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선재 기자
사진=김선재 기자

정부가 필요에 따라 시장 논리를 무시하며 은행에 ‘감놔라, 배놔라’ 간섭하는 일이 또 일어났다. 이번에는 ‘청년도약계좌’에 제공하는 금리를 둘러싸고서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청년도약계좌’가 오는 15일 출시된다. 청년들의 자산 형성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월 최대 70만원씩 납입하면 5년 뒤 5000만원을 찾을 수 있도록 한 정책금융상품이다.

연봉 7500만원 이하면서 중위소득 180% 이하인 만 19~34세 청년이 대상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최대 6%의 기여금과 비과세 혜택을 지원한다. 단, 연봉 6000만원 초과 7500만원 이하인 청년은 정부 기여금 없이 비과세 혜택만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청년도약계좌’를 통해 5000만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 6% 이상의 금리가 적용돼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연봉 2400만원인 청년이 매월 70만원씩 납입한다면 정부가 5년간 지원하는 기여금은 총 144만원(2만400원×60개월)이다. 그러면 연 6.15%의 금리가 제공돼야 5년 뒤 5000만원을 만들 수 있다. 연소득 6000만원 이하인 경우도 5년간 정부 기여금 총 126만원(2만1000원×60개월)을 제외하고 5000만원이 되기 위해서는 연 6.32%의 금리가 적용돼야 한다.

그런데 시중은행의 정기예금에 제공하는 금리는 우대금리를 포함해서 1년 만기 기준 3.50~4.10% 수준이고, 적금 상품 금리도 같은 조건에서 3% 중반대에서 5% 초반대가 가장 많다. 즉, 6%대 금리는 은행들이 제공하는 수신금리를 1~3%p 웃도는 것이다. 특히, 기준금리 동결 및 채권금리 하락 등 금리 상승 요인이 없는 상황에서 은행들은 ‘역마진’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을 정부가 모르지 않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도약계좌’의 정책목표 달성을 위한 정부의 기여는 미미한 수준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부가 여기에 지원하는 기여금은 5년간 최대 144만원이다. 5000만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8%에 불과하다. 반면, 은행이 6.5%의 금리를 제공한다고 가정했을 때 5년간 납입되는 원금 4200만원에 대한 이자는 694만원에 이른다. 정부의 기여금보다 약 5배 많은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은행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도 아니다. 같은 조건이라면 금리를 조금이라도 더 주는 은행에 돈을 맡기고 싶은 것이 당연한 데, 은행별로 금액이나 가입자 수 등에서 한도를 두지 않았다. 만약 특정 은행이 다른 은행보다 금리를 많이 줘 해당 은행으로 몰리게 되면 그 은행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손실을 입게 된다.

그래서 은행들이 자체 수신상품 수준의 금리를 기본으로 우대금리를 통해 최대 연 6.0~6.5%를 금리를 제공하는 방안을 내놓자, 정부는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높은 금리를 책정하라고 대놓고 주문하고 나섰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12일 ‘청년도약계좌 협약식 및 간담회’에서 취급은행을 향해 “이익을 우선시하기보다는 청년도약계좌가 청년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결국 ‘청년도약계좌’의 목표 달성을 위한 부담은 은행들에 다 떠넘기고, 생색만 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은행들은 쉽게 불만을 토로하지 못하고 있다. 연초부터 ‘이자장사’ 비판에 직면해 개혁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급격하게 오른 금리에 은행들은 역대 최대 순이익을 시현했고, 이를 바탕으로 소위 ‘성과급 잔치’를 벌여, 금리 상승으로 인한 금융소비자의 부담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정부는 은행의 영업 관행과 제도를 개선하겠다면서 ‘은행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를 꾸려 자본확충, 예대금리차 공시 확대 등을 결정했다. 또한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과 연체율 상승, 9월 코로나19 금융지원 종료에 따른 손실 발생을 대비한 손실흡수능력 확충 능력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나같이 은행에 부담스러운 것 뿐이다.

은행들은 정부의 요구에 따라 기본금리를 다소 높이고, 우대금리 조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면서도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는 모습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금융지원과 상생금융 확대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해왔는데, 너무 무리한 요구를 계속한다는 것이다. 이럴 거면 차라리 정부가 금리 등 모든 조건을 다 정해서 하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정부는 은행의 희생을 담보로 정책의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자체를 목적으로 은행에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서는 지속가능한 것이 될 수 없다. 은행은 민간기업이지, 정부가 나서 일일이 간섭해도 되는 공공기관이 아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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