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앓는 아내 명의 3억원 가입 피해 포함
아들 C씨 “초고령자 가입인데 입회인 설명 없었다”
“중소기업 자산가 노렸나”…기은 관계자 “고의 타깃 아냐…환매 노력도 봐달라”

최근 디스커버리펀드 환매중단 사태와 관련, 기업은행이 중소기업의 믿음과 의리를 저버렸단 질책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마디로, 중소기업을 위해 설립된 기업은행이 중소기업을 배신한 것 아니냔 얘기다. 이는 기업은행이 개인이 아닌 중소기업을 상대로도 불완전판매 등으로 손실을 입힌 정황이 알려지면서 나온 문제 제기다. 피해를 겪은 일부 중소기업인의 사례를 통해, 기업은행이 중소기업인을 위해 설립된 최초 목적에서 벗어난 것은 아닌지 짚어봤다.

B씨가 2019년 1월 21일 작성한 펀드 거래 신청서 일부. 사진=취재원 제공 
B씨가 2019년 1월 21일 작성한 펀드 거래 신청서 일부. 사진=취재원 제공 

◆ ‘40여년 주거래’ 은행 권유에 노후 全재산 발묶인 전 중소기업인  

무역 관련 중소기업 A사 전 대표였던 93세 B씨는 은행 직원의 권유로 지난해 1월 4일 디스커버리US핀테크글로벌채권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 제37호를 본인 명의와 아내 명의로 신규 가입했다. 가입 금액은 각각 17억원과 3억원이었다. 아내 명의의 경우 명의 당사자의 서명이 필요했지만, 직원의 설명에 따라 치매를 5년째 앓고 있는 아내를 대신해 B씨는 대필 서명했다.

같은달 21일 B씨는 동일 상품이지만 호수가 다른 제43호에 대한 신청서도 작성해 그 다음날(22일) 신규 가입됐으며, 가입 금액은 25억원이었다. 결과적으로 B씨는 본인 명의와 아내 명의로 총 45억원을 펀드에 가입하게 됐다.

두 상품의 만기는 6개월로 각각 2019년 7월 31일과 8월 14일이었지만 그는 결국 돈을 찾지 못했다. 해당 펀드의 운용사인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이 운용 중인 해외 사모사채펀드의 편입자산에서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하면서다.

B씨는 이같은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현 A사 대표인 아들 C씨는 사태가 터지고 난 후인 올해 3월에서야 이를 알게 됐다. C씨는 “한동안 아버지가 식사도 잘 안 하시고 누워계시더니, 은행에서 좋은 상품이 있다며 넣어보라고 해서 전 재산을 넣었는데 기한이 됐는데도 주지 않은 사실을 털어놓으셨다”면서 “왜 좀 더 따져보지 않으셨냐고 물으니 은행이 안전하다고 해서 가입했지 은행보다 잘 알겠냐”며 이름만 쓰셨다고 전했다.

아들 C씨는 중소기업 대표였던 아버지가 기업은행과 40년 이상 거래를 해온 VIP 고객인 만큼 은행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는 설명이다. C씨는 “미국이 망하지 않는 이상 절대 망하지 않는 안전한 상품이라 노후자금까지 6개월만 예치시키면 원금에 이자 3%가 확실히 보장된다고 (은행직원이) 설명하니 (아버지가) 가입한 것”이라며 “나이가 있는 만큼 몇 년을 투자할 순 없어 단기 상품이라고 하니 가입해 서명만 했지 나머지 일 처리는 은행에서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B씨가 받은 펀드 가입서류에 포함된 고령투자자의 투자권유 유의상품 펀드 가입 확인서 . 사진=취재원 제공 
B씨가 받은 펀드 가입서류에 포함된 고령투자자의 투자권유 유의상품 펀드 가입 확인서 . 사진=취재원 제공 

◆ 아들 C씨 “초고령자에 보호자 동행 설명 없이 투자권유, 가장 큰 문제”

C씨가 본 은행 측의 가장 큰 잘못은 초고령자에 대한 판매 안전장치로서 보호자 동행 설명 등이 없었단 점이다. C씨는 “고령자는 자문기관이나 자문을 받을 수 있는 입회인을 세워 검토와 코멘트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 그런 절차를 모두 무시하고 판매한 것”이라며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 명의까지 대필 서명하게 해 가입하도록 만들고 잘못됐다고 하니, 100번 양보하더라도 은행의 도리는 아닌 것 같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B씨가 가입한 서류 중엔 고령투자자의 ‘투자권유 유의상품’ 가입 확인서가 포함됐다. 이는 70세 이상인 고령 투자자가 ‘투자권유 유의상품’에 투자하는 경우 사전상담 내용을 기록하는 양식인데, 관리직 직원의 투자권유 적정성 사전 확인엔 모두 적합 표시가 기재된 반면, 가족 등 조력자 작성 부분은 모두 비어 있었다.

