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변인호 기자
사진=변인호 기자

전 세계가 주목했던 게임 ‘사이버펑크 2077(이하 사펑)’이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고 있다. 스팀 역대 최대 동시접속자 100만명을 돌파하는 등 좋은 기록만 이어졌다면 CD프로젝트 레드(이하 CDPR)에게 좋았겠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끊임없이 새로운 버그가 발굴되고, PS4와 Xbox One에서는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가 불가능할 정도로 실행 문제가 생겼다. 그나마 게임을 플레이해 본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게임 내용에 관한 혹평도 이어졌다.

CDPR은 8년에 걸친 개발기간 동안 마케팅에 심혈을 기울였다. 글로벌 게임쇼에서 공개한 티저영상부터 각종 언론사 인터뷰, 게임플레이 트레일러 등 CDPR이 꿈꾸던 사이버펑크 세상은 차세대 오픈월드라고 지칭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노하우와 기술력이 집약된 결정체였다. 메인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면서 사펑 속 ‘나이트시티’ 안에서 상호작용할 수 있는 게임이라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었다. 당연히 유저들의 기대는 높아져만 갔다. ‘위쳐3’에서 대화 선택지를 통한 상호작용을 이미 겪어봤고, 기존 유명 오픈월드 게임들의 장점을 합친 게임이 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CDPR은 지난해 6월 E3에서 새로운 시네마틱 트레일러를 공개하며 배우 키아누 리브스의 등장도 알렸다. 영화 ‘존윅’으로 주가를 한창 높이고 있던 키아누 리브스가 사펑 세계에 들어온다는 소식에 게이머들은 열광했다. 3회에 걸친 출시 연기 중에도 CDPR은 그래픽카드, 스마트폰 케이스, 소설, 애니메이션, Xbox 스페셜에디션, 신발, 헤드셋, 음료수, 의자, TV, 가방 등 온갖 제품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며 기대감을 한껏 더 끌어올렸다. 심지어 나라별 유명 인플루언서들을 게임 안에 다양한 형태로 추가하고, 이들을 위한 특제 맞춤 패키지와 미리 게임을 플레이해볼 수 있는 특전을 줬다. 국내의 경우 5명의 스트리머를 위한 맞춤형 더빙까지 지원됐다.

하지만 게임이 정식 출시된 이후 뚜껑을 열어보니 CDPR의 말과는 전혀 다른 게임이었다. 우선 사펑은 ‘오픈월드’라고 보기 어려운 게임이었다. 주인공 ‘V’의 출신은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대화 선택지가 생기는 정도에 그쳤고, 신체를 기계 부품으로 개조하는 2077년 세계 속 거대도시 ‘나이트시티’에는 커스터마이징을 변경할 수 있는 미용실이나 성형외과 하나 없었다. 오히려 선형적 구조의 스토리게임이라고 홍보했다면 버그가 좀 많아서 몰입에 방해가 될지언정 ‘사기’ 게임이라는 오명은 얻지 않았을 것이다.

게임을 하면 할수록 아쉬움은 더 커진다. ‘밀리테크’, ‘트라우마팀’ 같이 분명 게임 내 비중이 있을법한 진영들의 분량은 삭제된 티가 여실히 난다. 사이버펑크 2077 보너스 콘텐츠로 제공되는 월페이퍼는 작중 거대 기업들인 ‘아라사카’, ‘킹 타오’, ‘밀리테크’, ‘트라우마팀’, 게임 배경 ‘나이트시티’까지 총 5종으로 분류된다. 배경인 나이트시티를 제외하고 게임 내 거대기업 중 제대로 스토리에 등장하는 건 아라사카뿐이다. 트라우마팀은 튜토리얼에서만 잠깐 등장하고 NPC가 맵에 서 있는 정도며, 밀리테크는 메인퀘 도중 만나는 ‘메레디스 스타우트’와 뭔가 연계될 것처럼 해놓고 로맨스씬 하나 이외에는 더 뭐가 없다. 킹 타오는 적으로 이름만 언급되는 수준이다.

CDPR 주가. 사진=인베스팅닷컴 캡처
CDPR 주가. 사진=인베스팅닷컴 캡처

그나마 한국어 더빙이 이뤄져 스토리와 게임 내 세계에 더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장점이지만, 수많은 버그가 몰입을 깬다. 촉박한 마감에 쫓겨 삭제된 티가 나는 프롤로그 부분에서 주인공의 친구 ‘재키’가 택시 안에서 전달하는 칩은 이후 액트1에서 액트3까지 이어지는 메인 스토리의 핵심인데, 원래 장면은 머리에서 칩을 꺼내서 전달해준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재키가 머리 속에서 권총을 꺼내주는 버그를 겪었다. 이후 스토리도 호불호가 갈릴 뿐 아니라, CDPR이 표방한 오픈월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벤치나 의자에는 퀘스트에서 지시할 때만 앉을 수 있고, 침대도 지정된 곳에서만 누울 수 있다. 각종 의뢰와 경찰임무를 수행하면 쌓이는 명성 개념의 ‘길거리 평판’은 최대 레벨을 달성해도 길거리 평판이 1일 때와 최대 레벨일 때 변화도 없다. 아무리 명성을 쌓아도 NPC들은 여전히 주인공 V에게 서스럼없이 욕을 한다.

콘솔 버전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최적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그래픽도 PC보다 부족한데다가 프레임 드랍이 상당했다. 사펑이 올해 말 출시된 3000번대 그래픽카드와 PS5‧Xbox 시리즈 X/S 등 차세대 콘솔기기가 나오기 전부터 개발을 시작한 만큼 과대광고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출시한 지 열흘도 지나지 않아 소니는 PS 스토어에서 사펑을 삭제하고 전액 환불하기로 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삭제는 하지 않는 대신 제품에 성능 관련 경고를 추가하고 환불하기로 했다.

콘솔버전 대량환불 사태에 CDPR의 주가도 폭락했다. 22일 기준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CDPR의 주가는 지난 4일 주당 443즈워티에서 256즈워티까지 급락했다. 블룸버그는 CDPR 공동 창업자 4명의 주식 손실액이 10억달러(한화 약 1조1080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했고, 뉴욕타임즈는 CDPR이 사펑을 두고 10년 가까이 과장 광고를 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폴란드 게임사인 CDPR이 폴란드 정부로부터 개발비용 일부를 지원받을 정도로 막대한 개발비가 들어갔지만, 결과물이 좋지 않았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CDPR 내부에선 경영진과 개발진 간 분열이 일었고, 바르샤바의 변호사들과 투자자들은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CDPR의 마케팅 능력을 기획‧개발이 따라오지 못했는지 그냥 과장‧과대광고였는지는 외부에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게임이 미완성이라는 부분은 부정하기 어렵다. 게임이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라 더 실망스러운 점도 있다. 이번 사펑 사태로 게임업계에서 스팀 ‘앞서해보기(얼리억세스)’와 OBT 같은 정식 서비스가 유행하면서 미완성 게임을 일단 출시하고 업데이트 및 DLC 같은 추가 패치로 점차 개선해가는 관행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사펑을 반면교사 삼아 이런 관행이 국산 PC‧콘솔용 게임에서는 적용되지 않길 바란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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