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세상은 늘 변하고 실제로 매 순간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당초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보험도 마찬가지다. 보험 가입 후 시간이 경과하면 가정의 수입(소득)이 달라지고 가족 구성원이 변동하게 된다. 장기적으로 물가상승에 따른 실질가치 하락으로 기존 보험이 내 실정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현재 및 장래의 상황에 맞게 불필요하거나 중복된 보장을 줄이고 부족한 보장을 보완해서 보험설계를 다시 해야 하는데, 이를 ‘보험 리모델링’이라 한다.

보험사(보험대리점, 보험설계사 포함)들은 신계약을 체결해야 수입이 발생되는 구조인데, 신규고객이나 신시장을 발굴하기 보다 기존 가입자들에게 접근하여 보험 리모델링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TV홈쇼핑이나 경제TV 등에서 ‘보험 재설계’, ‘보험 리모델링’을 주제로 종종 방송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 같이 ‘보장은 늘리고 보험료는 줄이고’를 내세우며 고객이 신청한 보험 리모델링 사례를 소개한 후 방송에 참석한 여러 패널들이 기존 상품을 해지하고 대체할 새로운 상품을 설명해 준다. 그러면서 화면으로 전화번호를 보여 주며 상담 받을 것을 제안(권유)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장기 불황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영업 중단 등으로 수입이 단절, 감소되어 보험료 내기가 버거워진 소비자들은 보험 리모델링이 솔깃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의 보험 리모델링 제안에 현혹되지 말고 신중해야 한다. 고객에게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일부는 돈벌이를 위해 무리하게 권유, 진행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즉, 소비자가 보험 리모델링을 올바로 이해하고 활용하면 도움이 되겠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리모델링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아까운 보험료만 날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보험을 리모델링해서 손해 보지 않으려면 반드시 따져야 할 것이 있는데, 다음 7가지가 그것이다. 소비자 스스로 충분히 검토하고 비교해서 유리한 경우에만 보험 리모델링을 진행해야 한다.

첫째, 보험 리모델링이 보험계약자의 현재 및 장래의 상황(연령, 수입, 직업, 가족력, 가족수 등)에 맞게 진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즉, 현재 직면하거나 앞으로 직면하게 될 위험에 대비하도록 보험계약을 재구성해야 하는데, 이를 간과한 채 오로지 보험료를 낮추는 일에만 집중하면 낭패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험료가 비싼 종신보험을 가입해서 오랫동안 유지해 왔는데, 이를 해지하고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건강보험 등에 가입한 경우 2년 안에 사망하면 사망보험금을 못 받는다.

둘째, 중복 보장을 줄인다며 기존 계약을 해지하면 해약 손실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계약을 가입 후 조기 해지하면 해지환급금이 없거나 있더라도 소액에 불과하여 원금 손실이 불가피하다. 보험을 가입해서 약관에 정한 사고를 보장 받았지만,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대부분의 계약자들은 이미 납입한 보험료를 허공에 날렸다고 생각하게 된다.

셋째, 부족한 보장을 채우기 위해 대체 상품을 새로 가입하면 사업비를 추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계약자가 새로 납입하는 보험료에는 사업비(보험사 경비로 이 중 보험설계사 판매수수료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함)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는데, 보험사들은 보장성보험의 사업비를 계약자에게 알려주지 않으므로 이를 모른 채 권유 받은 대로 무작정 가입하면 사업비가 가장 많은 보험을 가입해서 보험료 바가지를 쓰게 된다. 소비자 무지를 악용하는 의도적인 상술이다.

소비자들이 TV홈쇼핑이나 경제TV 등에서 하는 방송을 보다가 자막에 표시된 곳으로 전화하면 방송 출연자가 아니라 법인보험대리점(GA) 직원이 상담에 응하는데, 이들은 십중팔구로 보험료 인하를 내세우며 기존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보험 가입을 권유한다. 새로운 보험을 가입시켜야 판매수수료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굳이 보험 리모델링을 내세워 권유하는 것은 보험상품 판매로 수수료를 챙기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이다. 소비자는 기존 보험 해지로 사업비 를 손해 봤는데, 새로운 보험을 가입해서 사업비를 추가 부담해야 하므로 손해를 이중으로 감수 해야 한다. 물론 많은 소비자들은 사업비의 존재를 모르고 이중 부담도 잘른다.

