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만약, 도둑이 횡행하여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도둑질 형량을 크게 높이겠다고 발표했다면 형량에 대해 도둑들이 왈가왈부하는 일이 옳은 일일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도둑질은 당초부터 불법·부당한 것이고 도둑은 범인이므로 말할 자격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최근에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약칭 금소법) 시행령(안)에 대해 일부 금융사들이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금소법은 글자 그대로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법이다. 금융사들의 불완전판매, 사기 판매를 예방하여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 후 2011년 7월 처음 발의되었는데 논의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작년에 DLF 사태, 라임펀드 사태로 많은 소비자가 피해를 보았고, 은행·증권사들의 설명의무 위반, 적합성 위반, 신청서류 임의 조작 등 불완전·사기 판매가 사실로 판명되면서, 이를 계기로 국회 정무위를 거쳐 본회의 (2020.3.5)에서 통과되었다. 무려 9년 만의 일로, 내년 3월 시행될 예정이다.

금소법은 금융상품 판매 시 설명의무나 부당 권유행위 금지 등 판매행위 규제를 강화하고, 위반한 금융사에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며, 위법계약해지권 등 소비자 권리를 확대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특히 6대 판매규제(△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불공정 영업금지 △부당권유금지 △광고 규제)를 금소법에 통합해서 이를 위반한 금융사를 처벌할 수 있다.

후속 조치로 금융위가 같은 법 시행령(안)을 제정하여 지난 10월 28일 입법 예고하였고, 의견을 수렴해서 확정할 예정이다. (안)에 의하면 적합성 원칙을 위반한 보험설계사는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를 받을 수 있고, 적합성과 적정성 원칙을 제외한 판매 규제를 위반할 경우 위반행위 관련 수입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받을 수 있다. 설명의무를 위반한 법인에 7000만원, 법인이 아닌 자에게 3500만원을 부과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또한 ‘고객 해지권은 계약일로부터 5년, 위법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이내에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시행령(안)에 대해 금융사들의 볼멘소리가 연달아 보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비자 권익 보호라는 근본 취지에 공감하지만, 과도한 과태료 부담과 위법계약 해지권 도입 등으로 가뜩이나 코로나19 여파로 위축된 영업 활동이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은행들은 ‘징벌적 과징금은 독소조항’, ‘영업 위축 우려’ 등을 내세우며 불만을 드러냈고, 일부 보험사와 법인보험대리점(GA)들은 ‘보험사·GA 부담 가중 우려…업계 난색’, ‘가뜩이나 어려운데 금소법 시행령에 열 받은 GA’라는 자극적인 기사를 통해 불만을 드러냈다. “보험설계사가 설명 의무 위반 땐 과태료 3500만원이 부과되어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고, 소속을 옮길 때 계약자와 짜고 ‘3대 기본 지키기 위반’ 등을 이유로 고객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자필 미 서명 등에 따른 계약해지 요구로 피해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현행 보험금 청구 소멸시효가 3년이므로 계약일로부터 5년은 길다”는 것이다.

그러나 황당하다. 금소법이 왜 만들어졌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는 자의 주장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금소법은 금융사들의 고질적·악의적인 잘못 때문에 제정되었고 금융사들의 자업자득, 자승자박으로 만들어졌다. 보험사·GA 잘못으로 그동안 소비자들이 억울하게 당한 고통과 아픔을 한 번이라도 헤아려 봤는가? 양심 있는 금융사라면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한데, 어디에도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입 다물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본질(금융소비자 보호)을 망각한 채 엄살 부리고 너스레를 떨고 있음으로 정말 몰염치하다.

특히 보험사·GA는 더욱 할 말이 없을 것이고 설령 있더라도 참아야 한다. 온갖 불건전 영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속출하여 금융민원 중 보험민원이 매년 꼴찌로 1등(2019년은 62.3%)이기 때문이다. 종신보험을 저축으로 속여 판매, 승환·경유 계약, 절판마케팅, 허위계약, 중복계약, 초회보험료 대납, 철새설계사, 치고 빠지는 브리핑 영업 등으로 소비자 피해가 여전하다.

게다가 코로나19로 더 힘든 것은 소비자들이므로 보험사·GA가 엄살 부릴 일이 아니다. 열 받은 것은 GA가 아니라 GA의 변칙 판매에 속아 보험에 가입해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다.그동안 보험사·GA들이 오죽이나 많은 잘못을 저질러 왔으면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과태료를 10배로 증액했는지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는가?

1999년에 미국에서 당시 1위 보험사 메트라이프는 17억달러(1조8000억원)의 징벌적 배상금을 소비자들에게 지급했다. 영업사원들이 종신보험을 의도적으로 연금 저축인 것처럼 속여 팔아서 피해를 줬기 때문이다. 이처럼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지불하게 된 것은 미국 금융감독 당국이 보험사들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종신보험을 연금 저축으로 속여 파는 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장기간 불완전판매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고 보험 신뢰도를 떨어뜨린 간포생명과 판매망인 일본우편(우체국)이 금융청으로부터 ‘3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고, 관련 임직원 1200여명이 징계받았다. 고객에게 상품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보험을 은행 저축인 것처럼 변칙 판매하였거나 70~80대 노인에게 갱신 시 보험료가 오르는 상품으로 갈아타게 하는 등 불법과 불완전판매를 반복해오다 적발되었기 때문이다.

보험사·GA는 보험의 주인이 보험계약자이고 보험계약자 덕분에 밥 먹고 사는지 알고 있다면 돈벌이와 실적 달성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시행령(안)에 대해 감히 불만을 드러낼 일이 아니다. 보험사·GA들의 불만은 “돈벌이를 위해 앞으로도 허위·과장과 변칙으로 보험을 판매해서 소비자에게 계속 피해를 주겠다”는 의미이므로 누가 봐도 부당하고 부적절한 것이다.

보험은 상부상조의 제도이므로 보험가입자를 위한 것이지 보험사·GA의 돈벌이 수단이 아니다.

양심 있는 보험사·GA라면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먼저이고 불만이 있더라도 자중·자숙하여 잘못을 스스로 고쳐 나가는 것이 도리이고 예의다. 과태료가 무섭다고 뻔뻔하게 변명하기 전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인 ‘3대 기본 지키기’를 올바로 실천하고 자필서명도 제대로 받으면 될 일이다.

금소법은 금융소비자를 위해,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므로 시행령도 본질에 맞게 소비자 중심으로 제정, 운영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금융위는 금융사들의 입김에 흔들리지 말고 중심을 잡아서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소비자 보호는 말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금융사 주장을 두둔하거나 금융소비자 보호에 역행하는 주장을 한다면 금융위가 당장 그를 소환해서 혼쭐을 내서라도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금소법은 소비자 권익 보호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시행도 중요하지만, 시행 후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금융위의 지속적이고 강력한 의지와 역량이 필요하다. 금융위가 초심을 잃어 금융사들의 잘못을 적발할 의지가 없거나 적발하더라도 솜방망이로 처벌한다면 무용지물의 법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소비자들은 금소법이 제대로 실행되는지 여부를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한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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