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 향한 대학의 노력

▲ 한양대학교 본관. 사진=이건엄 기자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전국 유명 대학교에는 기업의 이름을 달고 있는 건물들이 하나씩은 있다. 기업들이 기부와 이미지제고, 홍보 등 다양한 목적으로 금전적인 지원을 하거나 직접 지어주는 조건으로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대학교 입장에서도 새 건물을 증축하는 데 재정적 부담을 덜 수 있어 ‘윈윈’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건물들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해당학교 관계자나 일부 학생들만이 알고 있을 뿐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준비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대학과 기업의 ‘합작’ 건축물들을 직접 찾아가 어떠한 사연이 있는지 알아봤다. 이번 주인공은 한양대학교와 성공회대학교다.

서울 지하철 2호선 한양대역 2번 출구로 나와 한양대학교로 향했다. 방학이라 그런지 한양대학교 주변은 비교적 한산했다. 역에서 200m 정도를 이동하자 한양대학교 본관이 눈에 들어왔다.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처럼 5개의 기둥이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본관 입구는 위풍당당함 그 자체였다. 특히 본관 앞 광장 중에 포효하는 사자상은 한양대학교의 상징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뒤로한 채 캠퍼스 안내판 앞으로 다가가 사전에 조사해온 리스트와 비교해 동선을 짰다.

한양대는 분교인 안산 에리카(ERICA) 캠퍼스를 포함해 민간기업과 공기업, 지자체 가릴 것 없이 다양한 곳에서 투자를 받아 건물을 짓고 있다.

이는 모 재단인 학교법인 한양학원의 ‘실용학풍’ 정신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양대학교는 이를 바탕으로 산학교류를 활성화해 학생들의 진로 선택에 도움을 주고 있다.

◆ 정 회장의 남 다른 모교 사랑

한양대 서울캠퍼스에는 정몽구 미래자동차연구센터와 한양종합과학기술원, 재성토목관, 퓨전 테크놀로지 센터(Fusion Technology Center‧FTC), 경영관 등 기업들의 후원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즐비하다.

이 중 본관을 기점으로 가장 가까운 정몽구 미래자동차연구센터를 첫 방문지를 선택하고 ‘대장정’을 시작했다. 본관에서 동쪽으로 100m정도를 이동하자 주변 건물들과 확연이 다른 현대식 건축물이 보였다.

▲ 정몽구 미래자동차연구센터. 사진=이건엄 기자

정몽구 미래자동차연구센터는 미래의 자동차 산업을 이끌 젊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2014년 4월 착공에 들어가 2015년 5월에 완공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연면적 1만2724㎡(3848평)에 지하 1층, 지상5층 규모로 제1공학관과 노천극장 사이에 위치해 있다.

한양대 공업경영학과 62학번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롭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지어진 이 건물은 현대건설에서 시공을 맡았다. 공사비용은 정 회장이 모교에 낸 기부금 약 150억원과 추가로 한양대가 50억원을 더해 충당했다.

건물 내부에는 차량실습실과 실험장비실, 강의실, 세미나실, 미래차 홍보관, 정몽구 컨퍼런스홀, 학생 편의시설 등이 들어서 있다. 내부 시설과 건물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동차 인재 양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실제 기계공학부에서 분리돼 2011년부터 신입생을 받기 시작한 미래자동차학과는 정원 40명 전원이 4년간 전액 장학금을 받는 한양대 대표 학과다. 대학원에는 전액 장학금과 연구 보조비가 주어질 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그룹 입사까지 보장되는 자동차전기제어공학 석사과정도 있다.

삼성이 지원하는 한양대 소프트웨어학과, 성균관대 휴대폰학과와 함께 이공계 우수 인재를 ‘입도선매’하는 과정이다.

실용학풍의 정수는 기업의 ‘후원’
자동차산업 인재양성 위한 기틀마련

또 현대차와 기아차 연구원들도 정몽구 미래자동차연구센터에 입주해 있고, 특히 독일 BMW 산학연구실도 5층에 자리 잡고 있어 자동차 산업의 메카로 거듭나고 있다.

정몽구 센터 건립은 정 회장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정 회장이 젊은 시절을 보낸 모교에 최초로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건물이 설립됐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의 기부로 건립된 건물에 정 회장의 이름이 들어간 건 한양대 정몽구 센터가 최초다. 2000년 서울대학교에 현대‧기아 차세대 연구관과 고려대학교에 현대차 경영관이 들어섰지만 정 회장의 이름은 들어가지 않았다.

한양대 관계자는 “건물의 명칭에 대한 현대차 측의 요구사항은 전혀 없었다”며 “학교 건물명을 정하

▲ 정몽구 컨퍼런스홀. 사진=이건엄 기자

는 것은 학교의 권한이며, 기부자인 정 회장이 한양대를 대표하는 동문이라는 점을 고려해 명칭을 정했다”고 밝혔다.

