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회복세이거나 상승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조사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더 이상 추락하지 않고 회복세에서 상승 조짐까지 보인다는 뉴스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권력 운용과 불통 리더십으로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는데 어떻게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역진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최근의 민노총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정부의 원칙적이고 단호한 대응이 지지율에 반영된 분석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여기에다 도어스테핑 중단으로 ‘설화 리스크’가 줄어들어 윤 대통령에 대한 불신의 강도가 더 세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지율 회복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내재적 요인’보다 외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169석의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이 제대로 된 정권 견제와 감시자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특히 민주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60년 넘은 ‘정통야당’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이 보여주는 ‘정치적 퍼포먼스’는 60년 넘은 정통야당의 간판을 내려야 할 정도로까지 지리멸렬 상태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그동안 민주당이 보여준 가장 큰 족적은 특정인물에 매몰돼 정권만 창출하면 된다는 권력 지향주의 정당이 아니라 ‘민주’와 ‘진보’라는 가치를 위해 대권주자와 ‘함께’ 투쟁하는 과정에서 권력까지 쟁취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당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낭패불감’(狼狽不堪)에 빠져 있다. 이 대표는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도 애써 모른 척 건너뛰었다. 기자회견에서 ‘사법 리스크’에 관한 난감한 질문들이 쏟아질 것을 우려해 ‘그냥 하지 말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제1야당 대표의 처신 치고는 비겁하고 옹색하다. 국민들이 현재 시점에서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을 당당하게 밝히고 자신의 허물이 밝혀지면 그 책임을 지면 된다. 현재의 검찰 수사가 억울하다면 그들의 ‘정적 죽이기’와 ‘문재인 정권 복수’의 프레임을 낱낱하게 까발리면 된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는 “검찰이 훌륭한 소설가가 되기는 쉽지 않겠다”라든가 “‘검찰이 연기 지도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연출 능력도 아주 낙제점이다”라는 등의 ‘허구 프레임’으로 맞서고 있다. 검찰의 ‘이재명 혐의점’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잘 못 된 것인지 밝히지 않고 그냥 두루뭉수리 시간을 뭉개고 있다. 당 안팎의 ‘책임 있는 자세’ 요구를 이재명 퇴진을 위한 불순한 정치공세라고 치부한다. 애써 모른 척, 민생에 ‘열일’인 것처럼 시간만 보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 창당 이래 당 대표가 이처럼 큰 리스크에 노출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비리나 대선자금 수사는 ‘노무현’ 개인 차원이 아니라 당 차원의 사활 문제였다. 그동안의 정치 관행에 노 전 대통령도 어쩔 수 없이 ‘얹혀’ 그 책임을 함께 해야 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대장동 개발사업에 대해 특정인이 천문학적인 액수의 특혜를 받은 의혹과 그 자금의 일부가 ‘이재명’ 또는 ‘이재명 사단’으로 흘러들어간 권력형 비리에 속한다. 정치자금 관행과는 별도로 개발사업 특혜 관련 ‘허가’는 그 최종결정권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기존의 권력형 비리와는 또 다른 사건이다. 바로 이 점이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지지율은 ‘답보’ 상태에 있고,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침체에서 회복으로 끌어올려주는 결정적 요소가 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 국면에서도 ‘대범하게’ 민주당과 협치 없이 불통의 콘테이너를 두텁게 쌓을 수 있었던 배짱의 배경에는 ‘이재명 사법 리스크’라는 믿을 만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윤 대통령의 불통과 일방독주 리더십에 대한 불만보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민심이 충격을 받는 강도가 더 크다는 대통령실의 판단이 깔려 있는 듯하다. 더구나 야당은 169석의 거대야당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예산안에 대해서도 ‘민주당 수정안’을 가결시킬 수도 있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가장 먼저 예산안도 새 정권의 국정운영 비전과 장기정책 방향에 따라 많이 바뀌게 된다. 그런데 민주당이 대선으로 선택된 새 정부의 예산안마저 ‘민주당 수정안’으로 밀어붙이려는 것은 대선불복의 빌미를 줄 수 있는 동시에 ‘입법 독재’라는 또 다른 비판에도 노출될 수 있다.

민주당은 또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도 밀어붙이고 있다. 그것이 윤 대통령에 의해 거부될 경우 탄핵소추까지 꺼내들려고 한다. 이는 집권여당이 민생을 내팽개칠 때 민주당이 169석이라는 다수야당의 이점을 충분히 살려 국정운영을 정상화하라는 언명과는 또 다른 문제다. 단순히 169석을 이용해 집권여당의 정책이나 예산안 등에 대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것이 ‘이재명 사법 리스크’ 프레임을 희석시키기 위한 민주당의 눈속임 전략이라는 비판에 야당은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해결하기 위한 민주당의 ‘집단 지성’은 지금 실종상태에 빠져 있다. 2024년 공천까지 걸린 문제라 의원들의 소신 있는 해결책 제시도 눈에 띄지 않는다. 60년 넘는 정통야당 민주당의 ‘대여 전략’ 치고는 무능하고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다.

민주당의 기계적이고 뻔한 ‘반사이익 전략’도 문제다. 민주당 의원 몇몇은 윤석열 대통령이나 김건희 여사에 대해 ‘스토커’ 수준의 ‘모두까기’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 열혈 지지층에서는 의원들이 윤 대통령이나 김 여사에 대해 얼마나 과감하게 ‘대드는’ 것인지에 따라 과거 민주투사의 척도로까지 이어가는 분위기다. 김의겸 의원이 국정감사 기간에 제기한 ‘청담동 술자리’ 의혹도 그 진실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윤석열과 한동훈 패밀리’에 대해 그냥 한번 내지르는 ‘화풀이’ 차원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 모든 민주당의 반사이익 기대와 관성은 고민정 의원의 “윤 대통령의 존재 자체가 굉장히 사회적 위협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말 속에 그대로 함축돼 있다. 민주당의 ‘윤석열 김건희 모두까기’ 전략이 대체로 성공했다면 윤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 회복 조짐은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민주당의 정신적 기둥’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2년 12월 대선에서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민주당은 당 붕괴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로 권력의 진공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민주당은 김 전 대통령을 붙잡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영국으로 떠난 뒤 2년 7개월 만에 다시 정계에 복귀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당시 민주당이 겪었던 ‘김대중 패배 리스크’는 현재의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를 넘어서는 충격파였다. 철석까지 믿었던 유력한 대권주자의 ‘망실’은 민주당의 존재이유마저 위협했다. ‘김대중’ 없는 민주당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변’이었지만 민주당은 민심의 선택을 받아들여 김 전 대통령을 떠나보냈고 절치부심 ‘후일’을 도모했다.

1992년 민주당은 비록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무 것도 남지 않았던 ‘그라운드제로’에서 재건의 씨앗을 뿌렸던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끝내 정권 창출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패배에 깨끗이 승복하고 정계를 미련 없이(적어도 1992년 12월 19일 새벽 3시 정계은퇴 담화문에서는) 떠났던 ‘담백한 결말’에 국민들도 고개를 주억거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은 누구도 말이 없다. 이재명 대표도 말이 없고 대표의 뭉개기에 의원들이나 당원들도 말이 없다. 그러면 끝이 나는 일인가. 화합과 통합을 갈망하는 민심은 외면한 채 불통으로 일관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야금야금 올라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민주당이 1992년 새벽 3시, 그때의 그 ‘꺾이지 않는 마음’이 처음 움텄을 때로 되돌아갔으면 한다.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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