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임정희 기자
사진=임정희 기자

신용대출이 폭증했다가 지난 17일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금융당국 경고에 은행들이 신용대출 조이기에 들어갔고, 이미 받을 사람은 다 받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아직 진정국면에 들어갔다고 보기에는 이르다.

지난달 가계대출이 급격히 증가했다. 지난 7월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액은 7조6000억원이었는데, 지난달에는 11조8000억원으로 확대됐다. 이중 신용대출 증가액이 5조3000억원을 차지했다. 금융당국은 이에 대해 “저금리 기조와 주식청약 수요 및 경기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에 따른 가계 자금 수요 확대로 (신용대출) 증가폭이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결국 금융당국은 지난 14일 신용대출을 관리하겠다고 경고하면서 은행권에 대출 관리 방안을 오는 25일까지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고신용·고소득자를 중심으로 신용대출 한도를 줄이는 등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대출 한도가 소득의 2배 수준인 고신용·고소득자의 경우 생계자금으로 신용대출을 이용한다고 보기 어려워서다.

하지만 지난달에 이어 이달 들어서도 가파르게 증가하던 신용대출은, 규제를 시사하자마자 널뛰기하듯 펄쩍 뛰었다.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3영업일 동안 5대 시중은행 신용대출 잔액이 1조1362억원이나 증가한 것이다.

사실 대출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금리가 낮아졌고,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이에 대한 풍선 효과로 신용대출 수요가 높아졌다. 코로나19로 갑작스럽게 유동성이 막힌 사람들은 은행 문을 두드리고, 저금리에 맞물려 주식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대출을 받아 투자하는 ‘빚투’도 많아졌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사거나 부동산·주식에 투자하고 코로나19에 생계자금을 마련하는 움직임이 신용대출 증가를 이끈 셈이다.

한창 금융당국이 신용대출을 관리하겠다고 발표했을 무렵 내 주변에서도 ‘영끌’로 집을 마련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내년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는 대출이 막히기 전에,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받을 수 있는 대출은 모조리 받아 내 집 마련에 겨우 성공했다며 가슴을 쓸었다.

물론, 금융당국으로서는 늘어나는 대출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다만 문제는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금융당국은 ‘핀셋 규제’로 꼭 규제가 필요한 부분만 손을 본다는 입장이지만, ‘땜질식 규제’로 보여진 적이 많았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에 대한 처방이 이어졌고 부작용이 생기면 또 새로운 규제를 내놨다. 그러다 보니 규제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절히 작동할 것이라는 믿음에도 금이 갔다.

금융당국이 고신용·고소득자에 대한 핀셋 규제를 얘기하고 대출 총량을 관리하기로 한 것은 생계자금 용도의 대출은 공급하고, 빚내서 집사고 투자하려는 수요는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담보가 없고, 신용과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2030에서 대출 증가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대출 총량을 줄이려면 오히려 저신용·저소득자에 대한 대출을 관리하는 게 맞다.

향후 은행들이 신용대출 한도를 줄이고, 우대금리를 줄이는 등 금리를 높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이미 은행 중에서는 신용대출을 막은 곳도 보인다. 신용이 높고 소득이 높을수록, 또 저금리 기조일수록 더 낮은 금리로 더 높은 한도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일반적인 상식은 깨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규제가 저신용·저소득자의 대출 문턱까지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규제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핀셋 규제에 나섰지만, 그럴 때마다 불안 심리가 자극되면서 엉뚱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무작정 대출이 늘어났다고 억누르려고 하기 보다, 은행 건전성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증가율을 세심하게 관리하는 방안이 마련되길 바란다.

파이낸셜투데이 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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