준공식 당시 정 회장은 “학생들과 연구진이 창의적인 발상과 끊임없는 도전으로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이끄는 주역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

이영무 한양대 총장도 “정몽구 미래자동차연구센터가 자동차를 연구하는 학생들의 꿈과 미래를 실현하는 배움의 터전이 되고 나아가 인류 발전에 공헌하는 글로벌 리더 양성의 산실이 되게 하겠다”고 말했다.

 

◆ 산학협력의 모든 것

정몽구 미래자동차연구센터를 뒤로한 채 캠퍼스 동쪽에 위치한 한양종합과학기술원(HIT)으로 자리를 옮겼다. 산 위에 지어진 캠퍼스 특성상 상당히 많은 언덕을 지나서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 한양종합과학기술원. 사진=한양대학교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한양종합과학기술원(HIT)은 산학협력 테크노파크 사업을 위해 2002년 완공됐다. 이 건물은 지하 2층, 지상6층 규모로 중앙도서관 바로 뒤에 자리 잡고 있다. 공사비용은 삼성전자와 포스코, GS건설이 공동으로 185억원을 출연해 충당했다. 건물 내부에는 산학협력을 위해 상당히 많은 기관들이 입주해 있다. 6층에는 큰 세미나실이 있어 취업설명회가 자주 열린다.

HIT와 궤를 같이하는 건물로는 FTC로 불리는 ‘퓨전 테크놀로지 센터’가 있다. FTC에는 일본 이화학연구소의 서울 지부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공동 반도체 연구센터가 입주해 있다. 또 건물 내에는 융합전자공학부와 기계공학부, 에너지공학부가 사용하는 실험실들이 위치해 있다. FTC의 공사비용은 입주기업들의 기부금을 모아 충당됐다.

FTC 바로 옆 구역에는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50학번인 故 송재성 성호그룹 회장의 이름을 딴 재성토목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은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로 캠퍼스 서쪽 끝에 위치해 있다. 공사비용 90억원 중 55억원을 송 회장이 기부를 통해 충당했고 나머지 35억원은 한양대학교에서 부담했다. 재성토목관의 시공은 송 회장이 운영하는 건설회사인 지테크프라임이 맡았다.

47세까지 공무원 생활을 한 뒤 사업을 시작한 송 회장은 맨주먹으로 창업해 자산 5000억원대의 성호그룹을 일궈냈다. 성호그룹은 지테크프라임을 비롯해 건설과 건축자재, 정보통신 등 10여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준공 당시 송 회장은 “제가 번 돈으로 사회에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싶었다”며 “한국전쟁 당시 부산 피란지에서 천막을 치고 수업을 받았던 시절이 떠올라 후배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양대 서울캠퍼스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신한은행의 후원금으로 지어진 경영관이다. 2008년 초 완공된 경영관은 경제금융대학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신한은행은 경영관을 신축하면서 지하에는 행원파크를, 2층에는 신한라운지를 만들어 학생들의 편의시설 확충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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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울 수 없는 ‘한화’라는 이름

같은날 늦은 저녁 한양대 취재를 마치고 서둘러 다음 목적지인 성공회대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시 구로구에 위치한 성공회대학교는 가톨릭 분파 중 하나인 영국 ‘성공회’의 한국 지부인 대한 성공회가 운영하는 종합 4년제 대학교다. 사회계를 중심으로 진보적인 학풍으로 유명하며 한국에서 비주류 경제학 연구가 가장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성공회대학교 본부로 사용되고 있는 승연관. 사진=이건엄 기자

이처럼 시장경제를 멀리하고 기업과는 거리를 둘 것만 같은 성공회대학교도 재벌의 후원을 받고 있다. 그 주인공은 국내 10대 그룹 중 하나인 한화그룹의 수장 김승연 회장이다.

한화와 성공회대가 구축한 긴밀한 관계의 흔적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성공회대의 아담한 캠퍼스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대학본부 건물의 이름은 아직까지도 김승연 회장의 이름을 딴 ‘승연관’이다. 이 작명에는 이재정 당시 총장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교 발전에 큰 공헌을 한 만큼 김승연 이사의 이름을 건물명으로 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살아 있는 대기업 총수의 이름을 대학 건물 이름으로 정하는 파격은 당시로서도 드물었다.

이에 김 회장은 성공회대가 한화건설에 맡긴 새천년관 건립공사 대금 140억원 중 10억원을 깎아주기도 했다. 현재 새천년관의 머릿돌에는 김승연 회장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밖에도 한화 푸디스트가 운영하는 학교식당이나 경영학부 과정에 있는 한화 갤러리아 인턴쉽 등 곳곳에서 한화그룹의 흔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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