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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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최악의 조합’이 우리 경제·금융시장을 덮치면서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그림자가 점검 짙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엔데믹으로 억눌렸던 수요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지만,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글로벌 공급망 차질은 여전하다. 이 때문에 치솟는 물가를 억제하기 위해 주요국은 통화긴축 속도를 높이고 있고, 이로 인해 빠르게 상승하는 금리는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켜 경기 회복세를 제한하는 요인이 된다.

특히, 미국의 통화긴축 가속화와 이 과정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면서 달러화 강세로 인한 환율 변동성은 앞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은 1300원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1300원 찍은 원·달러 환율…파월 “금리 인상 과정서 경기침체 올 수도”

지난 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303.5원까지 치솟았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선을 돌파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이날 종가는 2009년 7월 13일(1315원) 이후 12년 11개월 만에 1300원대인 1301.8원에 마감했다.

환율 급등의 영향으로 코스피 시장은 연중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인보다 28.49p(1.22%) 내린 2314.32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2020년 11월 2일(2300.16) 이후 1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것이다. 코스닥 역시 32.58p(4.36%) 하락하며 714.38에 장을 마감했다. 이날 종가는 2020년 6월 15일(693.15) 이후 2년여 만에 최저치다.

이날 환율이 급등한 것은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의장이 경기침체 가능성을 언급하자 안전자산인 달러의 가치가 상승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파월 의장은 22일(현지시각)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준은 14~15일(현지시각) 열린 FOMC 정례회의에서 ‘자이언트 스텝’에 나서는 등 최근 통화긴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파월 의장이 3월 물가 고점론(8.3%)을 제기했고, 연준이 5월 FOMC에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1년 만에 최고인 전년동월대비 8.6%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미 연준이 두 달 연속으로 큰 폭의 금리 인상을 단행했지만, 물가 상승률이 꺾일지는 미지수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의 영향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글로벌 공급망 차질은 여전하다. 관련해서 유럽연합의 러시아산 석유 수입 제한 등으로 수급 차질이 우려됨에 따라 국제유가는 6월 들어 120달러 수준으로 올랐다.

파월 의장은 또 6월 FOMC 이후 기자회견에서 “물가 상승률이 너무 높다. 계속되는 금리 인상이 적절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7월 FOMC에서도 추가적인 빅스텝 또는 자이언트 스텝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결국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고물가와 미국의 통화긴축 가속화 및 경기침체 우려에 따른 달러화 가치 상승에 따른 고환율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고환율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고환율은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는 것으로, 지난 16일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발표한 5월 수출입물가지수에 따르면 5월 수입물가지수는 전년동월대비 36.3% 상승했고, 23일 발표된 5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전년동월대비 9.7% 올랐다. 이는 곧 상품을 수입하고 생산하는 데 돈이 더 들었다는 말이고, 종국에는 가격 상승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실제로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동월대비 5.4%로, 13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자이언트 스텝’ 뛴 美·‘6% 목전’ 물가에 ‘빅스텝’ 고민 깊어지는 韓銀

이에 한은은 물가 중심의 통화정책 운용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1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현재와 같이 물가 오름세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국면에서는 가파른 물가 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6월과 7월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 상승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일각에서는 6%대 상승률을 전망하기도 한다.

이에 시장에서는 한은이 7월 통화정책방향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을 단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물가 상승률이 높고, 미국 등 주요국이 통화긴축에 속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가 상승률이 잡힐 때까지 마냥 금리를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금리가 올라가면 가계와 기업의 이자부담이 늘어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고, 이는 경제활력 저하와 일자리 감소로 이어져 결국에는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4월 전산업 생산지수는 전월대비 0.7% 감소했고, 소비 동향을 나타내는 소매판매지수는 같은 기간 0.2% 줄었다. 투자는 설비투자가 7.5% 감소하면서 석 달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세 지표가 동시에 감소한 것은 2020년 2월 이후 26개월 만이다. 특히, 우리나라 전체 가계대출 중 70%가량이 변동금리인 만큼 금리 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전월대비 0.3p 하락하며 10개월 연속 하락세를 나타냈다.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향후 경기변동을 예측하는 것으로, 앞으로 경기가 안 좋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앞서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0%에서 2.7%로 0.3%p 하향 조정했고, 정부는 3.1%에서 2.6%로 0.5%p 낮췄다.

◆‘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미 진입 지적도

미국의 금리 인상 및 그로 인한 경기침체 우려에 따른 고환율과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및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인한 고물가, 이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 등이 겹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관련해서 세계은행은 7일(현지시각)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월 전망(4.1%)대비 1.2%p 낮춘 2.9%로 제시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커졌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국제유가 등 에너지 가격을 올려 관련 상품 가격 및 비용 증가를 야기했고,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은 선진국의 통화긴축정책을 불러와 이자비용 증가에 따른 개발도상국의 재정부담 증가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세계은행은 “세계 경제가 미약한 성장과 높은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하는 시기로 접어들 수 있다. 이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높인다”며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상당하고,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에 불안정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리나라 경제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이 진입했다는 지적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이 결합된 스태그플레이션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며 “전형적인 공급비용 상승충격이 유발한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에너지 공급가격 상승이 비용 충격으로 강하게 작용했고,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확대된 유동성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켜 물가 상승 압력을 높였다는 설명이다.

성 교수는 특히 “미국의 금리 인상과 그에 대응하는 한국의 금리 인상 압력은 경기 부진을 유도해 스태그플레이션 압력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코로나19 이전 비교적 양호한 경기환경이었기 때문에 유동성이 회수돼도 양호나 경기환경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있는 반면, 한국은 노동비용 상승 충격으로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코로나19를 맞았다는 것이다. 그는 “유동성이 회수되는 경우 노동비용 충격에 노출됐던 코로나19 이전의 국내 경기 부진 상황이 베이스라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요금 인상 최소화·금융시장 모니터링 강화 등 정부, 정책수단 총동원

정부는 이같은 경제상황을 ‘복합위기’로 규정하고, 금융시장 리스크 확산 방지 및 실물경제에 대한 대응에 가용한 정책수단을 집중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금융·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지난 15일 국고채 바이백 규모를 2조원에서 3조원으로 확대했고, 19일에는 민생 물가안정을 위해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을 최소화하는 한편, 유류비 절감을 위해 유류세를 법정 최대한도인 37%까지 인하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금융시장 변동성 및 리스크 확대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비상대응 점검 체계를 확대·운영하고, 금융사의 부실위험을 막기 위해 선제적인 자금지원 제도 마련을 추진하기로 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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