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실적+주가’‥트리플 악재(惡材)

 

▲이건희 회장.
[파이낸셜투데이=황병준 기자] 최근 삼성엔지니링의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지난 1일 삼성 이건희 회장은 지난달 26일 울산공장 신축현장 물탱크 사고의 책임을 물어 박기석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을 전격 경질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매끄럽게 처리되지 못하면서 또다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또한 삼성물산이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매입하면서 그동안 잠잠했던 합병설이 다시금 고개를 내밀었다. 가뜩이나 실적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삼성엔지니어링으로서는 파장이 생각보다 클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고 소식을 들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진노하면서 박 사장을 경질시키고 후속대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이는 그룹 내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한 고민을 내비친 것이다. 이에 <파이낸셜투데이>는 잇단 악재에 신음하는 삼성엔지니어링 사태를 짚어봤다. 

지난 1일 삼성그룹은 울산시 삼성정밀화학 부지 내 공사장에서 발생한 물탱크 폭발사고 책임을 물어 시공사인 삼성엔지니어링 박기석 대표이사 사장을 전격 경질했다.

사고를 보고받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어났다”며 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폭발로 삼성엔지니어링 소속 최 모씨를 비롯해 3명의 근로자가 사망하고 12명이 부상을 당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박 사장 전격 경질

이번 사고가 논란이 되는 것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데 있다. 경찰은 지난 6일 중간 수사결과 사고의 원인이 고장력 볼트 대신 설계 기준에 못 미치는 중국산 및 일반볼트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인재(人材)인 것이다.

여기에 사고 전 물탱크가 이상 현상을 보였음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으로도 확인되면서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한 원성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발생한 삼성정밀화학 울산공장 물탱크 폭발사고 현장.

 

사고 전날 물탱크 4곳에서 누수가 확인됐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다음날 회의만 한차례 열었을 뿐 누수에 관해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삼성엔지니어링과 물탱크 제작회사인 다우테크의 관계자를 불러 조사를 벌이고 있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값싼 저질 볼트를 사용해 안전성을 확보하지 않았다”면서 “사전에 탱크 이음새 부분의 누수가 확인되었는데도 이에 대한 진단과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한 명백한 인재”라고 말했다.

‘안전불감증’이 만든 물탱크 사고…박기석 사장 경질 ‘초강수’
삼성물산 0.60% 지분 매입에 합병설 ‘모락모락’ 불확실성 ↑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초일류 글로벌 기업인 삼성의 계열사인 삼성엔지니어링의 안전 의식은 삼류”라며 “인근 작업자를 대피시키는 가장 기초적인 안전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와 비슷한 일이 3개월 전에도 발생했었던 것으로 나타나면서 안전불감증에 대한 논란도 불거졌다.

삼성그룹은 최근 안전 환경사고 예방을 위한 투자를 대폭 늘리는 한편 안전의식 제고를 위한 조직문화 개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안전사고가 발생했다며 최고 경영자에게 책임을 물어 그룹 모든 계열사의 안전 환경 의식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이번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이사회보다 높은 ‘오너’ 입김

하지만 박 사장의 경질되는 과정을 두고 다시 논란이 일어났다. 삼성 계열사가 독립적인 법인으로 이뤄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 해임이라는 중대한 결정이 이사회나 주주총회가 아닌 그룹 차원에서 이뤄지고 발표되면서 임원인사가 적법한 절차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재벌에 대한 고질적인 관행에서 비롯됐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경제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삼성 계열사는 독립적으로 경영되는 법인인데도 삼성엔지니어링의 사장 경질 발표는 삼성그룹의 이름으로 이뤄졌다”며 “그룹이 법적으로 독립적인 계열사에 대해 무한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이 매체는 “이건희 회장이 일부 계열사에 대해 약간의 지분을 가지고도 그룹 전체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에도 한국인들은 당연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사장은 정연주 삼성물산 부회장의 후임으로 지난 2010년 3월 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를 맡아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4개월 만에 낙마하는 불운을 맛봤다.

