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링크플레이션·스킴플레이션·스크루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소비자들
정부, 생필품 실태조사 진행·신고센터 신설... 의류·신발, 달걀 등 개선한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차관이 17일 서울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열린 '제33차 비상경제차관회의 겸 제2차 물가관계차관회의, 신성장전략 TF 제7차 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병환 기획재정부 차관이 17일 서울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열린 '제33차 비상경제차관회의 겸 제2차 물가관계차관회의, 신성장전략 TF 제7차 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고물가시대에 편승한 가격 눈속임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식품업체들의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에 대응한다. 정부는 우선 생필품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물가 안정에 심혈을 기울일 방침이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17일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열린 ‘제33차 비상경제차관회의 겸 제2차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주재하며 “최근 용량 축소 등을 통한 편법 인상,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많다”며 “이러한 행위는 정직한 판매행위가 아니며 소비자 신뢰를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중요한 문제로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14일 최근 식품업계를 중심으로 '슈링크플레이션'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두고 “정직한 판매 행위가 아니다”며 고물가에 따른 국민 부담이 커지지 않도록 식품업계의 동참을 당부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양을 줄인다는 의미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말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기업이 제품 가격을 유지하는 대신 제품 크기·중량을 줄여 사실상 가격을 올리는 전략을 의미한다.

김 차관은 “11월 말까지 한국소비자원을 중심으로 주요 생필품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신고센터를 신설해 관련 사례에 대한 제보를 받도록 하겠다”며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소비자의 알권리를 재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의류·신발 업계 등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염료·생사, 식품용 감자·변성전분 등 인하된 관세를 내년에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달걀 산지 고시가격 개선방안도 12월 중에 마련하기로 했다.

김 차관은 “현장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수급요인은 양호한 상황이지만 산지 고시가격이 경직적인 측면이 있었다”며 “산지 고시가격에 수급여건을 신속히 반영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보다 투명한 가격 형성을 위해 계란 공판장 및 11월 30일에 출범하는 온라인 도매시장 등을 활용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

고물가의 영향으로 식품기업이나 외식업계는 가격을 유지하는 대신 제품이나 서비스 질을 떨어뜨리는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킴플레이션은 인색하게 아낀다는 뜻의 ‘스킴프(skimp)’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기업 등이 재료나 서비스에 들이는 비용을 줄이는 것을 뜻한다.

소비자들은 제품의 가격이나 양의 변화보다 제품의 질이 낮아진 것은 가장 알아차리기 힘들기 때문에 스킴플레이션은 가장 교묘한 인플레이션으로 불린다.

업계에 따르면 롯데칠성음료는 오렌지주스 원액 가격이 오르자 올해 하반기에 델몬트 오렌지주스의 과즙 함량을 대폭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오렌지 100% 제품의 과즙함량을 80%로 줄이고 과즙 함량이 80%인 제품은 45%로 낮췄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오렌지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 과즙주스의 적자를 감내하기 힘들어 오랜 고심 끝에 하는 수 없이 결정한 것”이라고 연합뉴스에 전했다.

치킨 프랜차이즈 BBQ는 지난달부터 튀김기름의 절반을 단가가 낮은 해바라기유로 교체했다. 오랫동안 BBQ는 ‘100%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을 사용한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올리브유 가격이 급증하자 올리브유50%, 해바라기유 50%의 블렌딩 오일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BBQ는 지난 3~4년간 올리브오일 가격 급등에도 불구하고 본사가 가격 상승분을 감내하며 패밀리의 부담을 덜어왔지만 더 이상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에 도달했다는 판단해 ‘BBQ 블렌딩 올리브오일’ 도입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해외도 스킴플레이션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7월 테스코·모리슨·알디·세인즈버리 등 대형 수퍼마켓 체인의 스킴플레이션 실태를 폭로했다. 보도에 따르면 파스타 소스의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함량이 33%였는데 26%로 줄고, 과카몰리의 아보카도 함량이 80%에서 77%로 소리 소문 없이 줄어들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오후 서울 이마트 용산점에 방문해 주요 품목 물가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오후 서울 이마트 용산점에 방문해 주요 품목 물가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

글로벌 경제위기와 함께 업체들의 슈링크플레이션, 스킴플레이션 편승에 소비자들은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크루플레이션은 쥐어짠다는 뜻의 스크루(screw)와 인플레이션을 합친 단어다. 물가상승과 실질임금 감소 등으로 중산층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어 체감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로 소비심리도 위축됐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10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8.1로 전월과 비교해 1.6포인트 하락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2003년~2022년 중 장기평균치를 기준으로 100보다 크면 낙관적, 100보다 작으면 비관적으로 본다.

조사에 따르면 생활형편이나 가계수입전망 모두 비관적이다. 향후 경기전망도 70으로 전월보다 4포인트 내려갔다.

고물가시대에 소리 소문 없는 실질상 가격인상과 소비심리 위축은 소비자들이 실제로 쥐어쪼이는 물가를 체감하고 있다는 근거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는 물가 상승 요인이 커졌다고 지적이 나오면 ‘경기가 상반기에 나빴다가 하반기에 좋아진다’는 이른바 ‘상저하고’라면서 물가 안정세를 강조해왔다.

추 총리는 지난 14일 주요 먹거리의 가격 동향을 점검하며 “최근 국제유가가 7월중 최근 국제유가가 7월 중순 이후 3개월 만에 70불대까지 하락하면서 휘발유 가격이 8월 이후 처음으로 1600원대에 진입했다”며 “배추 등 주요 농산물 가격도 큰 폭 하락하는 등 물가가 안정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추 총리는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물가는 3분기, 4분기에 안정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며 ‘상저하고’ 입장을 고수했다.

김 차관은 이날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물가 상황과 관련해 “아직 국내 물가 수준이 높고 중동 사태 향방, 이상기후 등 불확실성이 남아 있지만 최근 물가 개선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정부는 앞으로도 각별한 경각심을 유지하면서 현장과 긴밀히 소통하고 체감도 높은 물가안정 대책을 지속 강구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지평 기자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