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 기업과 유통에 종속 당한 농부의 씨앗
농부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식량 안보와 식량 주권을 지키는 것

‘농부는 굶어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라는 속담처럼 농부들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씨앗을 지키고, 이듬해 농사를 준비해 왔었다. 그런 농부들이 씨앗을 잃었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씨앗을 지키지 못하고 잃어버렸다. 농부들은 치솟는 종자 값으로 인해 농사짓기가 해마다 어려워진다. 우리나라 농작물 종자들은 대부분 일본을 비롯한 외국 종자가 차지하고 있다.

농부들은 저렴한 국산 종자를 쓰고 싶지만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감자파종을 하고 있는 농부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농부들은 저렴한 국산 종자를 쓰고 싶지만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감자파종을 하고 있는 농부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 종자주권을 빼앗긴 농부

농부들은 저렴한 국산 종자를 쓰고 싶지만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오늘날 전 세계 종자 시장 70% 이상을 세계 10대 다국적 종자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다국적 종자기업들 대부분은 농약과 화학제품 회사였다. 이들이 종자 사업에 뛰어든 것은 돈이 되는 1회용 F1종자 시장을 선점하기 위함이다. F1종자는 서로 다른 두 작물의 종자를 교배한 것으로 두 작물의 장점만 나타난 결과 생육의 좋을 뿐만 아니라 병충해에도 강하다.

종자 기업들은 이윤추구를 위해 농민들이 사용하는 자가 채종 종자를 개량한다. 다국적 종자 기업들은 가장 안정적인 F1 채종 수단으로 ‘웅성불임’을 이용한다. 이는 돌연변이 일종으로 꽃가루, 꽃밥 등 수술의 생식 기관에 결함이 있어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상이다. 주로 꽃가루 결함에 의한 불임으로 화분이 생성되지 않거나 기능을 상실한 화분이 생성되는데, 더욱 강력한 F1 종자를 생산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수량 및 상품성이 우수한 종자를 만들어 상품으로 출시하면 농민들은 자가 채종 종자를 사용하지 못하고 종자 기업들이 개량한 종자를 사용하게 된다. 만일 종자 비용 절약을 위해 F1 종자 씨앗을 받아 심으면 이 같은 장점들은 나타나지 않으며 모양도 제각각 다른 품종이 나와 씨앗을 받아 심을 수도 없다.

이로 인해 농부들은 매년 비싼 종자를 구입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우리 농촌은 씨앗을 사서 쓰지 않으면 더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현실이 됐다. 농부의 씨앗이 생산성, 효율성, 저장성 등의 요인들로 인해 종자기업과 유통에 종속당한 것이다. 농민들이 자유롭게 농사를 지을수 있는 권리를 ‘농부권’이라고 표현하는데 오늘날처럼 종자 산업에서 제공해주는 종자를 심어야 하는 현실에서 농부권은 전혀 발휘되지 못한다.

◆ 단품종 대량생산의 폐해

종자회사는 다양한 품종보다 단일 품종을 많이 파는 것이 중요하다. 품종이 단순 할수록 개발및 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회사는 다양한 작물보다 농산물의 이동거리를 고려해 저장성이 좋은 종자만을 찾는다. 종자회사와 유통회사 간 이해관계로 인해 씨앗의 권리는 농부로부터 멀어지고 종자의 다양성도 훼손되고 있다. 소비자 입장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은 상품을 선택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종자 시장에서는 예외다.

예전에는 다양한 종류의 제철 농산물이 나왔으나 최근에는 똑같은 모양과 종류의 한 품종만 선택할 수 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맛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잘나가는 맛만을 선택하도록 강요당하는 현실이다.

종자기업과 유통기업의 수익에 의해 선택되는 단일 품종의 종자. 단일 품종 재배가 본격화 된 것은 녹색혁명 이전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녹색혁명의 핵심은 농업의 과학기술화에 있으며, 식량 증산을 통해 인구증가에 따른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녹색혁명은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처럼 여겨졌고, 이후 농업은 다품종 소량생산체제에서 단일 품종 대량생산 체제로 급변했다.

단일품종 대량생산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효율적이었을 뿐 위험성은 이미 농업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아일랜드에서는 1845년~1850까지 6년간 감자 기근이 발생했다. 단일 품종으로 재배되던 감자에 입마름병이 발생했다. 감자수확량 급감으로 100여 만명이 굶어 죽고 300여 만 이 미국으로 이주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우리나라도 이와 관련 두건의 기록이 남아있다. 1970년대 주곡의 자급을 달성하게 할 목적으로 다수확품종인 ‘IR-8’을 개량해 새로운 벼품종이 만들어졌다. 이 품종이 바로 통일벼다. 우리나라는 통일벼를 강제보급했고, 도열병과 냉해로 인해 1978년과 80년 대흉년이 들었다. 이보다 앞서 1969년에는 ‘광교콩’을 보급했지만 3년 후 바이러스로 인해 궤멸됐다.

◆ 농부들을 지키는 사회적 유통망 절실

씨앗을 잃어버린 농부가 다시 씨앗을 생산·공급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소비자들이 F1종자가 아닌 토종 종자로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부 즉 생산자들을 지켜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시장을 확대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간 직거래가 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할 수 있는 유통경로들을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농부들은 보다 다양한 종자들을 재배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소비자들은 획일화된 품종 및 품목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농산물들을 소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의 생명권과 식량 안보와 직결되는 식량 주권. 이는 씨앗에 대한 농부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영권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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