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과 더불어민주당이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결정한 가운데, 수수료 인하 시 신용카드 결제 거부 등 총파업 수준의 고강도 투쟁을 예고했던 카드사노조가 총파업을 유예하기로 했다.

당정이 수수료 인하 결정과 함께 노조가 요구했던 제도개선을 위한 TF를 구성하고, 사실상 카드업을 영위하면서도 관련 규제는 받지 않는 빅테크·핀테크와의 규제차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카드 수수료 인하 결정, 카드사·노동사 희생양 삼은 ‘정책 참사’”

27일 카드사노조협의회와 전국사무금웅서비스노조, 전국금융산업노조(이하 카드노조)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카드 수수료 재산정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카드노조는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 폐지와 제도개선을 위한 노사정 협의체 구성, 빅테크·핀테크 업체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카드 수수료 인하 시 총파업 수준의 강력한 투쟁을 예고한 바 있다.

적격비용은 카드사의 ▲자금조달 비용 ▲위험관리 비용 ▲일반관리 비용 ▲VAN 수수료 ▲마케팅 비용 등 원가를 토대로 산정된다.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은 2012년 개정된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3년마다 이뤄지는데, 이때 새로 산정한 적격비용을 바탕으로 가맹점 수수료 인하 여력을 판단한다.

앞서 당정은 지난 23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영세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고려해 영세 가맹점의 우대 수수료율을 낮췄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연매출 3억원 이하의 영세 가맹점의 카드 수수료율은 0.8%에서 0.5%로 0.3%p 낮아졌고, 연매출 3억~5억원 구간 가맹점은 1.3%에서 1.1%, 5억~10억원 구간은 1.4%에서 1.25%, 10억~30억원 구간은 1.6%에서 1.5%로 각각 0.2%p, 0.15%p, 0.1%p 인하됐다.

금융당국은 이번 결정으로 연매출 3억원 이하 영세 가맹점 220만곳(전체 가맹점의 75%)을 중심으로 수수료 부담이 40%(57만5000원) 줄어들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추가로 줄어드는 수수료는 총 4700억원이고, 최근 5년간 누적으로는 연간 2조1000억원이 줄어들게 됐다.

이번 결정에 대해 카드노조는 대선이라는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자영업자의 분노에 대한 실질적인 손실보상 대신 카드사와 카드 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정책 참사’라고 비판했다.

카드노조는 “카드 수수료 관련 당정협의 결과는 금융당국이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엉뚱한 곳의 팔을 비튼 ‘정책 참사’”라며 “결국 피해는 소비자와 노동자가 감당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카드노조에 따르면 이미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받는 96%의 가맹점에서 매출이 발생할수록 카드사의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이고, 92%의 가맹점의 경우 부가가치 세액공제제도를 통해 오히려 세금을 환급받거나 카드 수수료의 실질적인 부담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수수료 인하로 카드사의 수익성이 더 나빠지게 됐으니, 카드사들이 수익성 확보를 위해 소비자 혜택을 줄이거나 인력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카드노조는 “영세상공인에게도 이번 조치가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 코로나19로 인한 영업제한조치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필요한 정책은 제대로 된 손실보상조치지, 카드 수수료 인하가 아니다”면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책은 빅테크나 배달앱 수수료 상한선 규제인데, 엉뚱하게 생색내기식 정책으로 땜질만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여신금융협회가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카드업계의 가맹점 수수료 부문 영업이익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317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했다”면서 “영세상인들의 카드 수수료에 대한 실질적 부담 효과가 0%인 상황에서 추가로 카드 수수료를 인하한다는 것은 카드 노동자들에 대한 인건비 축소와 투자 억제, 마케팅 비용 축소 등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부메랑이 돼 다시 원가에 반영되는 악순환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조 위원장은 “연매출 3억원·카드 매출 2억원인 영세 가맹점은 이번 결정 이전에도 가맹점 수수료보다 더 큰 매출 세액공제로 115만원의 이익을 내고 있었는데, 이번 조치로 172만5000원으로 이익이 커졌다”며 “57만5000원의 이익은 카드사로부터 자영업자에게 이전된 것이다. 대체 민간 금융사의 이익을 강탈하는 것이 시장 질서에 부합하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재진 사무금융노조 위원장은 “0.5%로 줄어드는 수수료 인하를 엄청난 도움이 되는 양 호도하는 것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4700억원이라는 돈으로 카드사들은 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런 상황에서 카드사에 더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지적했다.

◆총파업은 유예…“약속 미이행 시 총파업 행동”

카드노조는 다만, 카드 수수료 인하 시 신용카드 결제 거부 등 총파업 수준의 고강도 투쟁을 단행하겠다는 입장에서 한발 물러났다. 당정이 제도개선TF 구성 등 카드노조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이고, 빅테크·핀테크 업체들과의 규제차익 문제 해소, 카드사들이 마이데이터 및 종합 페이먼트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겸영·부수업무 범위 확대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카드노조는 “23일 당정협의 결과는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담고 있다. 제도개선TF의 의제는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의 폐지’, ‘신용판매 부문에서의 경쟁력 확보’가 포함돼야 하고, TF 구성에 있어서도 사측 만이 아닌 ‘카드사노조협의회 대표자’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빅테크·핀테크 업체들과의 규제차익 해소와 신사업 진출 및 수익원 발굴을 통한 성장 지원 이행이 담보돼야 한다”며 “이를 조건부로 카드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잠정 유예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노조의 요구와 참여를 배제하거나 약속들이 이행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유예된 총파업은 현실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선재 기자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