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아무리 돈벌이가 좋더라도 보험사(GA, 보험설계사 포함)들이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될 일이 있다. 일부 보험사들이 보장성보험을 저축이라고 속여 판매하여 다수 소비자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고, 그 중심에 보장성보험인 무해지 종신보험과 무해지 치매보험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보험사가 권유하는 무해지보험에 대하여 각별히 조심해야 할 상황이다.

무해지보험은 보험료가 일반(기본형) 상품보다 20~30% 저렴하므로 주머니가 가벼운 소비자들에게 좋고 설계사도 보험료가 저렴해서 판매하기 수월하다. 무해지보험의 보험료가 저렴한 이유는 보험 가입 후 중간에 해지하면 해지환급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보험료 납입기간동안 보험료를 모두 납입한 후 해지하면 해지환급률이 일반상품 보다 높아 원금보다 많이 받을 수 있다.

보험사들이 판매하는 무해지 종신보험은 사망을 보장하고, 무해지 치매보험은 치매를 보장하는 보장성보험이므로 당초부터 저축과 상관이 없다. 그런데 일부 보험사들이 저축이라며 판매하는 것은 잘못이고 말이 안되는 일이다. 만약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소비자에게 거짓말로 희생을 강요하는 자라고 생각된다.

이런 잘못이 현장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것은 1차적으로 보험설계사들이 보장성보험을 저축으로 변칙 판매하기 때문이다. 수수료를 벌기 위해서 해서는 안될 일을 행하는 것이다. 또한 2차적으로 보장성보험을 저축으로 판매하도록 설계사를 교육하고 유도한 보험사들 잘못 때문이고, 이런 잘못을 알고 있으면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금감원과 금융위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부 신문기사도 ‘보험료 낮추는 꿀팁’, ‘가성비가 좋다’, ‘인기 돌풍’ 등의 자극적인 제호로 보험 가입을 부채질 할 뿐, 정작 소비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을 제대로 알려주는 기사는 드물다.

무해지보험을 가입하려면 단점과 유의사항을 분명하고 명확히 알아야 한다. ① 보험료 납입기간 중 해지하면 해지 환급금이 0이다. ② 보험료 납입기간 중 해지환급금이 없으므로 중도에 급전 필요시 약관대출을 받을 수 없다. ③ 가입하더라도 보험료 납입기간이 종료될 때까지 실제 유지되는 계약이 적으므로 저축 목적을 달성하기도 어렵다.

이런 사실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보험료가 싸다는 말만 듣고 무해지보험을 덜컥 가입하면 스스로 함정에 빠져 아까운 보험료만 허공에 날리게 된다. 그러므로 저축이란 말에 현혹되지 말고 무해지 보험의 특성과 단점을 명확히 알고 가입 여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끝까지 유지할 자신이 없으면 무조건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사정이 이런데, 일부 몰지각한 보험사들이 사망 보장, 치매 보장 보다 저축을 의도적으로 내세워 은행의 장기 적금과 같은 것으로 판매하고, 단점과 유의사항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가입자에게 청약서에 “해당 상품의 내용을 잘 알고 가입한다”고 덧글을 쓰게 하고 사인하라고 재촉한다. 가입자는 실제로 상품 내용을 반쪽만 알고 있는데, 시키는 대로 덧글을 쓰고 사인해서 발목을 잡힌다. 나중에 가입자가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이의를 제기하면 보험사들은 덧글과 사인을 제시하며 발뺌하기 때문이다.

종신보험은 사망을 종신 보장하는 보험이므로 장기 보장성보험이다. 저축이 아니고 연금을 받기 위한 보험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일부 생보사들이 연금보험 보다 2~3배 많은 사업비(수수료)를 벌기 위해 연금전환특약을 부가해서 연금 받는 보험으로 판매해 왔고, 그 결과 지난 해 보험 민원 발생 중 종신보험 민원이 가장 많았다.

