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필자는 금융소비자원에서 보험가입자 피해구제 상담을 하면서 현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법 사례를 수시 접하고 있는데, 화가 나고 마음 상하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의 잘못도 있지만, 당초부터 보험사(GA, 보험설계사 포함)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워 의도적으로 속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많은 소비자들이 피해를 당해 하소연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지난해에도 금융 민원 중에서 보험 민원이 가장 많이 발생하여 금감원 금융 민원(9만334건)의 59%가 보험 민원(손보 35.6%, 생보 23.4%)이었다. 소비자들이 동일한 피해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최근에 자주 발생된 불법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한다.

◆ 종신보험을 저축·연금으로 변칙 판매

종신보험은 사망을 보장하는 보장성보험인데, 본말을 전도하여 저축이나 연금으로 팔고 있다.

목돈 마련이 필요한 청년은 물론 종신보험이 불필요한 비혼자에게도 판매한다. 이것도 모자라 경찰에게 저축으로 속여 팔았다가 대량 민원이 발생하였고, 약사들에게 지원금 제공을 약속하며 저축으로 판매하였다. 자유입출금 통장이라며 판매하고 “종잣돈 1억 만들기”라며 판매하기도 한다. 그러나 종신보험은 저축·연금 목적에 부적합하다. 당초부터 보장성보험이고 사업비를 30~35%로 가장 많이 떼어 원금에 도달하려면 25~30년 걸리고 중도 해지 시 원금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목적에 적합한 보험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가입해야 한다.

◆ 공시이율 뻥튀기 판매

보험사들은 공시이율이 은행 이율보다 2~3배 높다며 반복 강조하지만, 사업비와 보장보험료를 뗀 나머지 저축보험료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가입 후 공시이율이 떨어지면 보험금도 낮아진다는 사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입자가 받을 수 있는 수익은 높지 않다. 이를 모르는 소비자들은 낸 보험료가 모두가 공시이율로 적용되는 것처럼 착각한다. 상품 가입 시 높은 금리에만 현혹될 것이 아니라 보험료에서 제외되는 비용(사업비)을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 “초저금리에 외화보험 인기”라며 달러보험 판매

달러보험은 상대적 안전자산인 달러에 투자하여 안정성, 환차익 기대, 장기 유지 시 이자수익 비과세 혜택 등 장점이 있다. 그러나 판매·관리 수수료가 높고 환전수수료를 떼므로 수익률이 낮아진다. 특히, 보험기간 중 환율이 상승하면 보험료 납입 부담이 커지고, 보험금 수령 시 환율이 하락하면 환차손이 생긴다. 금감원이 달러보험은 환테크 상품이 아니라고 밝혔고, 소비자 경보도 발령했지만, 보험사들은 “초저금리에 외화보험 인기 절정”, “고이율에 환차익 까지”라며 여전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 유병자보험을 간편심사보험이라며 건강한 자에게 판매

신문이나 TV 홈쇼핑에서 간편심사보험도 모자라 최근에는 “질문 하나로 가입할 수 있다”며 초간편심사보험을 경쟁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상담 완료 시 사은품 드립니다”, “지금 당장 전화하세요”라며 즉흥 가입을 독려하지만, 일반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유병자, 고령층이 가입하는 보험이다. “누구나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다”는 것만 미사여구로 강조하므로 건강한 사람이 가입하면 보험료 바가지를 쓰게 된다. 명칭부터 ‘유병자보험’으로 고치고, 건강한 한 사람이 가입할 보험이 아니며 일반보험에 비해 보험료가 2배 정도 비싸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 어린이보험을 어른이보험으로 판매

통상 15세까지 가입하는 어린이보험을 30세까지 가입할 수 있도록 변경하여 ‘어른이보험’으로 판매하고 있다. 일반 성인들이 가입하는 건강보험 보다 보험료가 저렴하다는 이유다. 그 결과 지난해 20~30대 가입자가 전년 보다 약 6배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어린이에게 팔아야 할 보험을 어른들에게 판매한다는 발상부터 잘못됐고, 이를 위해 ‘어른이보험’이란 신조어까지 만든 것도 잘못됐다. 아무리 돈벌이가 중하고 실적 달성도 좋지만 어린이보험을 “서른살 어른도 받아 준다”고 광고하며 호객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일도 헤아리지 못하고 보험을 판매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법규 이전에 기본 양심과 상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무·저해지 보험을 저축연금으로 속여 판매