넷째, 과거에 가입한 보험은 대개 보장내용이 좋고 예정이율이 높아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데, 섣불리 새로운 상품으로 갈아타면 손해이기 때문이다. 대체 상품은 현재 판매중인 상품이므로 같은 종류의 상품이더라도 과거 상품 보다 보장이 축소된 경우가 많고 예정이율이 낮아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비싸다. 대표적 사례로 과거에 가입한 암보험은 암 진단을 받으면 암 종류 불문하고 동일한 보험금을 받을 수 있지만, 현재 판매중인 암보험은 고액암·일반암·소액암 등으로 구분되어 보험금이 오히려 축소되었고 예외조항도 많아졌다. 여기에 현재 상품은 보험료가 과거 상품보다 크게 비싸다.

다섯째, 생명보험과 건강보험은 연령이 증가할수록 보험료가 크게 비싸지고 재가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 보험 가입 후 입원, 수술, 치료 등으로 보험금을 수령한 사실이 있거나 병력이 확인된 경우 보험사가 보험 가입을 거절하므로 새로운 상품을 가입할 수 없으며, 굳이 가입하려면 특정 부담보 조건, 보험료 할증, 보험금 삭감 등으로 가입해야 한다.

여섯째, 새로운 보험을 가입하면 면책기간을 새로 적용 받아야 하므로 가입 초기 일정기간은 보장이 불가피하게 단절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암보험은 가입 후 90일이 지나야 보장이 개시되므로 그 이전에 암으로 진단되거나 치료 받을 경우 보장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섣불리 리모델링을 진행하면 보험료를 내더라도 일정 기간 보장 받을 수 없다.

일곱째, 기존의 비갱신형 보험을 해지하고 새로운 상품을 갱신형으로 가입하면 보험료를 당장 크게 낮출 수 있지만, 멀지 않아 해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손의료보험에서 이미 수차 경험하였듯이 갱신형보험은 갱신할 때마다 보험료가 크게 인상되어 지속 가능한 보험이 아니다. 가입할 때는 보험료가 저렴해서 좋지만 가입 후 갱신보험료가 급격 인상되므로 갈수록 부담되고, 특히 고령층은 계속 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하여 보장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보장 받지 못하게 된다. 또한 매월 내는 보험료 부담은 크게 줄겠지만 총 보험료 부담은 비갱신형 보다 크게 증가하게 된다.

갱신형 보험의 함정이고 단점이며 폐해다.

이상을 종합하면 과거에 가입한 보험은 보장의 폭이 넓고, 예정이율이 높아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므로 보험사들의 보험 리모델링 제안에 휘둘려 섣불리 해지하지 말고 유지가 바람직하다. 다만, 연령 증가로 인해 보장의 필요성이 현저하게 감소한 경우 계약 해지가 아니라 계약 변경이 우선이다. ‘보험금 감액’을 신청하여 보험료를 낮추면 된다. 또한 보험료가 부담되어 해지를 고려하는 경우에도 보장기간 단축(30년 만기 → 20년 만기), 보장기간과 지급조건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보장금액만 낮추는 ‘감액 완납’, 보험료 납입기간 연장(10년납 → 20년납)도 있다. 또한, 해약환급금 범위 안에서 보험계약대출로 보험료를 납부하는 ‘자동대출납입제도’도 있고, 일정 기간 보험료를 납입하지 않고 계약을 유지하는 ‘보험료 납입유예제도’도 있으니 이를 적극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보험은 위험(질병, 재해)을 보장 받기 위한 것이고,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가입하는 것이므로 상황에 맞게 꼭 필요한 보험을 목적에 맞게 적정 수준으로 가입해서 유지해야 한다. 보험 판매자들의 미사여구의 말(현재 납입하는 보험료가 비싸니 부담 적은 상품으로 갈아타라)과 의도에 휘둘리지 말고 소비자가 직접 하나하나 챙기고 살펴야 한다. 혹 떼려다 혹 붙이는 우를 범하지 말자. 최종 결정은 각자의 몫이므로 소비자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www.ftoday.co.kr

파이낸셜투데이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