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심영범 기자
사진=심영범 기자

“우유 남아돈다고 하는데 또 오른다고 하니 이제 안 사먹어야겠어요” 평소 우유를 즐기는 한 지인의 자조섞인 말이다.

길고 길었던 낙농가와 낙농진흥회의 원윳값 협상이 지난 27일에 마무리됐다. 지난달 첫 회의를 시작한 지 49일 만이다. 오는 10월부터 흰 우유와 발효유 등 음용유 원유 가격은 리터 당 88원 오른다. 치즈, 분유 등 가공유 원유 가격은 87원 인상된다. 이는 2013년 원유가격연동제 도입 이후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이다.

나름 양측은 소비자의 물가 부담 완화를 위해 인상시점을 기존 8월 1일에서 10월 1일로 연기했으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조삼모사로 느껴질 뿐이다.

유업계의 부담 완화를 위해 정부는 지원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나서고 앞서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유업계도 각 업체가 구매해야 하는 음용유 물량 축소, 가공유를 현행과 같이 리터당 600원에 구매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을 확대해줄 것을 건의했다.

소비자와 각 업계의 사정을 고려해보면 어느 누구가 옳고 그르다를 논하기는 어렵다. 유업계는 원윳값 인상에 따른 가격 검토 카드를 고민해야 하고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을 모른척하기 어렵다. 낙농가는 낙농가대로 고충이 있다. 사료 가격 폭등 등 생산비 상승으로 목장 경영이 어려워 최근 2년새 폐업한 낙농가 수도 300여호에 달한다.

지금까지 유업계는 원유 가격이 오르면 제품 가격을 인상하는 방식으로 수익성 악화에 대응해왔다. 그러나 유업계는 당장 제품 가격 인상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원윳값뿐만 아니라 인건비와 물류비 등의 부담도 떠안은 상황에서 장기간동안 가격 동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울러 정부에서는 큰 우려가 없다고 하지만 흰우유 가격이 오르면 과자, 아이스크림, 유제품 등 관련 제품 가격도 오르는 ‘밀크플레이션’ 현상이 닥칠 확률도 결코 적지 않다.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우유 가격에 불만이 많다. 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고 우유에 대한 수요가 예전같지 않은데 낙농가와 유업계의 줄다리기를 통해 가격만 상승하는데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수입 멸균 우유를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농식품수출정보에 따르면 올해 1~6월 해외 멸균우유의 수입액은 약 1531만달러로, 지난해 동기(약 1048만달러) 대비 46.1% 올랐다. 수입량 역시 지난해 상반기(1만4675t) 대비 25.2% 늘어난 1만8379t으로 조사됐다.

리터당 1500원대로 가격 부담이 적고 소비기한도 1년 안팎으로 길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입 멸균 우유의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

아울러 오는 2026년부터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유제품 관세가 떨어지면 수입 멸균우유 가격은 지금보다 더 떨어질 경우 국산 우유를 선택하는 소비자는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유아기 시절, 그리고 초등학교에서의 우유급식, 지금도 꾸준히 흰 우유를 애용하고 있는 기자 입장에서 씁쓸함을 감추기 어려운 현실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싼 국내우유에 대한 부담으로 유업계를 원망하고 유업계는 낙농가의 볼멘소리와 정부의 가격 인상 억제 압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정부는 정부대로 소비자의 불만을 잠재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완벽한 해답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시장상황과 각자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예전부터 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좀더 현실적인 절충을 내놓을 수는 없었을까하는 아쉬움이 너무도 크다.

전 세계적인 불황이라는 요소는 무시할 수 없지만 서로의 이해만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결코 옳은 답은 나오기 힘들다. 10년만에 역대 최고로 원윳값이 오른 상황에서 그 어느누구도 승자가 아니라는 현실을 마주하고 말았다.

올해가 이제 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소비자가 우려하는 밀크플레이션이 현실화되지 않고 유업계와 낙농가도 막심한 손해 없이 사업을 운영할 수 있게되길 바란다.

파이낸셜투데이 심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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