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전 의원이 지난달 29일 오전 대구 북구 경북대학교에서 '무능한 정치를 바꾸려면'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승민 전 의원이 지난달 29일 오전 대구 북구 경북대학교에서 '무능한 정치를 바꾸려면'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이 내년 2월말 3월초 전당대회 개최를 밀어붙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국민의힘 ‘윤핵관’과 비상대책위원회 지도부, 김기현 의원 등을 잇달아 관저에서 만나며 ‘당무’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윤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당 대표직이다. 2024년 총선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차기 당 대표를 윤 대통령이 직접 ‘낙점’해야 비로소 윤석열 정권의 기본 권력 구도가 세팅이 된다.

하지만 지금 당장 전당대회를 하면 유승민 나경원 전 의원이 유력한 당 대표로 거론된다. 특히 유승민 전 의원은 사사건건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비판을 가하면서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되었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 등은 어떻게 하면 유 전 의원을 몰아낼 수 있을지 연일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이는 지난 2015년 ‘친박세력’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몰아내려고 온갖 수를 쓰던 때와 유사한 상황이다.

지난 11월 마지막주 ‘리서치뷰’ 정례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힘 당대표 적합도 조사에서 유승민 전 의원이 1위(31%)를 기록했다. 그 뒤를 나경원 전 의원(15%), 안철수 의원(11%), 김기현 의원(5%),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4%), 조경태 의원(2%), 윤상현 의원(2%) 등이 이었다. 유 전 의원이 나 전 의원을 거의 더블스코어 차로 이기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만을 대상으로 할 경우 나경원 전 의원이 1위(28%)였다. 그 뒤를 △안철수(15%) △유승민(12%) △김기현(10%) △황교안(7%) △조경태(3%) △윤상현(2%) 등이 이었다.

현재로서는 유 전 의원이 야권 지지층의 ‘역선택’을 받은 영향도 있겠지만 어쨌든 국민의힘 당 대표로 유력한 상황이다. 하지만 ‘당심’만을 놓고 볼 때 나경원 전 의원이 1위를 기록했기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지도부와 잇단 관저 회동을 갖고 당원투표와 일반 국민 여론조사 비율을 현행 70% 대 30%에서 최대 90% 대 10%로 수정하는 등의 경선 룰 개정을 협의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선 룰을 당심 위주 반영으로 바꿀 경우 중도층과의 괴리와 민심 이반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자칫 비주류에게 당 전체를 넘겨줘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국민의힘으로서는 물불 가릴 여유가 없다.

이 개정 룰의 핵심은 바로 ‘유승민 몰아내기’다. 현행 당심 70% 룰만 적용해도 유 전 의원이 당 대표로 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이번 기회에 당심을 대변하지 않는 정치인은 아예 대표로 나설 생각을 가지지 않게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짙다. 사실 유 전 의원의 최근 언행을 보면 그가 국민의힘 소속이 아니라 야당인 민주당 소속이라는 착각마저도 들게 할 정도다. 그는 지난 19일 MBC 취재진 전용기 탑승 배제 논란과 관련해 “말실수는 깨끗하게 사과하고 지나가면 됐을 일”이라며 윤 대통령을 작심 비판했다. 지난 21일엔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회견) 중단에 대해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국민과의 소통이 사라질까 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지적하지 않고 ‘같은 편’인 윤 대통령만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는 비판이 당내에서도 쏟아지고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2015년 5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재임 시절 대통령령 등 정부 입법에 대한 국회의 수정·변경 요구 권한을 명문화한 국회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켜 정부로 이송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함에 따라 상황이 반전되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소위 ‘배신의 정치’ 발언으로 유승민 원내대표를 직접 타격하면서 ‘좌표 찍기’를 했고 친박세력은 그를 몰아내기 위해 들고 들불처럼 일어났다. 당시 친박 최고위원들과 박근혜 대통령 지지모임인 박사모, 그리고 극우보수단체들은 유 원내대표 사퇴를 외치며 집중포화를 가했다.

