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 재벌의 추악한 뒷모습

▲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삼성이 노동자에게 빨대를 꽂아 피를 쭉쭉 빤 다음 박근혜와 최순실에게 토해냈다.” 서울 도심을 가득 메운 시민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황상기 씨의 절규였다. 그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고(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다. 권력에 빌붙은 대한민국 최고 글로벌 기업 삼성그룹의 도덕적 해이와 비윤리적 행위를, 국민들은 도대체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최대 기업인 삼성그룹이 ‘국정논단’의 중심에 선 최순실 씨와 그의 딸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권력의 눈에 들기 위해 온갖 편법과 뒷돈까지 동원하는 한국 최고 재벌의 뒷모습에 싸늘한 시선이 쏠리고 있다.

삼성그룹이 독일 승마사업에 280억원 가량을 지원하기로 하고, 정부로부터 사업상 지원을 약속받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10일 주요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로베르트 쿠이퍼스 독일 헤센주 승마협회 경영부문 대표 겸 비덱스포츠 공동 대표는 “삼성그룹이 노조 문제와 연구비 등 정부 지원을 약속 받고 최 씨 측에 자금을 지원했다”며 “독일에서만 2200만유로(280억원)을 지원하기로 계획돼 있었다”고 털어놨다.

비덱은 최 씨와 그의 딸 정유라 씨가 독일에 세운 회사다. 최 씨는 K스포츠재단의 모금 자금을 비덱을 통해 빼돌리려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상태다. 삼성그룹은 앞서 정씨에게 십억원대의 말을 후원하고 승마 경기장을 구입해줬다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최씨 母女-삼성, ‘3자 협력구조’

쿠이퍼스 대표는 한 때 비덱스포츠의 전신인 코레스포츠의 공동 대표였던 인물이다. 공동 대표를 맡는 과정에서 한국 승마선수들의 독일 전지훈련 등 최 씨 측과 사업 계획을 상세히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레스포츠에 공동대표로 합류한 쿠이퍼스 대표는 사업활동이 불법적이라는 의심이 들어서 사흘 만인 지난해 9월 1일 사퇴했다고 밝혔다.

쿠이퍼스 대표는 280억원의 지원금과 선수들의 전지훈련 비용 외에도 최 씨가 계획하던 스포츠센터 건립 자금도 삼성그룹이 대주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최 씨 측으로부터 삼성그룹이 정부 지원을 약속받고, 최 씨 측에게 자금을 지원하기로 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삼성그룹에 노조 문제 협력과 연구비 등의 구체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삼성은 최 씨 모녀를 도와주는 ‘3자 협력 구조’라는 설명이다.

삼성그룹은 현재까지 비덱스포츠에 35억원, 전지훈련 비용 등으로 186억원을 2020년까지 지원하기로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280억원 지원 계획대로라면 검찰 수사에서 추가 자금 지원이 드러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검찰도 이같은 자금 흐름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선 상황이다. 검찰은 지난 8일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삼성전자 사옥 대외협력단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2008년 삼성 비자금을 수사했던 특별검사 이후 삼성전자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은 8년만이다.

◆직접 찾아가 사업 안내

삼성그룹은 최 씨 모녀를 위해 거액의 돈만 내놓은 게 아니었다. 삼성전자 사장이 독일로 직접 가서 최 씨의 사업과 관련해 논의를 나눈 사실도 드러났다. 삼성그룹 법무실 수석 변호사까지 대동한 출장이었다. 특혜 의혹이 일자 삼성그룹은 독일 현지에서 ‘흔적 지우기’에 급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 따르면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과 황 모 전무, 그리고 법무실 수석변호사 등 3명은 지난해 여름 쿠이퍼스 대표를 만났고, 이같은 자리는 같은해 9월 초까지 여러 차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 출장팀은 쿠이퍼스 대표를 코레스포츠 공동대표로 영입하는 문제와 한국 승마선수의 전지훈련 문제들을 논의했다는 전언이다.

그런데 이 자리를 주선한 인물이 바로 최 씨라는 증언이다. 쿠이퍼스 대표는 최 씨와 최 씨 측근, 삼성그룹 출장팀을 자주 만났고, 한 차례를 빼고는 최 씨가 함께 있었다고 전했다.

쿠이퍼스 대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스타이겐베르거 호텔에서 식사할 때의 상황도 상세히 설명했다. 최 씨가 전화를 받기 위해 자리를 오래 뜨기도 했고, 최 씨와 통역을 통해 대화했다며 당시 상황을 기억해 내면서 “삼성그룹과 최 씨의 관계가 좋아 보였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에 따르면 승마협회 회장과 부회장을 맡고 있는 박 사장과 황 전무는 독일로 출장까지 가서 아무런 공식 직함이 없는 최 씨 모녀의 일을 도와준 셈이다. 삼성그룹은 최 씨 모녀 외에도 최 씨 조카 장시호 씨가 만든 동계스포츠 영재센터에 5억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특혜 의혹이 일자 삼성그룹이 흔적 제거에 나선 정황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최 씨의 딸인 정 씨가 타는 ‘비타나5’라는 말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스페인의 유명 승마 선수가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 말이 팔리자 유럽의 승마 전문지는 ‘삼성팀’에 팔렸다고 보도했다. 삼성그룹은 승마협회 회장을 맡은 회사로서 선수를 지원하기 위해 이 말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이 말은 사실상 정 씨 혼자 타게 됐다. 논란이 불거진 지난 8월 삼성그룹은 말을 다시 팔았다. 이에 승마 전문지의 기사에서도 삼성그룹의 이름은 빠졌다.

