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사 위촉조건 채우려 ‘환승계약’ 및 ‘보험료 대납’ 등 무리수

▲ 생명보험협회가 입주해 있는 한국기독교회관 건물.
[파이낸셜투데이=신현호 기자] 생·손보사의 각종 보험 상품을 비교한 후 가입할 수 있는 일부 독립보험대리점(GA)이 보험설계사들에게 무리한 영업행위를 강요해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일부 GA는 보험설계사 위촉 조건으로 생명보험협회가 주관하는 생명보험설계사 자격시험을 통과한 후 보험계약 3건 이상을 유치해야만 한다는 단서조항으로 예비보험설계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보험설계사 위촉 조건을 충족한다고 하더라도 2개월 연속 무실적을 기록하면 해촉할 수 있다는 독소조항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연 매출 300억원, 활동 보험설계사만 600여명에 이르는 중견 GA ㅂ사에서 활동하고 있는 보험설계사 A(30·남)씨는 “우리뿐만 아니라 몇몇 GA이 역시 보험설계사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최소 3건의 보험계약을 유치해야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면서 “일을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인맥을 동원한 ‘억지 판매’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A씨는 또 GA소속 보험설계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두려운 것이 ‘무실적’이라고 언급했다. 2개월 연속 실적이 전무하면 강제 해촉을 당한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무리수를 둔 계약이 남발되고 자격유지를 위해 보험료를 대납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이에 대해 “1개월 무실적일 경우 ‘경고’, 2개월 연속 실적이 없으면 ‘해촉’된다”며 “실적이 없으면 해촉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보험료 대납’ 등 무리수를 두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시장도 비수기가 있다. 인맥에도 한계가 있어 한 달에서 두 달 정도는 ‘발’을 넓히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지만 그럴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A씨의 주장에 대해 ㅂ사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ㅂ사 관계자는 “일부 영업점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내부규율은 있지만 본사에서 위촉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는 않다”고 반박했다.

이어 “일부 보험설계사들이 수입이 적어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는 있어도 해촉 규정으로 설계사들을 내몰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억지 판매’…고객만 피해자

GA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변액보험 판매사 자격증을 모두 취득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GA가 생명보험 설계사 자격증 취득 후 영업현장으로 이들을 내몰아, 애꿎은 보험계약자가 피해자로 전락하고 있다.
A씨는 본지와의 통화해서 자신의 무리한 보험영업으로 인해 계약자들이 피해를 입었던 사례를 ‘양심 고백’하듯 털어놨다.

그는 “생명보험자격시험만 통과한 상태였기 때문에 손해보험사 상품은 판매할 수 없었다”면서 “저렴한 보험료와 풍부한 보장 등을 꼼꼼히 살펴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위촉 조건 때문에 양심이 찔렸지만 ‘억지 판매’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보험에 가입돼 있는 고객들에게는 더 저렴한 보험으로 갈아 탈 수 있게 해주겠다며 보장 내용을 축소한 ‘환승 계약’도 권유했다”면서 “뒤늦게 보장이 축소된 사실을 확인한 고객들로부터 해지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고 후회했다.

덩치 커진 GA시장, 관리감독 강화 필요

2000년대 초반 국내 보험시장에 첫 선을 보인 GA는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사의 다양한 보험 상품을 백화점식으로 살펴보고 가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어필하며 시장 도입 10여년 만에 업체수 4500여개(작년 6월 기준), 활동 사업자수 1만여명으로 큰 폭의 성장세를 이뤘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GA를 통한 생명보험 가입 비중은 약 20%, 손해보험은 4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영업력이 약한 중소보험사의 경우 GA 의존도가 높아 입김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GA 소속 보험설계사들의 무리한 보험영업행위가 계속될 경우, 전체 보험업계 이미지 훼손은 물론 보험가입자 피해 확산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생보업계의 한 관계자는 “위촉 및 해촉 조건은 보험설계사들에게 무리한 영업행위를 강요하는 독소조항”이라면서 “결국 피해는 보험가입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관리감독이 강화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관리감독당국인 금융감독원은 일부 GA의 무리한 보험계약 유치와 관련, 사실관계 확인 등 조사 착수 의지를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위촉 및 해촉 사유는 처음 듣는 얘기”라면서 “조사를 해봐야 알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어 “보험료 대납은 엄연한 불법이다. 대납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는지 검사해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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