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증권가. 사진=양지훈 기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증권가. 사진=양지훈 기자

지난해 퇴직연금 적립금이 300조원을 돌파한 가운데, 금융회사들의 ‘퇴직연금 고객 모시기’ 경쟁이 한창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오는 7월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시행을 앞두고 관련 상품을 출시하는 등 점유율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디폴트옵션 도입뿐만 아니라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퇴직연금 규제 완화 방침과 관련해 최적의 상품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적립금은 약 336조원이다.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3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금융당국과 통계청은 향후 시장 규모가 ▲올해 말 377조원 ▲2027년 557조원 ▲2032년 860조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3월 말 적립금 기준 퇴직연금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업권은 은행(51.7%)이었다. 보험사는 25.6%, 증권사는 22.7%다.

◆ 디폴트옵션 도입, ‘새로운 변수’ 가능성↑

현재 퇴직연금 시장의 화두는 디폴트옵션이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운용 지시를 따로 하지 않아도 금융회사가 사전에 결정한 운용 방식으로 투자 상품을 선정하고 운영하는 제도다. 퇴직연금 가입 후 방치하는 사례가 많아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거론됐으며, 오는 7월 정식 시행을 앞두고 있어 향후 시장에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41개 금융기관이 운용하는 279개 디폴트옵션 상품은 운용 기간이 길고 위험등급이 높을수록 좋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운용 기간 3개월 기준 초저위험 디폴트옵션 상품의 수익률은 1.11%였으며, ▲저위험 2.33% ▲중위험 3.22% ▲고위험 4.81%로 나타났다.

이에 일각에서는 디폴트옵션이 증권사 퇴직연금 점유율을 확대할 ‘기회’라는 시각도 있다. 증권사는 타 업권보다 공격적인 투자에 강하므로 고위험군 상품 투자를 원하는 가입자들의 연금 이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고객 확보를 위해 디폴트옵션 외에도 다양한 차별화 전략을 전개 중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이미 지난해 2월 모바일 퇴직연금 MP(Miraeasset Portfolio) 구독 서비스를 출시해 좋은 반응을 이끌었으며, 주식 비중에 따라 4가지 유형의 포트폴리오(MP70, MP40, MP30, MP20)를 제공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하나증권은 하나금융그룹의 퇴직연금 브랜드인 ‘연금닥터’ 서비스로 퇴직연금 사업 강화에 나섰다. 임명된 연금 특화 직원들은 DC형(확정기여형) 사업장에서 디폴트옵션을 도입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수익률 관리를 위해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한국투자증권은 3월 ‘퇴직연금규약 모바일 동의 서비스’를 도입했다. 서비스를 통해 한국투자증권 퇴직연금에 가입한 기업에서는 카카오톡을 통해 임직원의 동의를 간편하게 받을 수 있게 됐다. 퇴직연금 기업형제도(DB·DC형)는 새로 가입하거나 변경 시 근로자의 동의가 필수다.

한국투자증권 퇴직연금에 가입한 기업 담당자는 “서비스 도입으로, 비대면으로 간편하게 디지털 동의서를 접수받고 실시간 확인도 가능해졌다”며 “임직원 만족도도 높고 퇴직연금 담당자들의 업무 부담도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 정부, 퇴직연금 ‘규제 완화’ 방침

디폴트옵션과 함께 퇴직연금 시장에는 또 하나의 변수가 생겼다. 지난 1일 금융당국이 퇴직연금 운용 규제 완화 방침을 밝히면서 퇴직연금 시장 점유율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1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퇴직연금감독규정 개정안에 따르면 금융위는 적립금을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도록 운용 규제를 완화할 예정이다. 금융위는 현재 적립금 대비 10%인 계열회사 증권 편입 한도를 DC형 20%, IRP형 30%로 각각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DB형에서는 동일인 발행 특수채, 지방채를 투자할 때 한도를 적립금 대비 현행 30%에서 50%로 높이기로 했다. 또한 퇴직연금 적립금의 100%까지 편입할 수 있는 상품의 범위도 확대된다. 국채나 통안채 등을 담보로 한 익일물 환매조건부매수계약(RP)과 단기금융집합투자기구(MMF) 등이 편입 가능 상품에 추가될 예정이다.

증권사들은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 정책에 맞춰 다양한 퇴직연금 상품과 서비스를 준비할 방침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다양한 서비스 개선은 정부 정책 목표인 금융소비자 권익 향상에도 부합하는 것”이라며 “퇴직연금 가입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양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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