더구나 어떤 보험사도 종신보험의 장기 유지율을 알려주지 않는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5년후 유지율이 50.9%, 9년 후 40.0%였다. 또한 금감원이 국회에 제출(2015년 9월)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종신보험 가입 후 10년 지나면 36.1%만 유지되고 63.9%는 이미 탈락하였다. 이처럼 종신보험의 유지율이 매우 저조한데, 20년, 30년 경과 후 유지율은 불 보듯 뻔하다. 최근 코로나19로 가계의 부담 증가로 유지율이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도 탈락자가 대부분이므로 저축, 연금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지난 2015년 7월에 모 생보사가 해지환급금을 낮추고 보험료를 줄인 저(低)해지 종신보험을 출시해서 인기를 얻었고, 이를 본 보험사들이 무(無)해지 보험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저렴한 보험료를 전면에 내세워 저해지·무해지 보험 판매가 크게 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무해지 종신보험을 판매하면서 은행 적금보다 유리하다고 과장 판매해서 소비자 피해가 다수 발생되고 있다. 급기야 작년 9월 국감에서 일부 보험사가 “보험료가 30% 저렴하고 10년 시점 환급률이 115%, 20년 시점 환급률은 135%로 은행 정기적금보다 유리하다”며 저축으로 대 놓고 판매한 것이 드러났고, 그 결과 향후 대량 민원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손보사들이 판매하는 치매보험도 논란이다. 치매보험은 한동안 판매가 잠잠했는데, 올 들어 급증하였다. 국내 9개 손보사가 올해 1분기에 총 11만2254건의 치매보험을 판매했고, 이 중에서 무해지보험은 9만5298건으로 전체 치매보험 판매의 약 85%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치매보험을 무해지보험으로 판매하면서 저축성 보험인 것처럼 판매해서 화근이 되고 있다. 무해지 종신보험을 저축으로 판매하는 행태를 손보사들이 답습해서 무해지 치매보험을 저축으로 대량 판매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이처럼 생·손보사 구분할 것 없이 보험사들의 기본을 무시한 채 무차별적, 공격적인 영업으로 무해지 보험 판매가 증가하면서 소비자 피해 확산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금감원은 ‘무·저해지환급금 보험상품 안내 강화 방안’(2019.8.2)을 통해서 보험 가입 시 해약환급금이 없거나 적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객이 자필로 기재해 확인토록 하고, 해지 신청 시 해지 시점별 해약환급금을 설명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저축으로 변칙 판매되는 일로 민원이 다수 발생되자, '무·저해지 환급금 보험'에 대해 소비자 경보 등급 '주의'를 발령(2019.10.24) 했고, “무·저해지 보험 불완전판매에 대한 미스터리 쇼핑을 실시하고 판매가 급증한 보험사와 GA 대상으로 부문검사를 실시할 방침이며, 무해지 상품을 구조적으로 제한하는 방안 등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7개월이 경과되도록 가시적인 조치가 없고 뚜렷한 성과도 없다. 이렇게 금감원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지금도 애먼 소비자들만 보험사들의 변칙 판매에 속아서 피해를 보고 민원이 속출하고 있다.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

금감원, 금융위가 해야 할 일은 서면으로만 ‘적극 대응’, ‘엄중 대응’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효성 있는 사전 조치, 즉 무해지·저해지보험을 저축으로 속여 판매하지 못하도록 보험사에 강력 경고하고 변칙 판매한 보험사를 적발해서 엄벌하는 일이다. 당초부터 변칙 판매할 수 없도록 상품 구조도 변경해야 한다. 보험사에 대한 선제적 조치 없이 태연하게 경보만 발령해서 소비자들에게만 주의를 당부해서는 어림도 없다.

무해지 보험은 누구에게나 판매하는 보험이 아니고 아무나 가입하는 보험도 아니다. 보험료 부담 으로 일반상품 가입이 어렵고 가입 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소비자에게만 제한적으로 판매하고 가입해야 하는 보험이다.

보험사들이 보장성보험인 종신보험, 치매보험을 저축(적금)으로 파는 것은 누가 봐도 본질을 망각한 것이고, 불완전판매를 넘어서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용납할 수 없고 용납돼서도 안 된다.

보험사들은 아무리 돈벌이와 실적 달성이 급하더라도 기본 원칙을 지키고 정직하게 팔아야 한다. 무해지 보험을 저축으로 속여 팔지 말라는 얘기다. 이런 지적에도 고치지 않는다면 “양두구육(羊頭狗肉, 양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겉과 속이 다름)의 보험사”, “양심을 버린 보험사”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또한 ‘고객 중심’이니 ‘고객 만족’을 외칠 자격이 없고 나아가 보험사라는 간판을 달고 있을 이유도 없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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