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지한 기자
사진=한지한 기자

최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며 국회 문턱을 처음으로 넘었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보험금 청구 양식 통일 및 방법 간소화를 권고한 후 14년 만이다. 보험업계에서도 숙원사업 중 하나가 첫발을 내디딤에 따라 ‘올해는 다르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다만,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지난 14년간 번번이 무산돼 온 만큼, 이에 대한 명(明)과 암(暗)도 명확하다. 그 중심에는 소비자가 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국민 4000만명 이상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이라 불리는 실손보험의 보험금 청구를 전산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보험업법 개정안이다.

현재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려면 소비자가 병원에서 진료 후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영수증, 진료비 세부내역서 등)를 받아 보험사에 제출해 번거로움이 따르는데, 전산화를 통해 이러한 번거로움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우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도입될 시 보험금 청구 절차가 대폭 간소화돼 소비자의 편의성이 크게 개선된다. 특히, 그간 번거로운 청구 절차에 따라 포기했던 소액 보험금 청구건수도 증가해 보험 상품 만족도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 2021년 소비자와함께 외 6개(금융소비자연맹, 녹색소비자연대, 서울YMCA, 소비자권리찾기시민연대, 한국소비자교육지원센터)의 소비자 단체가 실손보험 가입자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2년 이내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었음에도 청구를 포기한 경험이 전체 응답의 47.2%에 달했다. 그중 30만원 이하의 소액청구 건이 95.2%를 차지했다.

보험금 청구 포기의 사유로는 ‘증빙서류를 종이로 발급받아 제출해야 하는데 따르는 번거로움’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서울 거주자인 60대 A씨는 강원도 여행 중 낙상사고를 당해 인근 지역 의료기관에서 치료한 후 서울로 복귀했으나, 실손보험금 청구를 위해 강원도 해당병원에 재방문해 서류를 발급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보험사의 입장에서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통해 그간 소요됐던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다. 현재 보험사들은 실손보험금 지급 심사 과정에서 가입자가 제출한 서류를 모두 수기로 입력하고 있다.

이밖에도 비급여 의료비도 어느 정도 바로 잡힐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일부 안과를 중심으로 백내장 수술비용을 과도하게 측정해 보험사들이 골머리를 앓았었는데, 전산화를 통해 가격이 표준화된다면 이같은 문제가 개선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도입된다면 개인정보 유출로 인해 보험사에게 유병자 보험 가입 및 보험금 지급 거절 명분이 마련된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지난 14년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도입되지 못한 것도 이같은 이유를 앞세운 의료계의 반대 때문이다.

의료계는 그간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도입을 강력하게 반대해왔다. 이에 따라 이번 법안소위에서도 중개기관 선정 및 전송 방식을 추후 시행령으로 결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환자의 개인정보를 활용해 보험사들이 추후 보험금 지급 거절 등에 활용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실손보험은 지난해에만 1조53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손해가 막심한 상품인데, 보험사들이 손해를 키우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찬성하는 것을 보면 이같은 의심을 거두기는 어렵다.

관련해서 지난 15일 환자단체들은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보험사만 이득을 취하는 제도다”며 “개인의 의료정보 누출로 인해 오히려 보험금 지급 거절과 보험료 상승이라는 악재를 가입자가 모두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디지털 시대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다. 다만, 서로간의 밥그릇 사수 싸움에서 소비자의 등골만 터져 나가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치권과 보험, 의료계의 중심에는 소비자이자 환자인 국민이 있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란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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