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화장실 없는 맨션

[FT솔로몬] 앞서 언급했지만 사용 후 핵연료 하나만 보더라도 원전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원전은 그 자체로 비윤리적입니다. ‘사용 후 핵연료’란 원전에서 발전에 사용하고 난 연료봉으로 고준위폐기물로 분류됩니다. 이 ‘사용 후 핵연료’ 때문에 원전은 ‘화장실 없는 맨션’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사용 후 핵연료’를 처리할 마땅한 대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 하승수 변호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사용 후 핵연료’에는 플루토늄을 비롯한 방사성 물질이 대량으로 존재합니다. 플루토늄은 방사능이 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2만4000년에 달하는 물질입니다.

그래서 ‘사용 후 핵연료’는 최소 10만년, 20만년 이상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50만년 이상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이 ‘사용 후 핵연료’ 문제는 인류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생각해 낸 방법은 지하 깊숙이 묻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핀란드에서는 10만년짜리 보관창고를 짓고 있다. 온칼로(Onkalo)라고 불리는 이 핵폐기물처분장은 지하 500미터까지 굴을 파고 사용 후 핵연료를 넣고 묻으려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에 비해 10만년이라는 시간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입니다.

인류가 만든 오래된 건축물의 역사도 길어야 몇천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사용 후 핵연료’를 처리하려면 최소 10만년짜리 창고를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 하나만 생각하더라도 원전은 인류가 손대지 말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감당하지도 못하는 일을 저질러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용 후 핵연료’ 문제를 덮기 위해 원전확대세력은 갖은 수를 쓰고 있습니다.

재처리(요즘에는 재활용이라는 말까지 쓴다)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하는 재처리로는 양이 줄어들 뿐이지 10만년 이상 보관해야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그래서 ‘사용 후 핵연료’는 원전의 아킬레스건입니다.

아직은 답이 없습니다. 답이 없는데도 원전을 늘리는 것은 무책임한 일입니다.

지금도 고리와 월성, 영광, 울진의 원전안에는 1만3000톤이 넘는 ‘사용 후 핵연료’가 임시저장 돼 있습니다.

정부는 임시저장고가 포화상태라면서 서둘러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얘기하는 대책이라는 것이 60년 정도를 보관할 ‘중간저장시설’을 짓겠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도 이해하기가 어려운 얘기입니다.

10만년 이상을 보관해야 하는 것이 ‘사용 후 핵연료’인데, 고작 60년을 보관하자고 새로운 시설을 짓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 얘기일까요?

한편 경주에는 상대적으로 방사능이 약한 중·저준위 핵폐기물(원전에서 작업한 작업자가 입은 옷, 장갑, 낡아서 교체한 원전 부품 등) 처분장을 완공했습니다.

이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은 300년 정도 보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문제는 부지선정을 엉터리로 했다는 것입니다.

지하수가 엄청나게 나오는 연약한 지반의 땅을 부지로 선정했습니다.

그래서 공사는 많이 지연됐고 공사가 끝났지만 방사능 유출 우려는 여전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원전에 의존하지 않으면 전기를 쓰지 못할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워낙 정부가 그런 논리를 주입해 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계에는 원전을 아예 시작하지 않은 국가들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원전을 하다가 그만둔 국가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입니다. 1991년 독일은 전기생산의 27.3%를 핵발전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독일이 2000년에 핵발전을 단계적으로 폐기하기로 하는 결정을 내렸고 2011년에 그 결정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독일은 2022년까지 원전을 완전히 중단한다는 방침입니다.

그 대신에 독일은 전기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풍력, 태양광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에 주목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과정을 밟는다면 원전에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서울시의 박원순 시장은 에너지효율성을 높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서 원전 1개 분량을 대체하겠다는 ‘원전 1개 줄이기’를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도 대안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탈핵’을 하겠다는 국가적인 결정입니다.

이 결정이 내려지는 것은 결국 정치의 영역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소수의 관료와 정치인, 전문가, 이해관계자들이 에너지 정책을 좌우해 왔다면 이제는 주권자인 시민들이 결정해야 합니다.

앞서 살펴본 독일이 탈핵을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시민들의 끈질긴 풀뿌리운동이 있었습니다.

후쿠시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1만명이 모이는 탈핵집회를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멀리 떨어진 독일에서는 후쿠시마 사고 직후에 10만명이 모이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정치가 우리와는 달랐습니다. 원전을 가동하다가 중단하기로 한 독일의 경우에는 녹색당같은 정당이 원전 문제를 정치의 중요한 의제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의 유력한 정당들은 원전 문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산업국가인 독일에도 원전에 강한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존재했습니다. 반발도 심했습니다. 원전을 운영하는 전력회사, 부품제조회사들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이들의 눈치를 본 정치권은 처음에는 탈원전에 소극적인 입장이었습니다. 보수정당인 기민당 뿐만 아니라 사민당도 원전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유권자들이 탈원전을 자신의 투표기준으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풀뿌리에서부터 원전중단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강해지자 정당들은 입장을 변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민당은 탈원전에 동의했고, 기민당 내부에서도 원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1998년 사민·녹색 연립정권에서 탈원전을 결정하는 배경이 됐습니다.

그리고 메르켈 총리가 집권하면서 탈원전 결정이 뒤집힐 뻔도 했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는 기민당조차도 탈원전을 추진하는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원전확대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매우 공격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2013년 연말에 발표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는 원전을 40개 남짓으로 늘리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2015년 7월에 발표한 7차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기존의 4개 원전부지 외에 경북 영덕과 강원도 삼척에 새로운 원전들을 짓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새로 짓는 것뿐만 아니라 낡은 원전들도 수명연장이 계속 추진되고 있습니다.

고리1호기는 설계수명 30년을 훨씬 넘어 37년째 가동 중입니다. 2017년이 돼야 멈출 예정입니다. 2013년에 수명이 끝난 월성1호기도 8년 동안 수명연장을 하는 것으로 결정됐습니다.

앞으로 고리2,3,4호기 등 수명이 끝나는 원전이 줄을 이을 예정이지만, 정부는 이를 수명연장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양심적인 시민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답은 시민들뿐입니다. 시민들로부터 원전을 중심으로 형성된 강고한 기득권을 깨뜨릴 힘이 나와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후쿠시마는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이라도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기해 나가는 방식으로 ‘탈핵’을 하라고 경고를 보낸 것인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는 원전확대냐 탈핵이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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