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범 기자
심영범 기자

“요즘 누가 전통시장 가요. 동네마트 갈 것도 없고 쿠팡에서 주문하면 되는데요”

최근 한 지인과 저녁식사를 함께하면서 들은 말이다. 문득 생각해보니 집에서 불과 15분 거리에 있는 전통시장에 언제가 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어렸을 적 어머니와 손잡고 외할머니댁을 자주 갔다. 외할머니댁에 가기 전 근처 전통시장을 꼭 들르곤 했다. 어머니를 졸라 떡볶이 등 군것질로 요기하고 시장 구경하는 재미는 제법 쏠쏠했다.

한때 전통시장 중 꽤 큰 규모를 자랑했던 그곳은 예전보다 규모가 축소됐다. 근처 지역이 재개발된 영향도 있지만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2010년에 제정돼 시행 중인 유통산업발전법이 최근 다시 화두에 오르고 있다. 현재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대형마트·기업형슈퍼마켓(SSM)은 월 2회 공휴일에 휴업해야 한다. 아울러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할 수 없다.

당초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활성화에 따라 제정된 법이지만 승자는 아무도 없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전통시장 그 누구도 웃지 못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는 한국유통학회 등 유통물류 관련 4개 학회를 대상으로 실시한 ‘유통규제 10년, 전문가 의견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의 70.4%는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가 대형마트는 물론 보호대상인 전통시장까지도 패자로 내몰았다고 답했다.

실제로 전체 유통시장에서 전통시장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2013년 14.3%에서 2020년 9.5%까지 하락했고, 대형마트 점유율 또한 2015년 21.7%에서 2020년 12.8%로 줄었다.

이를 반영하듯 대다수 전문가들(83.3%)은 ‘대형마트 규제의 폐지 또는 완화’가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모으며, ‘현행 수준 유지’ 응답은 16.7%에 그쳤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규제에 따른 전통시장 활성화 효과에 대해서도 76.9%가 ‘효과가 없었다’고 답했다.

코로나19 이후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세와 더불어 유통구조가 많이 변했다. 사실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크게 전통시장을 가야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유통산업발전법을 지켜보며 왜 그동안 정부는 전통시장의 주차장 등 편의시설 확충과 현대화를 고려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통구조가 10여년간 많이 변했다. 마트나 백화점의 노동자들도 의무휴업과 관련해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규제카드만 꺼내든 정부의 정책이 이제는 변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대·중소유통 상생협약을 통해 영업제한시간, 의무휴업일 대형마트 온라인 배송 허용 등 제도개선에 관한 합의를 이뤘다.

또한 중소유통 지원을 위해 전통시장 디지털 전문인력, 교육 및 판로 지원, 슈퍼마켓 물류 전문인력, 마케팅 및 시설 개선을 지원하기로 했다.

대구광역시는 지난 3월부터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했다. 청주시도 대형마트와 준대규모점포의 의무휴업일을 매월 둘째·넷째 수요일로 변경한다고 이날 밝혔다.

조금씩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지만 갈길은 멀어보인다. 이제 전통시장과 유통공룡인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적이라는 관점에서 탈피해야 할 시점이다. 시대의 변화는 무섭도록 빠르다. 지난 10여년간 어느 누구도 웃지못하고 볼멘 소리만 가득하다면 정부도 그동안의 정책에 대해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파이낸셜투데이 심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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