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고, 귀 막고, 입 닫았으니…

[파이낸셜투데이=이한듬 기자] LG전자가 퇴사자의 작심발언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자신이 LG전자에서 5년간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고 주장한 한 네티즌은 최근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지난 4월 회사를 그만두면서 구본준 부회장에게 보낸 메일을 공개했다. 해당 메일에는 그가 근무시절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회사 내부의 문제점들을 꼬집는 직언이 담겨 있다. 이후 해당 글은 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스스로를 전현직 LG직원이라고 소개한 수많은 네티즌들이 댓글을 달며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면 LG전자 측은 “개인의 의견 개진일 뿐”이라며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정도경영’을 강조한 구 부회장이 “세계 곳곳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있다”며 내부적인 문제 개선의 의지를 피력한 만큼, 전현직 직원들의 문제제기에도 귀를 기울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LG전자 구본준 부회장
LG전자 CTO 소속 선임연구원 출신 퇴사자, 회사 혁신정책·조직문화 비판
전현직 직원들 “공감한다” 뜨거운 반응…LG전자 “개인의 의견 개진일 뿐”

LG전자는 지난해 10월 휴대폰 사업분야의 실적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한 남용 전 부회장을 대신해 구본무 회장의 친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을 새로운 사령탑에 앉혔다. 이후 구 부회장은 ‘독한 정신’과 ‘혁신’을 강조하며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고, 1·2분기 실적에서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구 부회장의 기업 문화 혁신 체제가 효과를 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이 같은 ‘혁신’에 대한 내부적인 평가는 업계의 분석과 크게 어긋나는 모습이다. 자신을 LG전자 연구원 출신이라고 밝힌 한 퇴사자가 최근 블로그를 통해 회사 근무시절 직접 경험한 혁신정책과 조직체계의 이면을 폭로한 것이다.

말 뿐인 혁신?

지난 5년간 LG전자 최고기술책임자(CTO) 소속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고 밝힌 최모씨는 올 4월 퇴사하면서 구 부회장에게 보낸 메일 내용을 지난 16일 개인의 블로그에 공개했다. 최씨가 공개한 장문의 메일에는 LG전자의 혁신·보안·소통 등 조직 전반적인 문화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그는 먼저 “(LG전자가) 혁신을 하는 회사가 아니라 혁신을 하겠다고 ‘주장’만 하는 회사처럼 보인다”라고 꼬집었다. 혁신을 하려면 위험 감수를 해야 하는데 아이디어 구상단계에서부터 투자수익률을 먼저 계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씨는 또 경직된 보안의식에 대해서도 일침을 날렸다. 아이디어 조사와 기술에 대한 궁금증 등으로 인터넷을 이용해야 하는데, 사측이 어떤 설명이나 공지도 없이 다른 사이트에 대한 접근을 막아놔 큰 불편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LG전자가 앞으로 크게 수익을 낼 수 있는 제품을 만들 기회를 이런 이유로 놓치지 않았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지적했다.

토론 없는 상명하복식 조직문화

이와 함께 최씨는 불합리한 조직문화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자유로운 의견개진과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토론이 필요하다. 하지만 LG전자 내부에서는 CEO와 CTO, 연구소장의 코멘트가 있으면 그 진위 여부나 이유에 대한 논의 없이 바로 그 코멘트에 맞게 의사 결정이 난다는 게 최씨의 주장이다.

특히 ‘경쟁사가 어떻게 한다더라’는 이야기가 있을 경우, 비판적인 토론 없이 의사 결정이 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그는 “의사 결정 시에 관련자들이 반드시 이유를 이해하고 필요하면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조직 문화가 돼야 진정으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회사에서 연구원들을 주인이라고 생각해주지 않는데 주인의식이 생길 리 만무하다”며 “지각을 체크해서 각 조직 별로 통계를 매일 보고하고, 화장실에는 ‘기본을 지키자’, ‘슬리퍼를 신지 마라’, ‘복장을 단정히 해라’, ‘식사 시간을 준수해라’ 등의 문구가 붙어 있다. 연구원을 철부지 중고생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이 같은 작심발언을 한 이유에 대해 최씨는 “저는 LG전자를 사랑한다”면서 “LG전자가 방향을 바로잡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기에 공개한다”고 설명했다.

너도나도 ‘공감’

한편, 최씨의 글은 공개 직후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자신을 LG전자 전현직 직원이라고 밝힌 수많은 네티즌들이 최씨의 블로그에 일일이 댓글을 남기며 각자의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그 중에는 최씨의 글이 너무 편향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공감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이들은 LG전자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최씨의 경우처럼 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회사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 현재 제기되는 지적들을 회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일침을 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 LG전자는 최씨가 회사의 전직 연구원 출신이 맞다고 인정을 하면서도 글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최씨의 글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의견 개진이기 때문에 별다른 대응책은 논의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한 최씨의 글에 공감하며 회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LG전자 전현직 직원들의 댓글에 대해서도 “개개인의 의견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한편, 구 부회장은 최근 ‘정도경영’의 확립을 강조하며 내부의 부정부패나 불합리한 관행을 뿌리 뽑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그는 “세계 곳곳에 계신 여러분으로부터 조직문화 혁신과 제품제안, 사업전략 등의 의견을 직접 듣고 있다”며 “제보된 사례에 대해 하나하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만일 실제로 비위 사실이 드러날 경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최씨를 비롯한 전현직 직원들의 문제제기는 회사의 부정부패와 관련된 제보는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불합리한 관행을 지적한 만큼, 향후 구 부회장이 이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문제점을 개선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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