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이하 한은) 총재가 5% 넘는 물가 오름세가 내년 상반기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는 기존 한은 전망과 달라진 것으로, 높은 물가 오름세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 기조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 “5%대 물가 오름세, 내년 상반기까지도 내려오지 않을 수 있어”

이 총재는 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물가 관련 질의에 “유럽이 겨울에 들어가고, OPEC 감산, 강달러 등의 변수가 있다”며 “10월에 가도 5% 넘는 물가 오름세가 내년 상반기까지도 5% 밑으로 내려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6월과 7월 각각 6.0%, 6.3%를 기록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월 5.7%, 9월 5.6%로 상승폭이 둔화하는 모습이지만, 여전히 높은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근원물가(농산물및석유류제외지수)는 전년동월대비 4.5% 오르며 8월(4.4%)보다 상승폭을 키웠고,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도 1년 전보다 4.1% 상승해 전월(4.0%)보다 0.1%p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은에 따르면 9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8월(4.3%)보다 0.1%p 떨어진 4.2%를 기록하며 두 달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지만, 여전히 7월 4.7%를 기록한 이후 4%대를 유지 중이다.

정부와 한은은 그동안 10월에 물가가 정점에 이를 뒤 완만하게 떨어질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한은은 지난 8월 25일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올해와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각각 5.2%, 3.7%로 제시한 바 있다. 이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내년 상반기에 4.6% 정도 하고, 하반기에 2.9%로 3% 수준으로 수렴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내년 초까지는 5%대로 가다가 여름에 3%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런데 이 총재가 5%를 웃도는 물가 오름세가 내년 상반기까지도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함에 따라 금리 인상 기조가 장기간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총재는 “앞으로도 고물가 상황의 고착을 방지하기 위해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향후 기준금리 인상 폭과 시기는 주요국 통화정책 기조, 지정학적 리스크 등 대외 여건 변화가 국내 물가, 성장흐름, 금융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해서 오는 12일 열리는 금통위에서 한은이 두 번째 빅스텝(기준금리 0.5%p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금융투자협회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채권시장 참여자 100명 중 89명은 빅스텝을 예상했고, 6명은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p 인상), 5명은 베이비 스텝(기준금리 0.25%p 인상)을 전망했다.

◆“한미 금리역전·외환보유고 주는데…한은 상황 인식, 너무 낙관적” 비판

이날 국감에서는 현 시장 상황에 대한 한은의 인식이 너무 낙관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앞서 이 총재는 당분간 기준금리를 0.25%p씩 단계적으로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고, 최근 달러화 강세로 외환보유고 등에 대한 우려에 문제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총재 인사청문회 당시) 미국의 금리 정상화 속도가 빨라질 것이니 우리나라의 경제여건이 뒷받침될 때 선제적으로 조속히 금리를 정상화시키자고 주문했는데, 당시 총재는 빅스텝 필요없다고 했다가 6월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하니까 7월에 (한은도) 빅스텝 밟았다”며 “지금 금리 역전돼 0.75%p 차이나고 있다. 한미 금리가 이렇게까지 벌어지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조치를 했다면 환율도 이렇게까지 급격히 안 오르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7월 빅스텝 이후 당분간 0.25%p만 점진적으로 올리겠다고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했고 8월 금통위 이후에도 베이비 스텝을 확인했는데,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포워드 가이던스) 전제조건이 바뀌었다고 했는데, 너무 늦다”고 꼬집었다.

이에 이 총재는 “25bp 올리겠다는 포워드 가이던스에는 전제조건이 있었다. 7, 8월에도 9월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 결정을 보고 페이스를 조절하겠다고 말했다. 연준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다는 말도 했었다”면서 “연준 결정 자체가 놀라운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연준이) 터미널 금리(최종 금리)를 1%p 넘게 올리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같은 당 홍성국 의원은 금통위의 다양성 결여를 지적하며 “그렇다보니까 포워드 가이던스는 연준에서 듣는 것이 나은 것”이라며 “국가별로 차이가 있는데, 계속 연준이 어떻다고 한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단일 변수지만, 우리나라는 변수가 수십가지다. 10월 4일 호주가 0.25%p 올렸다. 앞으로는 차별화 국면”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지속적인 강달러 기조로 인한 외환보유고 감소 우려와 함께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에 대한 논쟁도 이어졌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거 금리 연적 시기가 3번 있었는데, (한은은) 그에 대한 분석은 근거로 적어도 1%p 수준에서는 견딜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너무 낙관적”이라면서 “지금 유동성 위기는 아니나 대외적 변수이기 때문에 무역수지가 6개월 연속 적자고, 경상수지도 적자다. 국내 문제가 대외적 변수와 결합될 때 환율·유동성 방어에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외환보유고가 2021년 10월 기준 벌써 500억달러 줄었고, 최근 4분기 동안 외환 순거래에서도 370억달러 정도 감소했다”며 “이런 전반적인 지표가 적정 외환보유고 관리의 중요한 변수인데, 총재의 메시지는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들린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적정 외환보유액 비율은 80~150%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10% 조금 밑에 있다. 이 기준은 기본적으로 소규모 신흥국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며 “IMF 내에서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최근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 총재는 “한미 통화스와프는 경제주채들의 심리 안정에 도움이 된다”면서 “통화스와프 결정은 연준이 하는 것이고, 연준과 많은 정보를 교환하고 논의하고 있다. 기본적인 전제조건은 글로벌 달러 유동성이 위축되는 상황이 와야 하기 때문에 적절한 때 심도 있게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 달러화 강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환율 안정 효과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 안정된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부연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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