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잃고 외양간 고칠 것인가?

[FT솔로몬] 일본의 저널리스트인 히로세 다카시는 1989년에 ‘원전을 멈춰라’라는 책을 썼습니다. 히로세 다카시가 이 책을 쓴 때는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난 이후였습니다. 그런데 히로세 다카시는 ‘다음 원전사고는 일본이나 프랑스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 아닌 예언을 했습니다. 히로세 다카시는 더 구체적인 예언도 합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2011년 히로세 다카시의 예언대로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을 덮쳤고 사고가 났습니다.

 

▲하승수 변호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히로세 다카시가 예언능력이 있어서 이런 얘기를 했던 것은 아닙니다.

히로세 다카시는 당시 일본의 원전이 안고 있던 여러 가지 문제들 그리고 대책 없이 ‘원전은 안전하다’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일본 정부를 보면서 이런 불길한 예측을 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히로세 다카시는 일본 정부가 ‘우리 원자로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기 때문에 원전가동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선전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원전가동율이 높은 것은 원전이 우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꼭 해야 하는 점검을 게을리 하면서 발전을 하니까 가동률이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최근 히로세 다카시의 책을 다시 읽으면서 불안해졌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도 우리나라 원전의 가동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자랑해 왔습니다. 원전가동율이 90%에 가깝다고 자랑해 왔던 것입니다.

히로세 다카시가 일본정부를 비판할 당시에 일본 원전의 가동율은 72.3%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드러난 사실은 위조부품과 짝퉁부품, 불량 부품이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원전을 돌려왔던 것입니다.

제대로 점검도 하지 않고 뇌물을 받아가면서 눈을 감아줬던 것입니다. 당연히 국민들은 이런 상황을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동안 사고가 안 난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할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전의 일본처럼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후쿠시마는 우리에게 마지막 경고를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후쿠시마의 다음 차례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 원전의 안전성, 경제성에 대한 전면적인 공론화가 필요합니다.

최소한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들이 제공되고 한번쯤은 국민들이 판단할 기회는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전과 이권

원전 관련해서 비리가 많은 이유는 그만큼 큰돈이 흘러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이 밀실에서 국가정책을 주물러 왔습니다. 이 구조에서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습니다. 이익을 보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원전을 운영하고 송전탑을 건설하는 것은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 같은 공기업들입니다. 이들은 많이 지을수록 몸집이 커집니다. 원전은 1개를 건설하는데 4조원 가까운(최근 짓는 원전의 경우) 돈이 들어갑니다.

원전 건설공사는 재벌 건설사들이 수주합니다.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대우건설, SK건설, GS건설 등 대기업들이 원전 건설 공사를 맡습니다. 원자로는 두산중공업이 공급합니다.

그 외에 원전에 필요한 각종 기계와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들이 있습니다. 원자력과 관련해서 쓰이는 공적인 돈도 막대한 규모입니다. 매년 5000억원을 원자력 관련 연구·개발과 용역에 쓰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재처리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재처리는 발전에 사용하고 난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서 다시 발전연료로 쓴다는 발상입니다. 재처리는 아직까지 기술·경제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위험한데다 경제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그러면 원전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은 없을까요?

첫째, 모든 시민이 피해자입니다. 원전은 위험합니다. 사고가 나면 무사할 사람은 없습니다. 전남 영광이나 경북 울진에 있는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서울 사람들도 무사하지 못합니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방사능은 1000km 떨어진 지역까지 오염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낡은 고리 원전 옆에는 부산과 울산이라는 대도시가 있습니다. 여기서 사고가 나면 3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대피해야 하는 대재앙이 발생합니다.

국가가 붕괴할 정도의 큰 타격을 입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 국민들은 이미 뼈저리게 느낀 사실입니다.

그런데 경험적으로 보면 사고 확률이 너무 높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지금까지 건설된 577기(2011년 기준) 남짓한 원전 중 6기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앞으로 원전을 40기까지 늘린다는 계획입니다.

둘째, 원전 주변 지역 주민들은 직접적인 피해자입니다. 보상금을 받는다고 찬성하는 주민들도 있지만 그 땅에 계속 살아야 하는 주민들은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고 위험도 문제지만 원전 주변 지역 주민들의 암 발생률이 높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원전에서 전기소비지까지 전기를 송전하기 위해 초고압 송전선을 짓습니다. 고리·신고리 원전단지에서 생산될 전기를 송전하겠다며 건설 중인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 때문에 경남 밀양과 경북 청도 등에서 엄청난 갈등을 겪었습니다.

원전은 송전단계에서도 시골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줍니다.

셋째, 어린이·청소년, 그리고 미래세대가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원전도 영원히 가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는 폐쇄해야 합니다. 폐쇄한 원전은 거대한 방사능 폐기물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처리해야 할 부담을 미래로 떠넘기고 있습니다. 핵연료는 최소 10만년 이상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위험물질입니다.

이 부담도 미래로 떠넘기고 있습니다. 우라늄도 지하자원이라 고갈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어린이·청소년과 미래 세대는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는 써보지도 못하고 폐쇄된 원전과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부담만 떠안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원전을 그만 짓고 낡은 원전은 폐쇄해야 합니다. 최대한 안전하게 관리하고 미래 세대에게 주는 부담을 줄여야 합니다. 이것이 윤리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공론화하고 국민들의 의견을 물어야 합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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