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장 “특이사항 파악하고 있었다”면서도 하한가 재발 방지 실패
키움증권 “블록딜 날짜, 우연”, 회장 사퇴 후 기부…업계 “정당하면 왜?”

사진=양지훈 기자
사진=양지훈 기자

지난 4월 24일 ‘8종목 집단 하한가 사태’의 후유증이 가시기도 전에 이달 ‘5종목 하한가 사태’가 터졌다. 금융당국은 재발 방지에 실패했는데, 정황은 파악하고 있었다는 말만 늘어놓았다.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인데, 자본시장은 여전히 후진국이다.

이달 14일 터진 코스피‧코스닥 5종목 무더기 하한가 사태는 4월 사태와 마찬가지로 특정 세력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13일 기준 5종목의 연초 대비 주가 상승률은 160~310% 수준이었다. 대부분 유통주식비율이 50% 미만으로 낮았다는 공통점이 있었으며,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자가 사태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금융당국과 검찰은 수사를 진행 중이다.

특히 사태와 관련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했던 발언에 기자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5종목 하한가 사건 발생 후 이 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폭락한 종목과 사안은 (금융감독원에서) 오래전부터 챙겨왔던 건”이라며 “주가 상승‧하락과 관련된 특이 동향 또는 원인, 관련자 등에 대해 사실관계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징후는 감지했지만 안 막았다’는 것이다.

금감원장이 반성과 성찰의 메시지를 내비친 후 2주 만에 재발한 것이었다. 이 원장은 지난 1일 기자간담회에서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나 금융회사 내부의 탈법 행위를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 2주 후 집단 하한가 사태는 또 발생했다. 시스템 정비 등 그가 제시한 대책이 임기 안에라도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

아울러, 4월 24일 하한가 사태와 관련해 여전히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김익래 전 다우키움그룹 회장의 블록딜(시간외대량매매) 건이다. 8종목 하한가 사태가 터지기 2거래일 전, 김 전 회장은 하한가 대상이었던 다우데이타 보유 주식을 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해 605억원가량의 차익을 기록했다. 하한가를 앞두고 진행한 블록딜이 ‘우연’인지에 관해 금융투자업계와 투자자들이 일제히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황현순 키움증권 사장은 4월 28일 기자회견을 열어 “(김 전 회장의 다우데이타 주식 매각 시점은) 공교로울 뿐이었고, 우연이었다”며 “사장직을 걸고 소명하겠다”고 대응했다.

다만, 김 전 회장의 기부 결정에 의구심이 더 커졌다. 지난달 4일 김 회장은 다우키움그룹 회장과 키움증권 이사회 의장직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다우데이타 주식 매각대금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했다. 관련해서 증권사 한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기부를 결정하면서 (투자자들의) 의심을 더 키우는 것 같다”며 “하한가를 2거래일 앞두고 진행한 블록딜이 정말 ‘우연’이었다면 사회 환원이 아니라 정면 돌파를 택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필요 이상의 ‘저자세’가 오히려 의심만 더 키웠다는 의미다.

김 전 회장에 대한 검찰의 조사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다만, 투자자들의 민심이 싸늘해진 것은 사실이며, 김 전 회장의 해명이 진실이길 바랄 뿐이다.

일련의 사건이 투자자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해체됐던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을 재조직하고, 금융위‧금감원‧한국거래소와 합동 수사를 벌이는 등 검찰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2차 집단 하한가 사태는 막지 못했다. 또한 기업 총수의 행보도 뚜렷한 정황이 밝혀지지 않아 투자자 입장에서 “내가 보유한 종목도 언젠가 내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여의도에서 만났던 한 개인투자자 권익보호단체 대표가 “우리나라 자본시장은 선진시장이 되려면 갈 길이 멀다”고 했던 말이 어느 때보다 크게 와닿는다.

시장이 신뢰를 잃으니, 주변에서는 “조선장(한국 주식시장)은 믿을 곳이 못 된다”, “손해를 본다고 해도 차라리 해외주식 투자가 낫다”는 식의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기자도 양심상 누군가에게 “대한민국 주식시장에 투자하세요”라고 당당하게 권유할 자신이 없다. 앞으로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뚜렷한 개선과 정화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차라리 국내주식 투자를 그만두고 선진국 시장을 두드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파이낸셜투데이 양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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