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 적통의 시대 열리나?

[파이낸셜투데이=이한듬 기자] 현대중공업이 3세 경영체제로의 시동을 거는 모습이 포착돼 업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62) 한나라당 의원의 장남 기선씨(29)가 최근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이 회사에 입사한 것으로 알려진 까닭이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이 본격적인 3세 경영체제를 준비 중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기선씨가 현대가의 ‘정씨 적통론’을 고수하는 아버지 정 의원의 뜻을 이어 ‘정주영-정몽준-정기선’으로 이어지는 체계를 갖출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여권의 유력한 대권주자로 꼽히는 정 의원이 내년으로 다가온 총선을 앞두고 향후 ‘정치인=재벌=대물림’이라는 정치적 공세를 피하기 위해 하루 빨리 경영활동에서 손을 떼려는 목적으로 후계구도를 구축하려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현대중공업의 3세 경영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들을 <파이낸셜투데이>가 쫓아가봤다.

▲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과 아직 베일에 싸인 정 의원의 아들 기선씨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 장남 기선씨, 최근 현대중공업 서울사무소 입사
‘3세 경영 본격화’ 전망 이어져…정 의원 대권활동 위한 안배라는 해석도

최근 정재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오너일가 3세인 정기선씨가 이 회사의 서울사무소 재정부 재무팀에 입사했다. 물론 정씨의 실제 입사한 년도는 지난 2009년 이지만, 2년간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최근 한국에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기선씨의 현재 공식직함은 ‘대리’이다.

3세 경영체제 구축? 분분한 의견들

하지만 기선씨의 입사에 대한 현대중공업의 답변은 크게 엇갈린다. 기선씨가 소속된 곳으로 알려진 현대중공업 서울사무소측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기선씨가 입사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고 언론에 알려진 내용 또한 오보”라며 “기선씨는 지난 2009년 입사한 뒤 유학을 가기 전 이미 퇴사했기 때문에 현재는 회사 소속이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반면 본사 관계자는 “입사년도는 2009년이 맞지만 퇴사한 것은 아니다”라며 “입사 후 직원연수 명목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갔었고, 현재 귀국은 했지만 회사로 출근할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회사 계열사 관계자는 “입사한 것이 맞다”라고 말하는 등 서로 엇갈린 답변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이 기선씨를 주축으로 3세 경영의 초석을 닦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 의원이 정치활동으로 회사경영활동에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오너의 빈자리를 메울 시기가 됐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그간 전문경영인들에게 회사 경영을 맡겨 왔다. 현재는 이재성 사장과 김외현 부사장이 공동대표로 회사의 사령탑을 맡고 있다. 하지만 10년간 회사를 이끌던 민계식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물러난 이후 경영 상황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올 상반기 수주잔량 기준으로 세계 1위 조선소 타이틀을 삼성중공업에 내주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물론 기선씨가 아직 29살의 젊은 나이인 데다가 현장 경험이 부족해 지금으로선 당장 경영일선으로 나서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차츰 안정적인 후계구도의 기틀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는 게 재계 일각의 시각이다. 이에 기선씨가 현대중공업으로 바로 복귀하기 보다는 외국계 회사에 입사했다가 향후 경영수업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대권주자’ 정몽준 위한 조치?

그런데 일각에서 현대중공업의 3세 경영체제 구축에 무게를 싣는 이유는 또 있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정치권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정몽준 의원이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현재 현대중공업의 지분을 10.8% 보유한 최대주주이지만 정치적 공세와 각종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다분한 까닭에 회사 경영활동에는 거리를 두고 있다. 특히 국내 굴지의 대기업 오너가 출신인 정 의원으로서는 ‘정치인=재벌=대물림’이라는 공세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경영활동에 참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본격적으로 대권주자로 뛰어든 현 상황에서는 더욱 운신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CEO출신인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재계와 관련된 이력과 많은 보유재산 때문에 다른 후보들로부터 온갖 정치적 공세를 받아야만 했다. 결국 이 대통령은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당선 이후 장학재단인 ‘청계재단’에 사재 331억원을 출연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정 의원 역시 본격적인 총선이 시작되기 전 자신이 보유한 지분을 정리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자칫 논란이 될 수 있는 씨앗을 일찌감치 정리하고 대권활동에 매진할 것이라는 것.

하지만 누구보다도 현대가의 ‘정씨 적통론’을 강조하던 정 의원이 무작정 회사 경영에서는 손을 떼긴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현대가의 경영승계는 정주영 직계 자손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던 정 의원은 지난 2006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경영권을 두고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일명 ‘시동생의 난’으로 아직까지도 회자될 정도다.

이처럼 가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진 정 의원이기 때문에 대권활동에 매진하기 전 장남인 기선씨를 후계자로 내세워 3세 경영의 초석을 다지려 했다는 게 일각의 진단이다. 물론 정 의원은 슬하에 딸인 남이(28)양과 선이(25)양, 막내아들인 예선(15)군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 유학중이거나 나이가 어려 지금으로서는 장남인 기선씨가 3세 경영의 후계구도를 구축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꼽힌다.

그러나 회사 측은 기선씨의 입사 자체를 부인하거나, 직함은 유지되고 있지만 출근여부는 미정이라는 등 일관되지 않은 입장을 보이고 있어, 현대중공업의 3세 경영에 본격적으로 불이 당겨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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