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지지 않는 고질병 ‘따라하기’

[파이낸셜투데이=김용진 기자] 최근 샘표식품과 대상 청정원이 파스타 소스를 콘셉을 도용했다며 날선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서로 ‘따라했다’는 주장이라 갈등은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부터 여러 차례 자존심 싸움을 벌여왔던 두 기업이 또 한번 제대로 붙은 모양새다.

파스타 소스 도용 논란은 샘표 측이 “대상 청정원이 최근 리뉴얼해 출시한 파스타소스 제품이 자사 제품인 ‘폰타나’의 콘셉트를 도용했다”는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대해 대상 측은 “1등을 무조건 깎아내리려 하는 과도한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반발하면서, 양 측의 공방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논란이 된 제품인 대상의 소스제품과 샘표의 폰타나는 이탈리아 파스타 소스를 고급화해 가공한 식품이다.

◆맛으로 떠나는 여행

샘표는 2013년 11월 ‘맛으로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이란 콘셉트로 이탈리아 각 지역별 정통 레시피를 기반으로 한 파스타 소스인 폰타나를 출시했다. 당시 샘표는 처음으로 파스타소스 시장 진출을 준비했기에, 신생 브랜드로서 콘셉트를 차별화하는데 중점을 뒀다. 샘표는 재료 특징을 살린 문구가 아닌, 이탈리아 현지 지역별 특징을 살린 파스타소스라는 콘셉트로 ‘맛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문구를 이용해 마케팅을 전개했다. 지난해부터는 폰타나의 공식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오픈해 소비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해왔다.

그런데 최근 동종업계 1위인 대상이 동일한 콘셉트를 내세워 파스타소스 시장에 진출하면서 폰타나가 위협받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대상은 ‘청정원 이탈리아 파스타소스 4종’을 새로 출시하면서 대형마트 행사와 상품판매배너광고 등에 ‘맛으로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이란 홍보 문구를 넣고 시식행사와 함께 제품 증정 이벤트를 열었다.

또 대상과 샘표가 각각 출시한 토마토 소스 제품의 뒷면의 문구에는 ‘나폴리’라는 이탈리아의 특정 지역과 ‘큼직하게 썬 토마토’ ‘바질’이라는 단어가 중복되고 있다. 크림 소스 제품도 마찬가지로 ‘로마’ ‘알프레도’라는 단어가 겹치고 있어, 포장의 형태와 이미지를 제외하곤 거의 동일한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 두 기업의 제품이 동일한 콘셉트의 카피와 비슷한 문구를 사용하면서 베끼기 논란은 더욱 커졌다.

샘표는 “대상은 상품에 지역별 지도를 표기하는 등 폰타나 제품 패키지에 적용된 디자인과 설명 문구는 물론이고, 매장 행사 상품판매대 배너광고까지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맛으로 떠나는 여행’ ‘맛으로 떠나는 이탈리아’는 현재 폰타나가 마케팅 활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어, 폰타나라는 브랜드 존재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소비자들은 대체로 시장 장악력이 더 큰 대상 제품을 원조로 인식하게 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상의 파스타소스 시장 시장점유율은 37.3%로 1위이며, 샘표 폰타나는 2% 남짓한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일한 콘셉트

도용 논란에 대해 대상은 “스파게티소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청정원을 흠집 내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이라며 “이를 지속해 당사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될 경우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문제가 된 ‘맛으로 떠나는 여행’ 이라는 문구는 “이미 서적과 블로그 등 다방면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문구”라며 도용 논란을 일축시켰다.

대상 관계자는 “스파게티를 생각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이탈리아’ 등의 문구를 사용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샘표는 파우치 제품인 반면 청정원은 병 제품이라 소비자들이 도용 제품으로 혼동할 여지가 전혀 없다”며 “자사의 제품 메인 콘셉트는 ‘맛으로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이 아닌 ‘The world table’”이라고 전했다.

파스타 소스로 불거진 ‘도용 논란’
‘콘셉트 도용’ VS ‘노이즈 마케팅’
영원한 강자는 없다 ‘미원의 추락’
자정노력과 강력한 처벌 이뤄져야…

더불어 대상 측은 샘표가 오히려 자사 제품을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대상은 2004년 자사가 출시한 레토르트 제품 쿡조이 콘셉트가 ‘맛으로 떠나는 세계 요리 여행’이었다는 점을 들며 오히려 샘표가 자사 제품을 도용한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대상은 샘표 측 무단 도용 주장이 타당성을 가지려면 이에 대한 충분한 해명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기업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맞붙은 연혁이 있다. 대표적으로 ‘발암물질 간장’ 논란이 발생했던 2001년 두 기업은 혼합간장의 유해성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였다. 당시 국내에 시판 중인 간장제품의 80%를 차지하는 혼합간장에 발암물질로 알려진 MCPD가 함유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콩을 자연숙성 시키자면 통상 6개월이 소요되는데 이를 3~4일로 단축하기 위해 염산을 통한 가수분해 방법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암물질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간장 발암물질 논란

