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은 많은데 알맹이가 없네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킴스클럽’이란 브랜드로 대형 할인마트의 불모지였던 국내 시장을 평정했던 뉴코아그룹. 한 때 재계 27위까지 올라가면서 승승장구 했지만 그 말로는 좋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망한 기업들이 그렇듯, 무분별하게 들여온 차입금으로 방만 경영을 하다 침몰했기 때문.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신세계 그룹이 이마트라는 브랜드로 할인점 시장에 뛰어든 시점은 1993년, 롯데그룹이 롯데마트 브랜드로 들어온 때는 1995년, 삼성물산과 영국 유통기업인 테스코가 홈플러스를 설립한 건 1997년이다. 이들은 유통 ‘빅3’로 국내 대형 할인마트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원조는 따로 있다. 할인마트 ‘킴스클럽’을 통해 ‘박리다매’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처음으로 도입한 뉴코아가 그 주인공이다. 뉴코아그룹은 백화점과 슈퍼마켓의 중도 시장을 겨냥해 유통업계의 새바람을 일으켰다. 그 중심에는 김의철 전 뉴코아그룹 회장이 있다.

◆ 평사원에서 회장 사위로

1942년생인 김 전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한신보일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고 김형종 한신공영 창업주 눈에 띄어 1969년 한신공영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아 나간다.

한신공영은 김 창업주가 1950년에 설립한 건설업체다. 1970년대 중반 대규모 아파트 분양과 중동건설 붐을 바탕으로 빠르게 사세를 확장한 기업이다. 건설부가 발표한 도급 한도액 순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신공영은 1972년 44위, 1973 19위, 1974년 10위 등 가파른 성장을 지속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김 전 회장은 입사 2년만인 1971년 과장 승진과 동시에 맏사위 자리에 앉게 된다. 평사원 출신인 김 전 회장에게 김 창업주가 큰 딸을 내준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김 창업주가 얼마나 김 전 회장을 신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전 회장은 1979년 초반 사람들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한 강남 반포 일대의 땅에 관심을 보였다. 김 전 회장은 직원들의 만류에도 그 땅을 대거 사들였고, 1976년부터 산신공영의 신반포아파트가 1단지부터 11단지까지 대규모로 들어서면서 직원들도 그의 통찰력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할인마트의 원조…박리다매 통한 차입 경영
월급은 현금, 떡값은 직접…파격행보 이어가

1978년부터 한신공영은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아파트 내 상가 분양 이외에 유통업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에 김 전 창업주는 같은해에 뉴코아유통이라는 별도 법인을 설립하고 반포에서 30평짜리 ‘뉴코아슈퍼마켓’을 앞세워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1980년 한신공영은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옆에 연면적 3만㎡에 육박하는 규모의 뉴코아쇼핑센터를 개점하고 1층 슈퍼마켓을 김 전 회장이 직접 운영하게 했다. 이 사업은 성공적이었는데, 영업개시 5개월 만에 월 매출 1000만원을 돌파했을 정도였다.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1억4000만원이 넘는 돈이다.

뉴코아쇼핑센터의 순항과 김 창업주의 장남 태영씨가 한신공영 경영권 승계가 맞물리면서 김 전 회장 인상의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1981년 한신공영이 뉴코아쇼핑센터가 포함된 상가사업부를 인력보강과 동시에 별도의 법인인 뉴코아로 분리했기 때문. 회장직에 오른 태영씨는 뉴코아가 분가된 후 한신공영 내 유통사업부를 두고 1983년부터 한신코아백화점 전주점으로 시작으로 노원점과 광명점, 성남점, 대전점으로 이어지는 5개의 백화점을 별도로 운영했다. 백화점 명칭은 ‘한신코아’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한신코아는 현재 이랜드그룹의 2001아울렛을 진두지휘했던 윤석봉 세이브존 사장에 인수돼 ‘세이브존’으로 남아있다.

◆ 최초의 24시간 영업

한신공영과 뉴코아의 분리가 마무리된 시점은 1993년이다. 이후 김 전 회장은 무서운 속도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3년간 신규 개설한 백화점과 할인점이 17개에 이를 정도였다. 실제 1994년 인천점과 평촌점에 백화점을 지었고, 1995년에는 킴스클럽을 설립하면서 창고형 할인점 사업에 진출했다.

김 전 회장에게는 ‘일벌레’, ‘미스터 불도저’ 등과 같은 닉네임이 따라 붙었다. 일에만 매달리는 김 전 회장을 보고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동기들이 왕복항공권을 구입해 거의 강제로 말레이시아로 휴가를 보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 킴스클럽 마트.

김 전 회장은 기존 유통업계판도를 뒤흔들었다. 뉴코아의 박리다매 전략은 당시에는 찾아보기 힘든 경영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뉴코아의 사훈이 ‘외삼촌 떡도 싸야 산다’였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킴스클럽은 국내 최초로 24시간 연중무휴 영업을 도입했고, 뉴코아에서는 고졸 출신도 능력만 있으면 점포장에 오를 수 있는 등 파격의 연속이었다. 김 전 회장은 매년 설마다 전국 사업장을 일일이 방문하면서 계장급 이상 직원에게 상여금을 직접 나눠주기도 했다. 월급도 전액 현금으로 줘 월급날에는 총무부서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이런 독특한 조직문화는 직원들에게 단합과 애사심을 심어줬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체계적이지 못한 시스템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월급을 현금으로 줬다는 것은 유통업체에 필수적인 전산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회장이 직접 사업장을 일일이 돌며 직원들을 챙겼다는 것은 오너가 아니면 직원들은 어떤 것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재계 27위에 계열사만 18개가 넘는 대기업이 회장 1명의 ‘원맨쇼’로 운영됐다는 평가다.

