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4·10 총선에서 서로 힘을 합치기로 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조국 혁신당 대표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는 동일하다. 바로 윤석열 정권의 폭정을 종식하고 심판하고 국민들께 희망을 드리는 것이다”라며 “정권을 심판하고자 하는 모든 정치 세력이 힘을 합쳐야 한다. 그 주위에 조국혁신당이 함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은 조 대표가 양 당의 구체적인 역할을 제시한 데 반해, 이 대표는 “주위에 함께 있자”며

조국혁신당과 적당한 거리를 둔 것에 주목했다. 같은 협력을 말했지만 온도 차가 있다는 분석이다. 자칫 중도층 민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걸까. 이 대표 측은 조 대표와의 접견 후 구체적인 선거 연대를 논의하지는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이 “‘조국의 강’을 건너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은 유영하 공천을 통해 ‘탄핵의 강’을 거슬러 넘어가고 있고, 민주당은 ‘조국의 강’을 되풀이하고(맴돌고) 있다”고 말했다.

‘조국의 강’?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무슨 무슨 강(江)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더러 사안이 중대하다고 여길 경우 ‘강’을 넘어 ‘바다’란 말도 쓰인다. ‘조국의 강’,‘탄핵의 바다’만이 아니다. 이슈가 되는 현안이나 유력 정치인 이름을 붙이면 말이 다 그럴듯해지는 것이다.

‘김건희의 강’이 있고 윤석열과 이재명의 강이 있으며 해병대 채상병 사건의 강도 있다. 최근에 생긴 강도 있다. 강이라기보다는 바다급인 이 사건은 바로 ‘의료대란의 강’,‘의료대란의 바다’다. ‘조국의 강’은 이재명 대표가 헤어나야 할 고민거리(dilemma)라면 ‘의료대란의 바다’는 윤석열 대통령이 넘어야 할 난관(hurdle)이다.

바다는 강보다 건너기가 힘들다. 말이 나왔으니 ‘의료대란의 바다’에 대해 더 들어가 보자. 윤 대통령은 과연 쉽게 ‘의료대란의 바다’를 건널 수 있을까? 방법은 있다. 의료계와 대화하는 것이다. 무릎 꿇고 항복하라는 식으로 고집부릴 일이 아니다. 국민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정부가, 나라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상황을 보며 국민을 생각하고 백기를 들고 협상할 용기를 갖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협상은 결코 항복이 아니다. 국가를 자살로 몰지 않는 것은 용기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언론과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계층간 직역간 이해관계자들의 갈등과 충돌을 조정하고 정리해야 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자 의무다. 이번 사단의 직접적인 원인은 어쨌든 의대 입학 정원을 갑자기 2천 명 증원하기로 한 윤 대통령과 정부에 있다. 이미 의료계의 반발이 예상됐던 일이다. 사전에 충분히 대화했고 면밀한 검토가 있었다는 정부의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심도 있는 소통 없이 일방통행식으로 몰아붙인 정부의 오만이 문제였다. 의료계의 파업을 종식시키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이 또한 국가적 재앙이다. 서둘러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한다.

여론을 등에 업었다고 어설프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때마침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39%로 지난주와 동일해 마의 40%는 넘지 못했다. 직무수행 부정 평가는 54%로 지난주보다 1%p 올랐다.

직무수행 긍정 평가 이유는 ‘의대 정원 확대’가 28%로 가장 많이 꼽혔다. 조사를 실시한 한국갤럽은 “긍정 평가 이유에서는 지난 1년 가까이 외교가 첫손 꼽혔는데, 지난주 의대 증원 문제가 최상위로 부상했고 이번 주 그 비중이 더 커졌다”고 분석했다.

전공의들이, 의사들이 밉더라도 지금은 정부가 손을 내밀 때다. 여론이 우호적이라고 갈 데까지 가 보자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상대를 꺾으려고만 하는 정책은 하책(下策)이다. 만에 하나라도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일사불란한 명령으로 통하는 사회가 아니다. 더구나 갈등의 한쪽인 상대를 범죄자나 피의자쯤으로 생각해 굴복시키려고만 드는 성정으로는 일을 풀어나갈 수 없다. 역지사지의 아량과 상호신뢰가 필요하다. ‘치킨 게임’(chicken game)이 된 의료현장을 사실상 방치했다가 벌어지는 사태는 결국 대통령과 그 참모들, 국가 경영자들의 책임이다.

