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던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구조조정 재원확충을 위해 필요한 역할을 적극 수행하기로 한목소리를 내면서 실탄 마련 논의도 급물살을 타게 될 전망이다.

정부는 재정 지원과 함께 한은의 발권력까지 동원하는 재정과 통화정책의 ‘폴리시믹스(policy mix·정책 조합)’를 통해 재정확충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두고 다양한 방법론이 거론되고 있지만, 중앙은행의 원칙과 법적 테두리를 여러 차례 강조해온 한은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 2일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며 중앙은행의 역할론에 대한 재점검을 주문하고 나선 만큼 정부와의 정책 조합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책은행 출자 방안

먼저 구조조정 재원확충을 위한 방안으로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대한 출자가 있다. 그중 정부는 한은의 국책은행 증자를 통한 직접적인 자금지원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정부의 추경예산편성 등을 통한 재정 지원은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해 시간이 소요되고, 국책은행 입장에서도 즉각적인 자본확충이 이루지면 건전성 비율을 빠르게 높여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경우 발생하는 손실에 대비할 수 있다.

이에 한은이 수은에 지분을 늘려주는 방식을 검토해 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은의 수은 출자는 현행법상으로도 문제가 없다. 현재 한은은 수은 지분을 13.1%를 보유한 2대 주주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은이 수은에 9000억원을 출자한 전례가 있다.

반면 한은의 산은 출자는 산은법 개정이 뒤따라야 하는 점에서 실행에 옮겨지기까진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필요한 경우 산은법 개정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여서 한은이 산은에 출자하는 방안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다만 한은이 국책은행 출자를 단행하게 될 경우 금융시스템의 위기가 닥치지 않은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남용했다는 책임을 안아야하는 부담이 있다.

◆한은의 국책은행 채권 매입

한은이 산은의 산업금융채권(산금채)와 수은의 수출입금융채권(수은채)을 직접 매입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국책은행의 채권을 사주기 위해서는 정부가 보증을 서거나 한은법 개정이 필요하다.

한은의 채권 매입에 대해서는 국책은행들도 탐탁지 않은 입장이다. 현재 시장에서 산금채를 소화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한데다 채권도 부채여서 결국 빚으로 빚을 메운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한은의 채권 매입 방식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따라서 한은도 국책은행의 채권 매입 방안을 고려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김진일 고려대 교수는 “채권을 매입하면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며 “법개정을 통해 정부가 보증을 서게 되더라도 국채만 늘어나게 되고 결국 국가 신인도 등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코코본드 발행

산은이 발행한 조건부자본증권(코코본드)을 한은이 인수하는 방안도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산업은행의 경우 조건부자본증권 발행을 추진키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코코본드는 은행 자본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투자 원금이 주식으로 바뀌거나 상각되는 채권으로 국제 규정에서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된다. 때문에 코코본드를 발행하면 산은은 재무 건전성을 높일 수 있다.

한은이 산은의 코코본드를 채권 시장에서 매입하거나 정부의 보증이 있는 코코본드를 인수하는 것은 법적인 테두리 내에 있다.

이에 한은이 코코본드 인수 방안을 고려해 볼 가능성은 있다. 다만 투자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코코본드의 이자 미지급 상황이 발생하면 국민에게 부담이 전가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신중한 검토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통화정책 활용

한은의 입장에서는 기존에 갖고 있는 수단을 활용하는 방식도 염두에 둘 수 있다. 우선 특별융자 방식이 거론된다. 한은법 제65조에 따르면 자금 조달 및 운용의 불균형 등으로 유동성이 약화된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금융통화위원 4명 이상의 찬성으로 긴급 여신을 할 수 있다.

한은은 과거 1997년 외환위기 때 종금사와 증권회사를 대상으로 특별융자를 지원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는 은행권 자본확충펀드에 대한 대출로 유동성을 늘려준 바 있다.

금융중개지원대출 방안도 제시된다. 한은이 시중은행에 저금리로 자금을 빌려줘 시중은행에서 중소기업에 대출해주도록 하는 방식이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신용경색 등이 발생할 경우 대상 기업을 늘리는 방식으로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일시차입금으로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방식도 나오고 있다. 다만 연간 한도액을 변경할 경우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해 규모 등을 놓고 논의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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