결국 이같은 문제는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이어졌다. 제동을 걸어줄 직원이 없으니 김 전 회장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던 것이다. 실제 점포망 확장에 따른 차입금은 무서운 기세로 늘어났다. 무엇보다 입지가 중요한 유통업의 특성상 당시 기준으로 1개 점포를 확장하는데 최소 1000억원 이상이 소요됐다. 1996년까지 확장한 17개 점포만 따져도 최소 1조7000억원 이상이 차입금으로 묶여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1996년 말 뉴코아그룹의 재무상황은 자본금 2117억원, 매출 2조2788억원, 부채 2조5912억원이었다. 이에 따른 자기자본비율과 부채비율은 각각 8.0%, 1223.0%로 매우 불량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금백화점과 미금킴스클럽, 화정백화점, 창원백화점, 창원킴스클럽, 일산백화점, 의정부백화점 등이 1997년말 개장을 목표로 한창 공사중이었기 때문에 차입금 규모는 더욱 늘었다.

재계 27위의 몰락…매출은 줄고, 빚은 늘고
회장님의 파라만장 한 노후…재기 도전하나

뉴코아그룹은 1997년 11월 뉴코아와 뉴코아종합기획, 뉴타운건설, 뉴타운기획, 시대종합건설, 시대물산, 시대유통, 시대축산 등에 대한 화의신청에 들어가면서 해체가 진행됐다. 주력 기업인 뉴코아는 1999년 법정관리를 거쳐 2003년 이랜드가 인수하고 2004년 6월 법정관리에서 벗어나 정상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1998년 회장직에서 물러난 김 전 회장은 뉴코아 계열사 가운데 살아남은 뉴타운사업(씨마유통)과 온라인 쇼핑몰 업체인 비투올네트를 발판으로 재기를 시도했다. 씨마유통을 통해 1998년 부천에 패션쇼핑몰 ‘씨마1020’을 열었고, 비투올네트를 통해서는 국내 최초 인터넷 할인쇼핑몰을 여는 등 사업영역을 넓혀갔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되면서 사업 전반에 제동이 걸렸다. 김 전 회장은 1994년 8월부터 1995년까지 허위 리스계약서를 작성해 10개 리스사로부터 24차례에 걸쳐 357억여원을 대출받아 빼돌렸다. 이 중 1억5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 졌다. 2002년 김 전 회장은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2003년 말에도 김 전 회장은 또 기소됐다. 계열사였던 하이웨이유통과 시대종합건설을 통해 허위재무제표를 작성해 1994년 7월부터 1996년 11월까지 금융회사로부터 1490억원을 대출받았고, 1374억원 상당의 공모 보증 회사채를 발행한 혐의다.

결국 2004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김 전 회장에게는 무리한 점포확장과 분식회계를 통한 사기대출, 독선적인 기업경영 등 온갖 비난이 빗발쳤다.

현재까지 김 전 회장은 철저한 은둔생활을 고수하고 있다. 전직 임원들이나 측근들도 그의 근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언론 등 각종 매체에서 들리는 소식을 종합하면 자택에서 경제·경영관련 서적을 읽거나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역시절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골프도 가끔 즐긴다는 후문이다. 현재는 당뇨와 심장병으로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재기의 발판으로 삼았던 씨마유통은 외국계 투자회사로 이미 넘어간 상태다. 비투올네트도 2006년 해산간주, 2010년 12월 청산 종결됐다. 해산 전까지 김 전 회장의 사위인 박종채씨가 대표이사를 맡았고, 딸 재연씨가 이사를, 외동아들인 태훤씨가 감사를 맡았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 계속되는 은둔생활

하지만 김 전 회장 일가로 범위를 넓히면 ‘재기’ 움직임은 한층 뚜렷하다. 먼저 종채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유식·베이비푸드 유통업체인 커머스파크는 일본 이유식 1위 업체인 와코도와 국내 단독 수입 판매권을 가지고 있다.

2001년 커머스재팬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 회사는 2011년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했고, 신세계몰과 롯데마트, GS슈퍼마켓, 이마트, 코오롱 W스토어, 홈플러스, CJ올리브영, 농협중앙회 등 국내 대부분의 유통업체들과 거래를 이어오고 있다. 종채씨의 부인이자 김 전 회장의 딸인 재연씨는 이 회사의 감사 자리에 올라있다.

재연씨는 얼마 전까지 인터넷 육아·완구용품 쇼핑몰인 마이토이월드 사장자리에 있었다. 경기도 광주시에 본사가 있는 마이토이월드는 한때 업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2002년 모 신문사로부터 업계 최우수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들 태훤씨가 이사를 맡고 있었다.

태훤씨는 2006년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김 전 회장과 관련해 “가끔 경영자문을 해주시지만 직접적 관련이 없는 독립회사”라며 “아직은 작은 업체들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마이토이월드와 커머스재팬을 김 전 회장의 재기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것을 강하게 부인했다.

김 전 회장 측근도 “아직은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라고 판단하고 계시다”며 “아버지로서 자식들의 기업이 잘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