의료계의 전문가들도 이번 의대 정원 증원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의사 수 추계 연구자 긴급 토론회>에서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 연구위원은 “2035년을 기점으로 의사 1만 명이 부족하다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이를 목표로 했다면 1천 명씩 10년간 늘리는 방식으로 속도를 조절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또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는 “2067년까지를 추계할 때 2045∼50년까지는 의사가 부족하고, 이후에는 다시 남는다”며 “5년간 5백∼1천 명씩 증원한 뒤 재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논어에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말이 있다. 치자(治者)와 피치자(被治者) 간에 믿음이 없으면 국가가 서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네이버의 한 블로그 설명이 서늘하다.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 위정자들이 올바른 정치를 해야 백성에게 믿음을 얻는다. 그래야 나라가 돌아간다. 그러지 못하면 위정자가 쫓겨나거나 나라가 망하게 된다. 서로 믿지 못하니까 다툼, 불신, 보복, 분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은 보수가 집권하든, 진보가 집권하든 국민에게 실망만 안겨준다. 정권만 잡았다 하면 서로 대화하지 않고 불통 정치를 고집한다. 여야가 서로 믿지 않아서 생기는 병폐다. 국민만 개고생한다. 서로 간에 신뢰가 회복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최근 조국혁신당의 지지율이 심상치 않다. 4·10 총선을 33일 앞두고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비례대표 정당투표 의사는 국민의힘 비례정당 37%, 더불어민주당 중심 비례연합정당 25%, 조국혁신당 15% 순으로 조사됐다.

왜 조국혁신당인가? 조국이 내건 깃발은 무엇인가? 관측통들은 노선이 분명하고 심플하다는 점이 야권 지지자들에게 큰 소구력(訴求力)이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들의 주장을 보자.

조국혁신당이 새로 영입한 박은정 전 검사의 비판이 대표적이다.

“감히 법치주의를 말하며 법 위에 군림하고, 감히 공정과 상식을 입에 올리며 디올백으로 하늘을 가리는 시대의 패륜집단을 청산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섰습니다. 윤석열 전 총장이 내일이라도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온다면 저도 정치를 그만둘 것입니다.” 민주당 류의 멘트와는 강도가 다르다.

조국혁신당이 복병으로 등장하면서 고민이 커진 건 민주당이다. 이미 건넜다는 ‘조국의 강’이 다시 소환된 것이다. 이재명에게 조국은 무엇인가. 바로 계륵(鷄肋)이다. 표를 모으는데 악재가 될지 호재가 될지 모르는 고민거리다. 당초 민주당은 진보당 등이 포함된 비례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을 통해 강성 지지층의 표심을 공략할 전략이었다. 그런데 조국혁신당이 상당한 비례 의석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되면서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민주당이 일부 비례 의석을 포기하더라도 조국혁신당과의 연대를 통해 전체 범야권 의석을 키우겠다는 계산을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강이나 바다는 원래 시나 문학작품, 회화에 등장하는 서정(抒情)의 구성요소다. 건너야 할 대상이자 건너서는 안 될 경계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우리를 울렸던 진모영 감독의 다큐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나 남진의 <가슴 아프게>에서 표현했듯이 강과 바다는 삶과 죽음, 이별과 맞닿아 있는 단어다. 서정적인 단어로만 알았던 강과 바다를 정치인들이 좋지 않은 일에 함부로 가져다 쓰는 건 적절치 않아 보인다. 강과 바다를 더 이상 욕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저는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향했고, 이성계는 압록강을 건너지 않고 개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역사의 변곡점이 된 사건들이다. 강은 영웅호걸이나 장삼이사의 흥망성쇠를 무심히 바라볼 뿐, 말이 없다. 변함없이 흐르고 또 흐를 뿐이다. 강 중에 가장 무서운 강은 ‘세월의 강’이라고 한다. 어느 시인이 말했던 ‘가장 잔인한 달’, 4월이 다가오고 있다. 윤석열과 이재명, 조국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건너야 할 ‘총선의 강’이 흘러오고 있다.

<외부 필자의 기고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