논란이 발생하자 대상은 “산분해간장을 섞어 만든 혼합간장의 발암물질 함유 가능성이 높다”며 관련 제품의 생산을 정면 중단하고 ‘양조간장’만을 만들기로 밝혔다. 대상은 이를 위해 전국의 모든 매장에 남아 있는 혼합간장 제품을 전량 폐기하고, 양조간장인 ‘햇살담은 간장’으로 제품라인을 바꿨다. 또 종합조미료와 불고기양념류 등 모든 식품의 원료로 들어가는 간장도 산분해간장에서 양조간장으로 대체했다.

당시 대상은 신문 및 TV광고 등을 통해 산분해간장의 위해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전체 간장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었던 산분해간장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했다. 간장업계 1위 업체인 샘표 측은 대상에 대해 “소비자를 기만하는 무책임한 음해행위”라며 강력 비난했다. 샘표는 “기존 간장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했던 샘표 간장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과 공포감을 조성해 샘표 간장의 이미지를 하락시키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샘표 관계자는 “MCPD의 유해성 여부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데다 각종 실험결과 국내산 혼합간장의 MCPD 함유량이 극히 미량에 불과, 국제 허용치기준을 훨씬 밑돌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대상의 ‘양조간장 주력 선언’은 양조간장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적인 행위”라며 “샘표 진간장을 겨냥해 위해성을 강조함으로써,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일반 소비자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조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지난해 국내 간장 시장 점유율 1위는 샘표(54%), 2위는 대상(21.4%)이다.

2005년에는 대상이 ‘마시는 홍초’를 들고 나오며, 웰빙 바람을 타고 식초음료 시장을 선점했다. 이후 비슷한 제품들이 도전장을 던졌으나 쓴 맛을 봤다. 샘표 역시 2007년 ‘마시는 흑초’를 통해 식초음료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고배를 마셨다.

이후 고심 끝에 2009년 ‘장수’를 콘셉트로 한 제품인 ‘백년동안’을 새롭게 내놓으면서 샘표는 식초음료 시장에서 2009년 50억원, 2010년 250억원, 2011년 4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급성장했다. 그 결과 기존 식초음료 시장을 독식하던 대상의 점유율은 초기 70%에서 지난해 58% 로 내려갔고, 샘표는 23.5%로 2위를 차지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식초음료 업계 1위인 대상도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조미료 시장에서도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대상은 1957년 국내 최초 조미료인 ‘미원’을 출시하며 조미료 시장의 강자로 자리 잡았다. 미원은 국내 미원류 시장의 97%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독보적이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가공 조미료 매출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천연 조미료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새로운 경쟁의 장이 만들어졌다.

◆조미료 강자 흔들려…

대상은 MSG에 다른 첨가물을 더한 종합조미료인 ‘맛선생’으로 ‘건강한 조미료’라는 이미지를 굳혀 나가며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맛선생은 자연의 맛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으며, 국내 자연조미료 시장을 이끌어 왔다.

샘표는 이에 대응해 액상 조미료인 ‘연두’를 발표했다. 기존 분말 조미료에서 탈피해 ‘요리 에센스’라는 콘셉트로 새로운 조미료 분야를 개척했다. 그 결과 연두는 2013년 200만병, 2014년 400만병을 판매했고, 올해는 900만병 돌파를 앞두고 있다.

식품업계에서는 샘표의 연두가 대상의 맛선생을 가볍게 제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액상 조미료가 소비자들에게 각광받자 대상은 액상 조미료인 ‘요리에 한수’를 출시하며 선두 탈환을 노리고 있다.

두 기업의 경쟁은 ‘육포’ 시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상과 샘표는 각각 ‘사브작’과 ‘질러’라는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2007년 육포 시장에 진출한 샘표는 자사제품인 질러가 누적 판매량 1000만개를 돌파하며 2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성과를 얻었다. 샘표가 육포시장에서 실적을 올리자 대상도 2012년 ‘사브작’을 통해 육포 시장에 진출했다. 한 유통 전문가는 “두 기업의 육포시장 진출로 인해 국내 육포 시장 경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유통 전문가들은 “식품업계의 만연한 베끼기 행태는 결국 ‘제 살 깎아먹기’”라며 “흥행 브랜드의 도용 제품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식품업계의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 자정 노력과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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