지 않았다. 한국 소비자들은 미국처럼 리콜 대신 자동차 교체명령을 요구했지만 폭스바겐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에서조차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연간 판매가 4만대에 머무르는 한국시장은 1031만대를 파는 폭스바겐에게 있어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며 “한국 시장의 위상은 생채기조차 내지 못할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또 미흡한 제도도 폭스바겐의 오만한 태도를 부추겼다”며 “조금만 늦장을 부려도 징벌적 처벌을 받는 미국과 달리 한국 시장은 별다른 제재 수단이 없기 때문에 대처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은 폭스바겐의 안하무인적 행보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법적인 장치도 마련되지 않았고, 일부 소비자들도 배출가스 조작 사태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배출가스 조작 사태 이후 폭스바겐은 엄청난 할인 공세로 제고 판매에 열을 올렸다”며 “이에 소비자들도 구입 행렬에 동참하면서 폭스바겐으로 하여금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확실한 제재 수단과 보상안 등 대책 마련이 늦어진다면 국내 시장은 끌려갈 수밖에 없다”며 “제 2, 제3의 폭스바겐이 나타나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 반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