지금 ‘윤핵관’이 유승민 전 의원을 몰아내기 위해 경선 룰을 변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나 김건희 여사 팬클럽 회장을 맡았던 강신업 변호사가 “유승민, 이준석 정치적으로 잡고 국민의힘을 뿌리째 바꾸겠다”며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하는 ‘웃픈’ 상황은 지난 2015년 친박세력과 박사모가 유 전 의원을 몰아내려는 시도와 상당히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의 늪 속으로 빠지게 된 순간이 바로 이때부터라고 보고 있다.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철권통치’의 그림자가 새누리당을 지배하면서 다양한 목소리가 사라지게 되고 당은 급속도로 폐쇄적인 집단이 되면서 ‘최순실’이라는 음지의 권력이 활개 치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박 전 대통령은 탄핵으로 몰락했다. 박 전 대통령 곁에서 쓴소리를 할 만한 참모들은 모두 강경 ‘박핵관’들의 견제에 밀려 떠나갔고 그나마 남은 자들은 아부와 ‘심기경호’ 하기에 바빴다.

지금 윤핵관도 국민의힘을 ‘윤석열 1인 정당’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윤핵관’ 4인방과 함께 한남동 관저에서 부부 동반 만찬을 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정치 9단’으로 꼽히는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윤 대통령으로서는 ‘죽어도 유승민은 안 된다’ 하는 것을 표방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 ‘입맛’에만 맞는 사람들만 골라 채워서 당을 탈바꿈시킨다 해도 외형만 그럴 뿐 내부적으로는 썩어 들어갈 수 있다. 김건희 여사와 그 주변 인물들의 발호를 강력하게 제어하지 않는 이상 윤핵관이 쳐 놓은 음지의 권력 울타리 속에서 ‘제 2의 최순실’ 점괘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윤핵관이 유승민 몰아내기를 하는 행태를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것과 너무나도 유사한 ‘평행이론’을 보이고 있다. 4년 9개월 동안 감옥 생활을 했던 박근혜 전 대표 곁에는, 그의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권력의 떡고물을 핥아먹던 친박은 한 사람도 없다. ‘권력’은 손에 쥔 모래와 같다. 손바닥을 편 채 가만히 있으면 흘러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꽉 잡으려고 손을 움켜쥐는 순간, 모래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고 손바닥엔 조금만 남게 된다(잭 캔필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승민 전 의원을 ‘배신자’로 몰아세우고 당을 강하게 쥐려고 하는 순간부터 몰락의 전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유승민 전 의원을 축출하며 당을 완전히 장악하려고 무리수를 두기 시작하다가 사달이 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유승민 전 의원이 사사건건 윤 대통령을 비판하고 국민의힘 발목을 잡는 배경을 두고 탈당을 위한 명분의 자락을 까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경선 룰마저 개정되면 유 전 의원이 당 대표가 될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고 그가 굳이 정체성이 판이하게 다른 국민의힘에 남아있을 이유도 없다. 유 전 의원으로서는 어차피 윤 대통령과 같이 갈 수 없기 때문에 ‘윤석열 때리기’에 올인해 차기 대권주자로서 확실한 대안이 되겠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듯하다.

당 안팎에서는 유승민 전 의원의 민주당 입당설도 제기된다.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로 분당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그 이탈파와 유승민 전 의원이 손을 잡는 정계개편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유 전 의원으로서는 윤석열의 박해로 쫓겨난다는 장면을 연출해야 향후 정치적 입지가 더 넓어지게 된다. 이런 유 전 의원의 ‘덫’에 윤 대통령이 굳이 걸려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윤핵관의 유승민 몰아내기 전략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오로지 윤 대통령 기분 맞추기에만 급급해하는 것 같다. 윤석열과 박근혜의 ‘유승민 평행이론’이 점점 맞아떨어져 가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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