특히 80세 이상인 초고령투자자가 작성해야 하는 가입 시 추가 확인 사항란도 있었으나,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관련 항목엔 ‘매우높은위험’ 등급 상품으로 초고령투자자의 가입을 자제한다는 내용과 원금손실 가능성 등 투자위험 및 결과에 따른 본인 책임에 대해 설명을 듣고 이해했다는 내용, 조력자와의 상담이 가능하며 조력을 받을 수 없는 경우 충분한 투자 숙려 기간을 가져야 한단 내용 등에 대한 확인란이 있으나, B씨는 서명만 했을 뿐 해당 항목에 직접 체크를 표시하진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직원이 해당 상품에 대한 기대수익 뿐 아니라 위험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했거나 조력자 동행이 가능하단 사실을 적극 알렸다면 지금과 같은 규모의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는 게 C씨의 주장이다.

B씨의 펀드 가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펀드를 통해 수익이 발생해 상환이 이뤄진 적도 있다. 다만 B씨는 초고령 투자자에게 주어지는 보호 권리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결과적으로 큰 피해를 본 경우다.

이후 아버지를 대신해 C씨는 은행에 이같은 상품을 판매한 이유를 묻고 회신을 받았다. 지난 5월 27일 기업은행 측이 보내온 펀드 추천사유 내용에 따르면, 해당 펀드는 환헤지를 통해 환율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제거하므로 고수익보다 안정적인 수익을 원하는 보수적인 고객에게 적합한 상품이라고 설명돼있다. 그러나 같은 문서엔 “고령이시고 투자위험등급1등급(매우위험한상품)이지만 여러 가지 안정장치를 하였으므로 원금회수 및 약정수익률(연3.8%) 지급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해 적극 추천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안정적일 것으로 기대되는 수익률이 언급됐지만, 애초 위험도가 높은 상품인 만큼 설명의 모순이 있는 셈이다.

C씨는 “은행 PB가 안전하다고 판단한 책임을 스스로 진술한 것”이라며 “1,2,3호 식으로 상품이 나뉘어있는데,  처음에 수익이 잘 나더라도 추후 이렇게 자금이 물릴 수 있는 구조라면 입회인 필수 동행 조치 등이 반드시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아들 C씨가 기업은행으로부터 회신 받은 펀드 추천 사유 문서. 사진=취재원 제공  
아들 C씨가 기업은행으로부터 회신 받은 펀드 추천 사유 문서. 사진=취재원 제공  

◆ 중소기업 잇따른 피해 왜 나왔나…일각에선 ‘판매 타깃’ 의구심

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의 피해 사례가 중소기업인을 상대로 잇따라 나타난 배경엔 투자 전문 조직이나 인력의 부재 문제를 짐작해볼 수 있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선 투자 결정과 관련해 심의할 수 있는 전담 조직이나 인력이 있어 투자 피해를 사전방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즉, 불완전판매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작다. 반면, 중소기업은 이러한 별도의 인력을 두기 어려운 만큼 금융 피해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다.

일각에선 이같은 이유로 기업은행이 중소기업인 자산가를 펀드 판매 타깃으로 노린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을 주거래로 하다 보니 대부분 VIP고객이 중소기업 대표나 부인이 많지만, 이들에게만 고의적으로 집중 판매한 건 아니다”라며 “해당 고객도 처음 가입한 게 아니라 계속 수익을 보다가 마지막에 환매중단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사업가가 예금 이자만 가지고 만족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며 “결과론적인 부분만 집중되니까 은행 입장에선 억울한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은행은 올해 타사 대비 선도적으로 고령자를 상대로 한 펀드 판매 등은 핵심성과지표(KPI) 실적에서 제외하기도 했단 설명이다. 펀드 가입을 원하는 고객에겐 판매하되 영업점 실적에 반영되지 않도록 조치해 고령층에 대한 판매 사고를 예방하려는 취지에서다.

다만, 펀드 등 금융상품 판매 자체가 중소기업 지원에 역행하는 건 아니라고 은행 측은 강조했다. 펀드 판매도 은행의 전체 여러 업무 중 하나이며,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도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재원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은행 특성상 기업에서 받은 재원을 일정 부분 써야 하기에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와 중장기 대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도록 중금채를 발행하는 등 계속 수신을 채운다”며 “디스커버리펀드 판매에 대한 수수료는 1%가 안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디스커버리펀드 환매 문제를 위해 은행 역시 운용사에 환매를 계속 요구하고 있고, 미국에 있는 투자 자산들이 매각되는 대로 아직 큰 금액은 아니지만 1~2번 환매를 진행 중인 만큼, 자산을 최대한 되찾도록 함께 힘을 합쳐 운용사에 항의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면서도 “은행도 판매 과정에서의 불만 사항들에 대해 팔로우업하고 문제 해결에 나 몰라라 하지 않고 있단 점도 봐주시면 좋겠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은지 기자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