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하림그룹의 부당지원 과징금 54억원 ‘적법’
부당지원을 통한 편법승계 더 큰 문제
하림그룹, 부당지원을 통해 승계 작업 사실상 마무리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 대한적십자사 부회장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 대한적십자사 부회장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림그룹의 계열사들이 총수 아들의 회사를 부당지원 했다는 이유로 54억1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처분이 적법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7일 나왔다. 이로써 하림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부당지원 행위가 법적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 건의 핵심은 단순한 일감 몰아주기에 그치지 않고 과거 삼성이나 현대그룹 등 재벌그룹이 악용하던 편법승계 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 올품, 아들에게 증여 이후 매출과 이익 급증

이번 일은 2012년 하림그룹의 김홍국 회장이 비상장 계열사인 올품의 지분 100%를 아들 준영 씨에 증여하면서 시작됐다. 올품은 동물용 약품 제조 판매회사로 증여 당시 자산 규모는 3200억원 수준이고 매출액은 862억원, 영업이익은 91억원이었다.

그런데 증여를 통해 준영 씨의 개인회사가 된 이후 올품은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게 된다. 1년 뒤 2013년 매출은 3464억원으로 한 해 만에 4배 가까이 늘었고 영업이익은 168억원으로 2배 정도 늘었다. 이후 올품은 매년 3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회사로 성장해 자산 규모 1조원에 달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올품의 급격한 성장 뒤에는 그룹의 부당한 지원이 있었다. 그룹 계열사들이 올품의 제품을 비싼 값에 사주는 방식으로 올품이 부당 이득을 챙길 수 있게 했다. 또 배합사료를 제조하는 계열사는 제조사로부터 직접 구매하던 사료 첨가제를 올품에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올품은 거래금액의 3%가량을 중간 마진으로 챙겼다. 전형적인 통행세를 거둔 셈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2017년부터 하림그룹에 대한 조사에 착수해 2022년 1월 올품과 하림그룹 8개 계열사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54억1800만원을 부과했다. 이에 대해 하림그룹은 올품에 대한 부당지원은 없었다면서 공정위 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가 이번 법원 판결에서 패소한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하림그룹이 계열사를 동원해 총수 아들이 보유한 기업을 도와준 것, 사익편취의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림그룹의 지배구조 안에서 올품의 지위를 보면 단순히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 김홍국 회장 아들, 올품 통해 하림지주 최대 지배력 확보

하림그룹은 지주사인 하림지주가 하림, 팬오션, NS쇼핑 등 계열사들의 지분을 50% 이상 보유하고 있는 지주사 체제로 구성돼 있다. 하림지주의 최대주주는 21.1%의 지분을 보유한 김홍국 회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림지주의 주주 가운데 올품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품은 하림지주의 지분 5.78%를 직접 보유하고 있고 또 100% 자회사인 한국바이오텍을 통해서도 하림지주의 지분 16.69%를 보유하고 있다. 이 두 지분을 합하면 22.47%로 김홍국 회장이 보유한 지분율(21.1%)보다 오히려 1.37% 포인트 더 많다.

올품은 100% 김 회장의 아들 준영 씨의 개인회사이고 한국바이오텍은 올품이 100% 지분을 가진 종속회사이다. 결과적으로 올품을 통한 준영 씨의 하림지주에 대한 지배력이 김 회장을 이미 넘어선 셈이다. 전형적인 ‘옥상옥’ 지배구조로 큰 틀에서 승계작업이 마무리됐다는 얘기다.

이러한 과정에서 준영 씨가 납부한 세금은 올품의 지분 100%를 증여받을 때 낸 증여세 100억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세금마저도 준영 씨 주머니에서 나간 것이 아니다. 올품의 유상감자를 통해 100억원의 증여세 자금을 마련했다. 유상감자는 주식 수를 줄이는 대신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주주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어차피 준영 씨의 올품 지분율은 100%이니까 감자 이후에도 100%의 지분을 유지했다. 그래서 사실상 회삿돈을 빼서 증여세를 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물론 이번 법원 판결로 올품과 하림 계열사들은 과징금 54억1800만원을 부담하게 됐지만, 그마저도 준영 씨의 주머니에서 나간 돈은 아니다. 물론 이 돈을 내는 것도 속이 쓰리고 아까울 수 있다. 그러나 자산 규모 17조원으로 재계 순위 27위에 달하는 기업집단을 승계한 대가치고는 결코 큰돈이 아닌 셈이다.

하림 본사 사옥.  사진=하림그룹
하림 본사 사옥. 사진=하림그룹

앞으로 하림그룹이 승계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김홍국 회장이 보유한 하림지주 지분 21.1%를 준영 씨를 비롯한 자녀들에게 상속·증여하는 과정이 뒤따를 것이고 그 과정에서 추가로 세금이 부과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승계 구도가 짜여져 있는 만큼 하림그룹에게 상속·증여세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자녀 소유의 비상장 회사를 만들고, 계열사를 동원해 이들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등의 편법을 통해 사익을 챙기게 하고, 이를 통해 상속세를 피하는 방법은 오래전부터 문제가 돼 왔다. 덩치가 큰 재벌그룹은 이러한 편법이 이미 차단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일부 중견 그룹에서는 아직도 부의 편법승계를 위해 빈번하게 악용되고 있다. 단순히 사익편취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상속·증여세의 공평한 과세를 위해서라도 세무차원에서의 철저한 조사가 병행돼야 할 것이다.

파이낸셜투데이 기획취재팀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