특혜 의혹 은폐에 나선 정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400㎞ 정도 떨어진 엠스데텐의 ‘루돌프 자일링거’ 승마장은 지난 5월 국내 문구업체 모나미의 송하경 대표이사가 230만유로를 들여 구입한 것으로 돼 있다. 문구업체 대표가 뜬금없이 독일의 승마장을 구입한 배경을 두고 온갖 추측이 나돌았다.

그런데 모나미가 삼성전자와 99억원대의 프린터, 사무기기 관리용역 계약을 맺은 사실이 나오면서, 삼성그룹이 사실상 모나미를 앞세워 승마장을 구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이 때문에 해당 승마장의 실제 주인이 삼성그룹 아니냐는 추측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최순실에 ‘물심양면’…재단 출연금이 전부가 아니다
“별도로 직접 280억원 지원”…독일 현지 증언 나와
삼성 사장이 사업 컨설팅까지…‘흔적 지우기’ 급급
뒤집어 지는 거짓 해명들…이재용은 무엇을 원했나

◆‘삼성 출신’ 마사회장

정 씨의 독일 승마 연수에 과거 삼성물산 회장을 지낸 현명관 한국마사회 회장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박재홍 전 마사회 승마 감독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최 씨 측근이 (지난해 10월) 나한테 전화를 걸어 ‘현 회장이 오케이(OK) 했으니까 독일로 오라’고 했다”고 밝혔다.

박 전 감독은 정씨가 훈련 중인 독일로 두 달 반 동안 파견을 갔다 오는 등 정 씨와 대한승마협회, 마사회 사이의 관계 등을 잘 아는 인물이다.

박 전 감독은 “두 사람(최 씨와 현 회장)이 전화 통화하는 관계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승마협회가 마사회 승마 감독인 나를 ‘2020년 도쿄올림픽 준비위원단장’으로 임명했고 ‘장애물 종목 선수 4명을 선발해 독일로 보낼 테니 먼저 가서 말을 사고 승마장 정비를 해두라’고 지시를 했다”며 “막상 독일에 가보니 사기를 당한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이번달 초 검찰 조사를 받은 박 씨는 “승마협회와 삼성 관계자들의 지시에 따라 독일 현지에 있는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와 연락했지만 그들이 말 값을 주지 않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씨의 독일 승마 연수를 위해 승마협회가 2015년 10월에 만든 ‘중장기 로드맵’의 초안을 아예 마사회가 작성한 정황도 확인됐다. 승마협회가 승마 유망주를 선발해 독일로 전지훈련을 보낸다는 내용의 로드맵 초안을 마사회 산하 승마진흥원이 지난해 여름 먼저 작성했다는 증언이다.

또 로드맵 원본 파일의 ‘지은이’ 항목이 승마협회(KEF)가 아닌 마사회의 영문 약칭 ‘KRA’로 돼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지금까지 정유라씨 지원과 관련된 각종 의혹을 전면 부인해 온 마사회가 이 문건의 최초 생산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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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협조 필요했나

이처럼 최 씨 일가에 직접적으로 돈을 건네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기업은 아직까지 삼성그룹이 유일하다. 삼성그룹 측은 그동안 미르·K스포츠재단 등에 출연금을 낸 것 이외 따로 돈을 댄 것은 없다고 밝혀왔다. 게다가 그동안 정씨의 승마 활동과정에 깊숙이 개입해 왔다는 의혹에 대해서 부인으로 일관해 왔다.

하지만 사실상 삼성그룹의 해명들이 거짓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 됐다. 이에 검찰 수사에 따라 경영진의 사법처리 가능성까지 나온다.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이 최 씨 측에 지원한 돈이 미르와 K스포츠재단 모금에 참여한 것 이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들 재단에 계열사들을 동원해 모두 204억원을 냈다. 대기업 53개사가 낸 774억원 재단 출연금 가운데 26%로 가장 많은 돈이다.

여기에 삼성그룹이 별도로 최 씨 일가에 거액의 자금을 직접 지원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그 배경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재계 주변에선 삼성그룹이 박 대통령의 비선실세를 통해 정부와 청와대 등으로부터 사실상 협조를 구하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삼성그룹이 비덱스포츠에 돈을 집중적으로 보낸 시기는 지난해 9월과 10월에 집중됐다. 이 당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마무리 시점이다. 재계는 당시 삼성물산 합병이 사실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지배를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합병 진행 과정에서 미국계 투기자본인 엘리엇펀드의 합병반대 선언이 튀어나왔다. 국내외 투자자들의 반대의견도 이어졌다.

이 상황에서 삼성물산의 최대주주 중 한 곳인 국민연금의 선택이 중요했다. 국민연금의 합병안 찬성으로 주총 표 대결에서 가까스로 삼성물산이 엘리엇을 상대로 승리했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부회장 등 삼성그룹 쪽과 국민연금 이사장 등이 삼성물산 주총 전에 만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밖에 삼성입장에선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간의 얽혀있는 그룹 출자구조 등을 풀기 위해 정부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검찰 관계자가 최근 비공개 브리핑에서 ‘재단을 거치지 않고 최 씨 측에 돈을 건넨 것은 삼성그룹뿐’이라는 취지로 한 발언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삼성그룹이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통한 공개모금 외에 정권 최고의 비선실세로 꼽히며 전횡을 부려온 최 씨 측과 별도의 채널을 가지고 지원을 했거나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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