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지난해 9월,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김민식 군이 숨진 비극을 계기로 만들어진 민식이법이 3월 25일 시행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많은 소비자들이 운전자보험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고, 주요 손해보험사들도 운전자보험의 보장범위를 상향 조정해서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운전자보험을 이미 가입한 소비자라면 섣불리 갈아타지 않는 것이 좋다.

운전자들은 어린이보호구역(일명 스쿨 존)에서 사고를 내면 가중 처벌을 받게 된다. 즉, 30km 초과 사고나 어린이 안전에 유의하지 않는 사고를 내면 상해는 1년이상 15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에 처해진다. 사고로 피해자가 사망할 경우 벌금 없이 3년 이상 징역에서 최고 무기징역까지 처벌이 가능하다.

주요 손보사들은 기존 운전자보험의 보장을 상향 조정(벌금보장액을 2000만원에서 3000만원 으로 확대)하여 기존 가입자들에게 민식이법을 거론하며 “기존 계약을 해지하고 보장액이 확대된 상품으로 가입하라”고 도가 지나칠 정도로 권유하고 있다. 여기에 TV홈쇼핑, 블로그, SNS 등 에서도 운전자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하여 공포심을 조장하며 운전자보험 갈아타기를 부추기고 있고, 일부 신문·방송도 운전자보험을 소개하는 기사를 잇따라 보도하고 있는데, 섣불리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보험 판매를 부추기는 내용이 많고, 소비자들에게 사실대로 알려주는 내용이 드물기 때문이다.

자동차보험은 자동차 사고로 타인의 신체와 재산피해를 보상하는 내용의 ‘책임보험’과 운전자 및 동승자의 손해까지 보장하는 ‘종합보험’으로 구분된다. 책임보험은 운전자라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고, 필요에 따라 종합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그러나 운전자보험은 임의보험이므로 반드시 가입할 필요가 없다. 즉, 운전자보험은 필요하면 가입하고 필요하지 않으면 굳이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

운전자보험은 크게 3가지를 보장받는 보험이다. 즉, ① 교통사고 처리 지원금 ② 벌금 ③ 변호사 선임비용 등 법률비용을 보장받는다. 교통사고 처리 지원금은 운전자가 낸 사고로 피해자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을 경우 실제 지급한 형사합의금을 말한다. 운전자보험에 가입하면 재판과정에서 발생하는 벌금과 변호사 선임비용도 받을 수 있다.

만약 이번에 시행된 민식이법으로 걱정이 되어 운전자보험을 새로 가입할 소비자라면 가입하기 전에 반드시 득실을 따져야 한다. 벌금 보장액이 확대된 운전자보험을 가입하는 것이 당연히 좋다. 그런데 손보사에서 판매하는 운전자보험이라도 보장금액이 다르고 보험료도 각각 다르기 때문에 가성비를 따져야 한다. 보장금액이 크고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을 가입하라는 얘기다. 보험료를 한 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서다. 특히, 소액의 월 보험료만 볼 것이 아니라 보험료 납입기간 동안 보험사에 내야 하는 총보험료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어려울 것이 없다. 여러 손보사의 홈페이지를 접속한 후 상품공시실에서 운전자보험을 클릭해서 보장내용과 보험료를 각각 확인하면 된다. 이 때 비교표를 만들어 보장내용과 보험료의 칸을 하나씩 채워 넣으면 어떤 보험이 가성비가 좋은 지 쉽게 알 수 있게 된다.

다만, 운전자보험 기존 가입자들은 변경된 운전자보험이 크게 득이 되지 않으므로 섣불리 갈아타기 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다음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운전자보험을 가입하더라도 보험사들이 실제로 벌금 최대한도까지 보험금을 지급한 사례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2019년 주요 손보사들의 벌금 최대한도로 보험금을 지급한 비율이 0.05%에 불과했다고 한다. 운전자보험은 손해율이 높지 않아 손보사들에게 전략상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설령 새로 변경된 상품으로 갈아타더라도 가입자가 실제로 민식이법에 해당되어 보험금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것이다. 보험사의 공포마케팅에 휘둘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둘째, 기존 가입자들은 보험료에 사업비를 포함해서 지금까지 납입해 왔으므로, 만약 기존 계약을 해지한 후 변경된 운전자보험을 새로 가입할 경우 사업비를 이중으로 부담하기 때문이다. 사업비는 보험사가 사용하는 경비이므로 보험료를 납입하는 가입자 입장에서 보면 낭비인 것이다. 보험은 이유를 불문하고 사업비가 적은 보험이 유리하다.

결국 기존 운전자보험을 가입한 자가 새로 변경된 운전자보험으로 갈아타는 것은 ‘보험사 먹여 살리기’에 동참하는 것이고 보험료를 스스로 낭비하는 셈이다. 걱정하지 말고 기존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낫다. 기존 운전자보험을 끝까지 유지하다가 만기가 도래하면 그 때 가서 변경된 운전자보험을 가입해도 늦지 않은 것이다.

오세헌 보험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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