▲박기석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박 사장의 후임으로 대표이사에 내정된 박중흠 운영총괄 부사장은 삼성중공업에서 삼성엔지니어링으로 옮긴지 한 달 만에 중책을 맡게 됐다. 하지만 박 사장 내정자도 다음달 17일로 예정되어 있는 임시주주총회 전 사임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한 구조조정이 준비 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일고 있다.

삼성물산, 합병(?)

삼성엔지니어링은 최근 삼성물산과의 합병설에도 시달리고 있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향후 주주대상 3자 배정 유상증자 참여 가능성부터 두 회사의 합병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지난달 29일부터 2일까지 5거래일 동안 삼성엔지니어링 주식 24만5,481주(0.60%)를 장내에서 매입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장내매각으로 삼성물산이 삼성엔지니어링의 주주대상 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한 첫 행보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는 두 회사가 장기적으로 합병차원에서 이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회사의 합병이 이뤄질 경우 산업 시너지와 그룹 내 자원 투입의 비효율성을 줄이고 소유권을 강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취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이 삼성엔지니어링을 자회사로 편입시키거나 합병이 되는 등의 지배구조 변화를 매우 장기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며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 삼성물산이 상사부문의 자산매각 등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의 한 관계자는 “합병설과 관련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일축했다.

실적부진 장기화 가능성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달 16일 2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1분기 적자 충격에서 벗어나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흑자전환에 실패해 주저앉고 말았다.

삼성엔지니어링의 2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5% 감소한 2조6,600억원, 영업손실 887억원을 기록했다. 1분기 영업손실 2,197억원보다 손실폭은 다소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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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업계의 한 애널리스트는 “삼성엔지니어링은 당초 올해 수주목표로 14조5,000억원을 제시했지만 상반기까지 신규수주 물량이 3조1,000억원에 그쳤다”며 “올해 신규수주 예상치가 7조9,000억원 정도에 그칠 것으로 전망돼 내년 이후 매출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도 커졌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삼성엔지니어링의 관계자는 “상반기 3000억원 정도의 적자를 기록했다”며 “예년 수준과 비교했을 때 분기당 150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기 때문에 올해 소폭이지만 흑자를 기록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삼성엔지니어링의 실적부진은 곧바로 주가 폭락으로 연결됐다. 지난해말 삼성엔지니어링의 주식은 17만원선을 나타냈으나 지난 8일(종가) 8만4,300원을 기록했다. 절반이상 폭락했다.

반등 쉽지 않아

시장의 반응도 회의적이다. 증권업계는 삼성엔지니어링이 당분간 주가 반등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증권업계의 한 전문가는 “삼성엔지니어링이 적자에서 비롯해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며 “적자 공사를 지속하고 있는 미국 다우현장이 속히 마무리되고 고수익 현장 공사가 빨리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물산과의 합병설이 흘러나오면서 미래의 불확실성 또한 짙어지고 있다. 증권사들도 장기적으로 두 회사의 합병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의 실적부진으로 변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발전플랜트 등 차세대 사업에서 두 회사의 영역이 겹치고 있어 그룹 차원에서 조정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두 건설사가 합병이 이뤄지면 두 회사의 매출 기준으로 세계 8위 수준의 종합건설사의 탄생도 가능하다. 이는 그룹 내 자원 투입의 비효율성을 줄일 수도 있다.

이러한 주장에 설득력을 가하고 있는 것은 삼성물산 정연주 대표이사 부회장이 지난 2010년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에서 삼성물산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꾸준히 플랜트 사업 진출을 추진해 왔다는 점이다.

지난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를 외치며 신경영을 선포한 이건희 회장은 최근 삼성전자 불산 누출, 반도체 공장 옥상 화재 등 기초적인 안전사고가 잇따라 터지면서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안전에 투자하고도 손해를 보는 기업은 문을 닫아야 한다”고 진노하던 이 회장의 안전철학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지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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