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가계부채에 대해 “우리 경제의 불안요소”로 꼽으며, 예상 밖으로 급격하게 늘어날 경우 금리를 통해 대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13일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3% 이상인데, 이를 더 키울 수 없다는 것이 뚜렷한 사실”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다만, “이미 가계부채가 늘어난 상황에서, 또 가계부채는 부동산 시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급격한 조정은 의도치 않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면서 “단기적으로는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 자금흐름에 물꼬를 트는 것과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줄여나가는 거시적 대응도 균형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역전세난 해소를 위해 정부가 전세보증금 차액 반환 목적 대출에 대해 규제를 완화한 것과 관련해서는 “가계부채를 늘리는 쪽으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미시적인 정책으로 자금시장의 물꼬를 터줄 필요가 있어서 그런 정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금융안정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시정책을 하는 것 자체는 (통화정책과) 상충되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가계대출은 올해 1~6월까지 전 금융권 기준으로는 11조9000억원 줄었지만,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이 4개월 연속 증가한 영향으로 은행권 가계대출이 3개월 연속 상승, 잔액 기준 역대 최대인 1062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6월 주담대는 5조9000억원 늘면서 2020년 2월(7조8000억원) 이후 3년 4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입주물량 증가와 전세자금대출 증가 전환 등 주택관련 자금 수요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역전세난 해소를 위해 전세보증금 차액 반환 목적의 대출에 대해서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가 아닌 총부채상환비율(DTI) 60%를 1년간 한시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DTI는 주담대 원리금과 다른 대출의 이자상환액만 더해 대출 한도를 계산하기 때문에 DSR을 적용했을 때와 달리 대출 한도가 크게 늘어나게 된다.

이 총재는 “정부와 함께 시장 불안을 최소화하면서도 통화정책을 이끌어갈 때 중장기적으로 가계부채가 완만한 하락세를 갖고 연착륙할 수 있도록 통화정책의 중요한 목표의 하나로 생각하고 대응해 나가자는 것이 금통위원들과 저의 생각”이라면서 “가계부채가 예상 밖으로 늘면 금리 뿐만 아니라 거시건전성 규제를 강화하거나 여러 정책을 통해서 대응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고 생각한다. 금통위원들도 이런 가능성을 다 열어놔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규제에 대한 기대가 커지거나 이로 인해서 부동산 가격 상승이 수도권 중심으로 일어나다 보니까 대출이 더 는다든지, 가계부채가 더 늘면 문제가 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80% 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 금리도 필요하면 해야겠지만, 금리만 갖고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담보제도의 변화 등도 정부와 얘기해서 조정을 해가면서 수렴해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금통위는 현재 3.5%인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했다. 올해 1월 0.25%p 인상 이후 4차례 연속 동결이다. 물가 상승률이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8월 이후 다시 3% 내외로 높아지는 등 상당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이고, 주요국의 통화정책과 가계부채의 흐름도 봐야 하기 때문에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이다. 이번 결정은 금통위원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금통위의 이번 결정은 시장의 예상에 부합하는 것인 만큼 시장의 관심은 연내 인하 가능성에 쏠린다. 벌써 4번이나 기준금리가 동결됐고, 전날 발표된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이하 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0%를 기록했다. 작년 같은 달 9.1%로 정점을 찍은 지 1년 만의 일이자, 2년 만에 최소 상승폭이다.

또한 같은 날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제주도에서 열린 ‘제46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조강연을 통해 내년 물가 상승률을 2%로 예상하면서 “터널의 끝이 멀지 않았다”고 한 것도 이같은 기대감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이 총재는 여기에 선을 그었다. 아직 불확실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물가는 낮아졌지만, 금통위원 전원이 3.75%까지 올릴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것은 미국이 CPI가 낮아졌지만 연방준비제도가 과연 금리를 몇 번 더 올릴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고, 물가 상승률이 예상대로 둔화되고 있으나 근원물가가 높은 상황이다. 또 가계부채가 어떻게 움직일지 불확실성을 고려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얼어둬야 한다고 했다”며 “금리 인하를 논의하는 분들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다음 CPI가 바뀌면 그때 주요국 통화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그에 따라서 환율은 어떻게 바뀔지 안심하기는 이르다. 저희들은 그 위험이 아직 완전히 없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서 금리 격차, 외환시장 불안 등이 일어나면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연내 인하할 수 있느냐, 물가 목표인 2%로 물가가 충분히 수렴하는 과정에 도달했다는 확신이 들 때 논의할 것이다. 그 시기를 못 박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나 최근 새마을금고 사태에 대해서는 특정 섹터의 문제가 아니라 개별 기관의 문제라고 했다.

이 총재는 “과거에 부동산 레버리지가 컸기 때문에 조정하는 과정에서 문제없이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여러 규제가 작동해 특정 섹터에 위기가 몰리는 상황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흩어져있기 때문에, 그것을 조정하면서 연착륙 하는 과정에서 순서 있게 대처하면 충분히 관리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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