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사진=연합뉴스
삼성. 사진=연합뉴스

미국계 해지펀드사인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개입해 손해를 봤다며 제기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에서 한국 정부가 약 690억원을 배상하게 됐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전일 오후 8시경 “엘리엇이 제기한 국제투자분쟁 관련 중재 판정부는 엘리엇 측 주장 일부를 인용해 우리 정부에 5359만달러(약 690억원)와 지연이자 지급을 명했다”고 밝혔다. 배상원금 기준 엘리엇이 청구금액으로 제시한 7억7000만달러 가운데 약 7%가 인용됐다.

이번 배상 건의 배경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이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했던 엘리엇은 합병에 반대했다. 반면, 당시 삼성물산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하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5월 26일 합병안을 발표했다.

당시 제시된 합병비율은 ‘삼성물산 주식 1주당 제일모직 주식 0.35주’였다. 다만, 삼성물산 주주들은 ‘회사 가치가 저평가됐다’며 반발했다. 이후 2017년 국정농단 수사에서 정부가 뇌물을 받은 대가로 이익을 주기 위해 ‘합병비율을 높게 측정해줬다’라는 결론이 나왔다.

엘리엇은 2018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당시 박근혜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이번 판결로 엘리엇이 배상액으로 설정한 7억7000만달러(9917억원)의 약 7%를 받게 됐다. 배상액에 대한 지연이자는 2015년 7월 16일부터 판정일까지 5% 연복리가 붙는다.

판결과 관련해 법무부는 “정부가 약 93% 승소했다”며 “판정문 분석결과 및 향후 계획 등에 대해 추후 상세한 설명자료를 배포할 예정이다. 국익에 부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엘리엇은 이번 판결이 ‘타당한 결론’이라며 법무부와 의견을 달리했다. 이날 엘리엇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는 엘리엇이 삼성물산 투자와 관련해 대한민국을 상대로 개시한 중재 절차의 결과에 대해 “이번 중재 판정부의 결론이 사실에 비춰 타당한 결론이라고 생각한다”며 “본건 사실관계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 법원과 검찰에 의해서도 이미 지난 수년간 입증되고 널리 인정된 바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판결이 ‘국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최초의 투자자-국가 분쟁 사례’라고 평가했다. 엘리엇은 “이번 사건은 아시아에서 주주행동주의 전략을 취하는 투자회사가 투자 대상국의 최고위층으로부터 기인한 부패한 범죄행위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최초의 투자자-국가 분쟁 사례”라며 “중재 판정부는 엘리엇의 손을 들어주며 손해액, 이자, 법률 및 소송 비용을 포함해 1억850만달러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중재판정에 불복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의 부담만 커질 것이라는 충고가 이어졌다. 엘리엇은 “이번 중재판정을 통해 정부 관료와 재벌 간의 유착관계로 인해(해외 투자자 및 한국의 연금 가입자 포함) 소수의 주주가 손실을 봤다는 사실이 재차 확인됐다”며 “이는 사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찰 재직 당시 수사 및 형사 절차를 통해 이미 입증한 바이기도 하다. 엘리엇은 대한민국이 이번 중재판정 결과에 승복하고, 중재 판정부의 배상 명령을 이행하길 바란다. 중재판정에 불복해 근거 없는 법적 절차를 계속 밟는다면 추가적인 소송 비용과 이자를 발생시켜 대한민국 국민의 부담만 키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중재판정은 지난 정권의 행위에 대해 대한민국의 명백한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써, 엘리엇은 현 정부가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계속해서 부패와 싸우기를 기대한다”며 “대한민국이 더 투명하고 믿을 만한 외국인 투자처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투데이 양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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