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농협중앙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 사진=연합뉴스

‘농촌대통령’이라 불리는 농협조합장들의 지위를 이용한 비리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들을 감시해야 할 농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농협중앙회)가 수습은커녕 방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전임 농협중앙회장인 김병원 전 회장은 ▲성추문 ▲갑질 ▲도덕적 해이 등 조합장의 3대 적폐에 강력 대응한다고 한 반면, 현 회장인 이성희 회장은 이런 움직임조차 찾아볼 수 없다.

10일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이하 전협노)에 따르면 지난 4월 경북 새의성농협 조합장 A씨는 여 조합원 B씨를 성추행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오는 16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원은 A씨의 강제추행 혐의에 대한 형사재판을 진행할 예정이다.

사건 당시 A씨는 B씨에 집에 가자며 운전을 지시 후 범죄를 저질렀다. 사건 후에도 B씨는 업무상 직·간접적으로 A씨를 대면해야 하는 상황에 방치되는 등 계속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A씨는 B씨에게 사과는커녕 지난 9월 사건에 대한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가는 B씨의 차량을 추격하는 등 위협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에 대한 제재는 사건 발생 7개월 만에 이뤄졌다. 지난 10월 25일 대의원총회에서 A씨의 해임안이 가결됐다. 이에 새의성농협은 이달 8일 조합원 투표를 거쳐 A씨 해임안을 확정할 예정이었지만, 지난 1일 A씨가 자진 사퇴하면서 무산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조합장을 관리‧감독해야 할 농협중앙회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임안 가결과 조합장의 사퇴도 조합원들의 지지로 얻어낸 것이다.

지역 조합장의 비위(非違)에 대한 농협중앙회의 소극적인 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1월 5일 전북농협에서 열린 '전주농협 갑질 사건 규탄 집회'에서 진석 전국사무금융노조 전주농협분회 분회장(왼쪽)과  서진호 협동조합특별위원회 위원장(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전국사무금융노조
지난 11월 5일 전북농협에서 열린 '전주농협 갑질 사건 규탄 집회'에서 진석 전국사무금융노조 전주농협분회 분회장(왼쪽)과 서진호 협동조합특별위원회 위원장(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전국사무금융노조

지난 6월 전주농협의 직원 C씨는 농약 구매물량과 대금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8억1000여만원을 횡령했다. 전주농협은 이를 공론화하지 않고, ‘자율모금운동’을 통해 전 직원에게 약 3억원가량 손실분을 갹출했는데,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전주농협 분회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농협중앙회는 자신들의 관할이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또한 농협중앙회 감사국에서는 해당 사건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명으로 실시했다. 

노조 관계자는 “농협중앙회에서는 이런 사례가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감사국에서 사건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지만, 이 또한 실명으로 실시하는 등 압박을 줬다”며 “실명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인원의 70%가 자율로 모금했다고 답했지만, 전주농협 분회에서 전직원 대상으로 실시한 무기명 설문조사에서는 92%가 이번 갹출 건에 대해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감사국의 설문조사로 인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이번 상황이 갑질이 아닌 자율적인 모금운동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장이나 조합의 비위에 대해 농협중앙회가 부실하게 대응하는 배경에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조합원 대상으로 4년마다 치러지는 전국동시조합장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조합장은 그 지역 조합을 대표해 각종 경제사업과 예금과 대출 등 신용사업을 주도하고, 업무 집행 및 인사권한도 가진다. 그런데 지역 농협 사업장 규모는 대부분 50인 미만으로 작다. 따라서 개인이 조직 내 갑질과 폭행으로 인한 피해를 공개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농협중앙회가 지역 농협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면 그나마 사정이 좀 낫겠지만, 농협중앙회장은 각 지역 농협 조합장의 투표로 선출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양 당사자 간에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다.

전협노 관계자는 “농협중앙회로부터 조합장이라는 권력이 제대로 견제받고 있지 않아 지위에 의한 폭력, 비리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며 “지역 농협 노동자들은 제한된 공간 속에서 자신이 받은 피해를 쉽게 공개하지 못한다. 이를 극복하고 공론화하더라도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관련해서 김병원 전 농협중앙회 회장은 2019년 조합장의 ▲성추문 ▲갑질 ▲도덕적 해이 등을 ‘3대 청산대상’으로 규정하고, 적발 시 모든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강력한 대응을 내세운 바 있다. 하지만 이같은 사건에 대한 농협중앙회의 대응을 봤을 때 현 이성희 회장 체제의 농협중앙회에서는 무명무실해졌다.

한편, 이에 대해 농협중앙회에 입장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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