무해지 환급형보험은 표준형 보다 보험료가 20% 저렴하고 보험료를 완납하면 환급금이 납입 보험료 보다 높다. 이에 “낸 보험료를 전부 돌려주고 이자로 사망보험금을 준다”며 보장성 보험을 장기 적금으로 변칙 판매하였다. 그러나 보험료 납입기간 중에는 해지하면 환급금이 없고, 대출 받을 수 없으며 예금자 보호도 안된다. 보험료 납입이 완료될 때까지 유지되는 계약이 드물 것이므로 장기 저축도 어렵다. 금감원이 소비자 경보를 발령했고, 금융위가 완납 후 환급률을 낮췄는데, 많은 보험사들이 “무해지보험 마지막 기회!”라며 절판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 운전자보험을 공포마케팅으로 판매

운전자보험은 손해율이 낮아 돈벌이에 유리하고 자동차보험과 연계하여 판매가 수월하다. 특히, ‘민식이법’ 시행(2020.3.25)으로 어린이 보호구역(스쿨 존) 사고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자 “공포의 민식이법, 운전자보험 필수”라며 공포(불안)마케팅을 벌였고 소비자들이 서둘러 가입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법률 비용 등 보험금을 많이 받기 위해 여러 상품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며, 보험금은 실제 지급한 액수까지만 보장받을 수 있고, 법률비용과 관련한 보상만 받길 원하면 운전자보험 대신 자동차보험 법률비용 지원 특약을 고려해 보라고 설명했다. 운전자보험 보험료는 연 3만~24만원인데, 자동차보험의 법률비용 특약은 평균 연 2만원(1만~4만원) 이기 때문이다.

◆ 일찍 가입할수록 보험료가 저렴하다고?

결혼자금, 전세자금, 사업자금 등 단기 목돈 마련이 필요한 사회초년생들에게 보장성보험을 저축이라고 속여 팔고, 심지어 간병보험, 치매보험을 가입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이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일찍 가입할수록 보험료가 저렴하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보험을 서둘러 가입해서 보험사 먹여 살리라고 한 것이 아닌지, 보험사 배를 채우려고 고객에게 희생을 강요한 것이 아닌지 따져야 한다. 보험은 필요할 때 가입하는 것이지 미리 가입하는 것이 아니다. 중도 해지가 더 많기 때문이다.

◆ 변액보험도 여전히 불완전판매 발생

최근에 “증시 호황에 변액보험 인기”라며 판매 확대에 나섰는데, 불완전판매가 자주 발생한다. 변액보험은 장기 유지가 필수이므로 단기 해지할 경우 쳐다보지 말아야 하는데, 미사여구에 많은 소비자들이 현혹되어 서둘러 청약서에 싸인한다. 변액의 뜻을 모르고 내는 보험료에서 사업비가 얼마나 빠지는지 잘 모르며 펀드 변경도 잘 모른다. 나중에 돈이 궁하면 서둘러 해지해서 또다시 손실을 자초한 후 보험사와 보험설계사에게 욕을 한다.

◆ 보험료 줄인다는 보험 리모델링 권유해 피해

최근에 TV홈쇼핑이나 경제TV, 유튜브 등에서 ‘보험 재설계’, ‘보험 리모델링’을 주제로 방송하고 있는데, ‘보장은 늘리고 보험료는 줄이고’를 내 세운다. 보험 리모델링 사례를 소개한 후 화면으로 전화번호를 보여 주며 상담 받을 것을 제안(권유)하고 있는데 조심해야 한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아까운 보험료만 날려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면 고객에게 약(藥)이 되지만, 일부는 무리하게 승환계약(보험 갈아타기)으로 진행되어 소비자에게 독(毒)이 된다. 싼 보험료에만 매달려 진행하여 이중, 삼중으로 피해를 입는 것이다.

보험은 저축이 아니라 위험을 보장하는 상품이고, 개인별 특성(성별, 연령, 직업, 소득, 병력 및 가족력 등)에 따라 맞춤형으로 가입하는 상품이다. 개인별 특성이 다르므로 직면한 위험도 다르고 그 결과 가입할 보험도 당연히 달라야 한다. 그러므로 중도 해지할 보험이면 처음부터 가입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고, 보험을 가입하려면 나에게 꼭 필요하고 목적에 맞는 보험을 가입해야 한다. 보장내용과 보장 제외사항을 명확히 알고, 원금 손실, 사업비, 총 납입보험료, 피해구제 방법도 알고 가입해야 한다.

만약, 보험을 잘못 가입했다고 판단되면 약관에 정한 기일 내에 청약철회를 신청하거나 계약취소를 신청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모르고 신청기간이 훌쩍 지나 피해 구제를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거절되는 경우가 많다. 보험사들은 자필 사인의 청약서와 설계사가 시킨 대로 거짓 답변한 콜센터 모니터링의 녹취록을 증거라며 면피용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자가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미국 속담에 “한 번 속으면 속인 자가 잘못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는 자가 문제”라는 말이 있다. 소비자 현혹하는 말에 두 번 속지 말아야 한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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