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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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가 급락해 금융시장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달러화가 약세를 거듭해도 원화까지 하락하는 ‘비동조화 현상’으로 지난달 원화는 미국 주요 교역국 26개국 가운데 달러 대비 하락 폭이 세 번째로 컸다.

1년 내내 이어지는 무역적자와 지난달 외국인 투자자 배당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의 금리 인상 리스크 완화도 필요하지만, 대내 리스크 완화와 중국 경기 회복세 등이 동반돼야 원화 가치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11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2일 원‧달러 환율은 1342.1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종가 기준 1340원대는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이다. 비록 10일 장 종료 후 1321.00원까지 회복했지만, 외환시장에서는 ‘1400원대 상승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원‧달러 환율은 ‘굴욕’을 겪었다. 지난달 말 기준 원‧달러 환율은 1337.70원으로 전월 말(3월 31일, 1301.90원) 대비 2.57% 하락했다. 미국 연준이 달러 지수를 산출할 때 활용하는 주요 교역국 26개국 중 달러 대비 세 번째로 큰 하락 폭을 기록했다.

4월 원화보다 더 큰 하락 폭을 기록한 화폐는 아르헨티나 페소(-6.1%), 러시아 루블(-2.8%)뿐이다. 원화 하락률은 일본 엔(-2.5%), 대만 달러(-0.7%), 중국 위안(-0.6%) 등보다도 컸다.

◆ 이창용 한은 총재 “4월 원화 약세는 외국인 투자자 배당 영향”

한국은행은 지난달 원화 하락은 외국인 투자자 배당 때문이라며 앞으로 원화 약세가 개선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행 배당 제도는 3월 주주총회에서 배당금을 결정하고, 4월에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달 2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미국 CNBC와 인터뷰를 통해 “4월에는 일반적으로 외국인 투자자 배당이 있어 원화가 (하락) 압력을 받았다”면서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이전만큼 빠르지 않을 것이며, 환율 압력도 지난해 대비 약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울러, 사상 최대로 벌어진 한미 기준금리 격차도 원화 가치 하락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3일(현지 시각)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기준금리를 0.25%p 인상해 미국 기준금리는 5.00~5.25%가 됐다. 한국(3.50%)과 미국의 금리차는 1.50~1.75%p로 벌어졌다. 자금은 금리가 더 높은 시장으로 향하기 때문에 원화 가치는 앞으로도 하락할 가능성이 커졌다.

◆ 전문가 “원화 약세, 국내 요인도 있어”

전문가들은 원화 약세가 단순히 미국 연준의 긴축 우려 때문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특히 지난달 다른 국가의 통화 가치가 상승했거나 원화보다 하락 폭이 작았던 것을 고려하면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만으로 원화 약세를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20일 “원화 약세의 원인을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만으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결국 원화 약세에는 국내 요인도 있다”고 판단했다.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주된 요인은 무역수지 적자 기조다. 산업통상자원부 ‘4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무역수지는 26억2000만달러(약 3조5134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1~4월 누적 적자액은 250억6200만달러(약 33조6081억원)로, 지난해 연간 적자액(477억8500만달러)의 절반을 넘어섰다. 아울러, 무역수지 적자는 1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14개월 연속 적자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절 이후 처음이다.

박상현 연구원은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국내 요인으로는 우선 늘 지적되고 있는 무역수지 적자 기조를 들 수 있다”며 “무역수지 적자 폭이 예상보다 커 경상수지마저 적자 전환한 것이 일단 원화 약세 압력을 높이고 있다. 겨울철이 지나면서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축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대(對)중국 및 반도체 수출 회복이 지연되면서 무역수지 적자 탈출 시점이 예상보다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박 연구원은 “향후 경상수지 적자와 함께 재정수지 적자 폭이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원화 가치에 부담을 준다”고 우려했다.

이외에도 ▲이창용 총재가 언급한 배당금 역송금 수요에 따른 수급 요인 ▲중국 리오프닝에 따른 국내 경기 개선 효과가 아직 제한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점 ▲미국-중국 갈등에 따른 공급망 리스크와 대만 리스크 등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원화 가치 약세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한편, 원화 가치 안정을 위해서는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중단뿐만 아니라 중국의 경기 회복과 국내 리스크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박상현 연구원은 “국내 경제 펀더멘탈(기초체력) 리스크 완화는 우선 중국 경기 정상화와 이에 따른 위안화 가치의 추가 강세를 통해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며 “2분기 중국 경기 정상화, 특히 생산과 투자 정상화에 힘입어 2분기 말이나 3분기 초 대중 수출 회복을 통해 국내 수출 경기 회복 시그널이 가시화된다면 원화 가치는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즉 무역수지 적자 탈출이 원화 가치 회복의 열쇠가 될 전망이다.

파이낸셜투데이 양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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