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선재 기자
사진=김선재 기자

은행권을 향한 ‘돈 잔치’ 비판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고금리 기조에 기대 역대 최대 실적을 올리고, 성과급, 퇴직금 등 소위 ‘돈 잔치’를 벌이자 금융소비자의 부담은 외면한 채 별다른 노력 없이 돈을 번 은행들이 자기들 주머니만 채우고 있다는 비판이다. 특히, IMF 금융위기 당시 막대한 세금을 들여 은행이 망하지 않도록 했는데, 정작 고객들이 어려울 때에는 이를 외면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은행의 사회적 역할 확대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위기 극복을 위해 은행이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은행에 대한 역할 확대 요구는 다소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 그 안에는 은행을 죄악시하는 분위기와 함께 공공에서 해야 할 역할까지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지난해 은행들이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한 배경에는 기준금리의 급격한 인상이 있다. 기준금리가 오르니 자연스럽게 대출금리가 올라 은행의 핵심이익인 이자이익이 는 것이다. 또한 금리가 높아지면서 줄어든 가계대출을 기업대출로 만회하면서 대출자산을 늘린 것도 이자이익을 증가시켰다. 즉, 작년 한 해 동안 이어진 금리 상승 기조에 의한 시장의 흐름 속에서 시장 변화에 은행들이 적절히 대응함으로써 이익이 늘어난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적 역할에 무관심했던 것도 아니다. 은행들은 그동안 어려운 차주들을 위한 금융지원을 꾸준하게 이어왔다. 대표적인 것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원금·이자상환을 유예하고, 대출만기를 연장한 것이다. 금융당국은 2020년 4월부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대해 대출 만기연장 및 원금·이자상환을 유예하도록 했다. 이후 2년 6개월간 6개월씩 총 네 차례 해당 조치를 연장, 지난해 6월 기준 362조4000억원의 대출에 대해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가 이뤄졌다.

지난해 9월을 끝으로 종료될 예정이었던 조치는 고금리·고물가 등 경제·금융여건의 악화로 회복이 더뎌지자, 금융당국은 대출 만기연장은 최대 3년, 원금 및 이자상환 유예는 최대 1년 더 연장하도록 했다. 몇 년간의 이자이익 감소와 유예 조치 해제 후의 불확실성을 감수하면서 당국의 조치에 협조한 것이다.

이와 함께 주요 시중은행은 최근 총 7300억원 규모의 ‘상생금융안’을 발표했다. 대출 이자 감면과 제2금융권 대환대출, 채무감면 프로그램 시행 등을 통한 차주 이자비용을 절감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주요 시중은행을 방문해 은행들의 상생금융 확대를 격려하고, 앞으로 이를 지속해줄 것을 주문했다.

이후로도 은행들은 기준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대출금리를 낮춰 차주의 금융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를 이어왔다. 최근에는 기준금리 동결에도 대출금리를 계속 낮춰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 혼합형(5년 고정) 상품 금리는 기준금리 인상 이전 수준인 3% 중반대까지 내려왔다.

20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혼합형 금리는 3.64~5.57%로, 지난달 3일과 비교했을 때 하단 금리는 0.770%p 떨어졌다. 특히, 주담대 혼합형 상품 금리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5년물 금리가 같은 기간 0.497%p 하락한 것을 감안하면 실제 금리 인하폭이 훨씬 더 큰 것이다. 주담대 변동형 상품 금리와 신용대출 금리도 마찬가지다.

이는 미국이 통화긴축 속도 조절에 들어가고, 연내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커지면서 시장금리가 하락한 영향도 있지만, 각 대출금리 하락 폭이 지표금리 하락 폭보다 큰 것은 ‘돈 잔치’ 비판에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더 많이 낮췄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전문가들은 시중은행의 상생금융안으로 은행의 순이자마진이 4~5bp(1bp=0.01%p)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당국은 올해 은행 경영실태 평가에서 은행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평가 비중을 더 늘리고, 사회공헌활동을 비교 공시하는 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은행의 사회공헌활동 등 사회적 역할 확대를 유도하겠다는 차원이다.

그런데 은행들이 금융지원뿐만 아니라 비금융지원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것을 수치화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일지 의문이다. 자칫 수치화하기 용이한 영역에서의 사회공헌활동이 집중될 우려도 있다. 은행권에서는 이미 수치화하기 어려운 영역에 대한 사회공헌활동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한 금리, 연초 인사 시기에 이어 이제는 사회공헌활동에까지 금융당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는 ‘관치’ 지적도 제기된다.

은행은 금융시장 속에서 영업활동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민간금융기업이다. 시장의 흐름에 따라 이익을 극대화하고, 이를 주주에게 돌려줘야 한다. 또한 일정 수준 이상의 자본을 유지하고, 대출 부실에 대비한 충당금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은행이 사회적 역할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하려면 그것이 은행의 이익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 사회적 역할 확대 자체가 목적이 돼 이를 강제하고 압박하는 것으로는 지속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은행은 민간기업이지, 공공기관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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