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재 기자
김선재 기자

금융권에 ‘관치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연말 인사철이 되면 으레 나오는 얘기겠거니 할 수도 있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괜히 나오는 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 BNK금융그룹 이사회는 회장 후보군에 외부인사도 포함될 수 있도록 최고경영자 경영승계 규정을 개정했다. 그리고 며칠 뒤인 지난 7일 김지완 회장은 자진 사임했다. 김 회장은 2018년 회장 후보군에 외부인사는 들어올 수 없도록 최고경영자 경영승계 규정을 변경한 바 있다.

관련해서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11일 국정감사에서 규정의 폐쇄성을 지적했고, 이에 대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일반 시중은행·지주사의 임원 선출 절차와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며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런가 하면 김진균 Sh수협은행장 임기 만료에 따라 차기 행장 공모 절차를 진행한 Sh수협은행은 행장추천위원회 위원간 합의 불발로 후보 재공모에 들어갔는데, 1차 공모에 지원한 5명 중 4명이 수협 출신이었다. 재공모를 통해 추가된 후보 2명 중 한명은 경제관료 출신에 금융위원회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지난 7일에는 새 보험개발원장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대학교 동기인 허창언 전 금감원 부원장보가 공식 취임했고, 임기 종료를 두 달 남긴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의 후임으로 정은보 전 금감원장이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관치’의 그림자는 기어코 4대 금융그룹에까지 뻗쳤다. 금융위는 지난 9일 정례회의에서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해 손 회장에 대한 최종 제재 수위를 지난해 4월 금감원이 ‘문책경고’를 건의한 지 1년 6개월 만에 원안대로 의결했다.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은 금융사 임원은 3~5년간 금융사 취업이 제한된다.

당초 금융위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사태와 관련해 손 회장이 금감원을 상대로 제기한 징계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 및 취소 소송의 최종 결과를 보고 이건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린다는 입장이었다. 손 회장은 해당 소송에서 1·2심 모두 승소했다.

금융권을 향한 ‘관치’ 의구심이 점점 짙어질 즈음, 의구심을 확신으로 바꾸게 하는 발언이 이복현 금감원장으로부터 나왔다. 이 원장은 지난 10일 금융사 글로벌 사업 담당 임원과의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손 회장의 소송 제기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지금은 급격한 시장변동에 대한 금융당국과 금융기관이 긴밀히 협조해야 하는 점을 고려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 회장 제재안을 논의하는 금융위 안건소위원회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세 차례 열린 후 한동안 안 열리다가 지난 10월 말부터 최근 2주 사이 세 차례 열린 다음 9일 정례회의 안건으로 상정된 것을 두고, 가뜩이나 내년 3월 말부로 임기가 종료되는 손 회장을 끌어내리기위한 것이라는 말이 많았던 상황에서 나온 이 발언은 사실상 ‘소송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더 나아가 소송을 제기할 경우 우리금융그룹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금융위의 이번 결정과 관련해 DLF 사태 중징계 때처럼 손 회장이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손 회장에 대한 중징계가 결정됐지만, 내년 3월 말로 임기가 종료되는 손 회장의 연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금융위의 결정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징계의 효력을 정지시키면 원칙적으로 연임이 가능하다.

물론 이 원장은 이 건을 “심각한 소비자 권익 손상 사건”으로 규정하고, “이 건이 가벼운 사건이라던가 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위원은 단 한명도 없었다”며 정치권이나 이해관계자들의 외압은 없었다고 손사레를 쳤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전날 금융위가 예금보험공사 사정으로 임명 제청한 유재훈 전 예탹결제원 사장도 금융위·기획재정부를 거친 관료 출신이고,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 캠프에서 금융전문가로 활동한 바 있다.

어느 정권에서나 금융권 수장을 임명할 때마다 ‘낙하산 인사’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때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박근혜 정부 때는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권 인사 모임)’,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부금회(부산 출신 금융권 인사 모임)’ 등이 대표적이다.

앞으로 주요 금융그룹 회장 및 은행장들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권은 손 회장에 대한 중징계 최종 확정을 ‘관치금융 부활’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 전체로 소위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이 작용한 인사가 이뤄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나라 안팎으로 높아진 불확실성으로 금융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고, 특히 우리나라는 해외 투자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투명성과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 오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회사 경영을 맡는 것이 맞다. 관치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도 금융시장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열쇠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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