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존재하므로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학

교는 학생을 위해 존재하므로 학생을 위해 일해야 하고, 의사는 환자를 위해 존재하므로 환자를 위해 일해야 한다. 학교는 학생 중심으로, 병원은 환자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이유다.

보험도 마찬가지다. 보험은 보험가입자를 위한 제도이므로 보험사는 보험가입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보험사가 누구 덕분에 밥 먹고 사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명확하고, 보험사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고 일해야 하는지도 명확해 진다.

보험은 동질 위험에 처한 보험가입자들이 위험을 보장받기 위하여 상부상조로 운영하는 제도이므로 보험가입자를 위한 것이지 보험사(GA, 보험설계사 포함)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보험의 주인은 보험가입자이고, 보험회사는 보험가입자를 위해 일하는 머슴이다. 상호회사는 물론이고 주식회사도 이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보험사를 흔히 ‘고객 자산의 선량한 관리자’라고 부르는데, 보험계약자가 낸 보험료를 잘 관리, 운영해서 약관에 정한 보험금을 차질 없이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보험계약자가 내는 보험료에 사업비를 별도 추가해서 납입하고, 보험사는 이를 받아서 보험사를 운영하는 것이다. 보험설계사에게 지급하는 수수료도 보험계약자가 주는 것이지, 보험사(대리점)가 주는 것이 아니다. 수수료는 보험료 중 사업비로 지급하는 것이며, 보험사(대리점)가 보험계약자를 대신해서 수수료규정에 따라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험의 주인과 머슴’이 중요한 이유는 보험사들의 존재 이유와 일하는 목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은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 근원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보험사들이 존재 이유를 명확하게 알고 보험가입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보험가입자가 주인으로 대접받고 인정받는 보험이 되도록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보험사가 이런 사실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실행하지 않는다면 그 피해가 주인(보험가입자)에게 돌아가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보험사들이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주인에게 알게 모르게 ‘갑질’을 하면 보험가입자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이 행하는 대표적인 잘못에 ‘상품 불완전 판매’와 ‘보험금 부당 부 지급’이 있다. 보험상품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판매하고, 수수료를 더 벌기 위해 가입목적과 다른 상품을 가입시키며, 보장성보험을 저축으로 변칙 판매해서 많은 가입자들이 피해를 본다. 보험 가입 시 모두 보장된다고 해서 서둘러 가입했는데, 정작 보험사고가 발생하여 보험금을 청구하면 안면 몰수하여 보험금을 거절하거나 삭감하기도 한다.

금감원이 발표(2020.4.20)한 ‘2019년도 금융민원 및 금융상담 동향’에 따르면, 지난 해 발생한 금융민원은 8만2209건 중 보험민원이 62.3%(손보 37.5%, 생보 24.7%)를 차지하였다. 이처럼 보험민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불완전판매가 많았고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분쟁이 많았다는 뜻이다.

필자는 금소원에서 보험민원을 무료로 상담해 주고 있는데, 보험사들의 다양한 ‘잘못’으로 가입자들이 피해 입은 사례를 자주 접한다. 일부 몰지각한 자들이 돈벌이를 위해 맞춤형 보험이 아니라 사업비(수수료) 많은 상품을 판매하였기 때문이고,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보험이 가입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보험사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 셈이다.

보험사들은 ‘보험계약자가 주인, 보험사는 머슴’임을 아무도 안 가르치므로 이를 모르고 실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급기야 보험가입자 보다 보험사 주주 이익을 우선하기도 한다. 보험사들은 현재, 무배당 상품만 판매하며 발생된 이익을 주주가 독식하고 있다. 발생된 이익 중 보험사가 사업비를 절감한 부분도 있겠지만, 당초부터 보험료가 과도하게 책정된 부분도 있을 것이므로 해당 부분만큼 보험료를 인하해야 하는데, 보험료 인하는 없고 이익을 모두 주주에게 귀속시킬 뿐이다. 이에 대해 금융위나 금감원도 아무 지적 없이 입을 다물고 있다. 또한 자살보험금 부 지급사태 발생 당시 모 보험사는 “약관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면 주주배임에 해당된다”고 주장했으니, 주인보다 머슴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것이었다.

보험에서 발생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보험사들이 주인과 머슴을 혼동하거나 착각해서 발생되는데, 금융위나 금감원은 물론 보험연수원에서도 “보험의 주인은 보험가입자, 보험사는 머슴”이란 사실을 명확히 알리거나 가르쳐 주는 곳이 없고, 이를 올바로 알 수 있도록 뚜렷하게 조치한 경우도 없다. 많은 보험사들이 존재 이유와 해야 할 일을 망각한 채 돈벌이와 실적 달성에 몰두해서 소비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보험 민원이 매년 꼴찌로 1등을 차지하는 이유인 것이다.

보험사들은 돈 내는 보험가입자 덕분에 존재하고 운영되므로 ‘고객 중심’을 보험사의 핵심가치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를 표방하면서도 핵심가치를 자발적으로 진정성 있게 실천하는 곳은 드물다. 보험사 영업 현장에서는 ‘고객’ 보다 ‘보험사’ 중심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핵심가치와 달라서 하는 일이 꼬이게 되고, 그 결과 불완전판매가 속출하고 보험금 삭감, 거절이 빈번히 발생하며, 나아가 보험가입자들은 주인이면서도 주인임을 체감하지 못한다.

조선 후기의 거상 임상옥은 “큰 장사에서는 마땅히 걸어야 할 상인의 도(道)가 있다”고 했다. 업(業)의 본질과 역할을 올바로 알고 실천하는 보험사라면 상부상조의 보험 정신과 보험사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인식하여 항상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이를 임직원들에게 반복 교육해서 실행하도록 독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호갱님’이라는 말이 자주 회자되는데, 고객이 어수룩해서 이용해 먹기 좋은 고객(호구+고객님)을 지칭한다. 특히 보험의 경우 가입자가 주인임에도 보험사로 부터 푸대접을 받고, 홀대와 수모를 당하면서 생겨난 말이므로 소비자들은 다분히 기분 나쁘고 비위가 거슬린다.

보험의 주인이 호갱님으로 취급 당하지 않으려면 비싼 보험료만 내지 말고 주인 대접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 실천하고 행동해야 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19세기 독일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처럼 알고도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는 소비자 주권의 시대이므로 주인은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고 행사할 수 있다. 지금 당장 휴대폰이나 인터넷에서 소비자기본법 제4조를 검색해서 소비자의 기본적 권리 8가지를 확인해 보자. 소비자들이 기본적 권리를 알아야 하고, 보험도 올바로 알고 활용해야 한다. 권리를 주장해야 보호받을 수 있고, 보험사들의 ‘갑질’이 줄어 소비자 피해도 감소하게 된다.

만약, 보험사의 ‘잘못’으로 보험가입자가 억울하게 피해를 입었다면 해당 보험사에 바로 시정하도록 서면(증빙 첨부)으로 당당히 요구하고, 그래도 고치지 않으면 거래를 단절하고 불매운동이라도 벌여 퇴출시켜야 한다. 이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소비자(주인)들의 힘이고 소비자들이 당연히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인 것이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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